농심·신세계푸드·일화·서울우유 등 식품업체, 일본기업과 잇따라 업무협약 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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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국내 식품기업들이 일본 기업과 잇따라 손을 잡고 있다. 국내 식품업체들에게 유난히 높은 벽으로 작용했던 일본시장을 파고들기 위해 '파트너'가 꼭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쉽지 않은 일본 식품 시장에서 국내 식품업체들이 'K-푸드'의 위상을 보여줄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2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최근 서울우유협동조합은 일본 고베에 위치한 롯코버터주식회사(QBB사)와 제품판매 유통계약을 체결했다. QBB(Quality’s Best & Beautiful) 브랜드로 유명한 롯코버터주식회사는 일본 소매용 가공치즈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한다. 치즈 및 가공품 제조판매 매출이 전체의 94.8%에 달할 만큼 치즈 분야에서 명성이 자자하다.

    서울우유가 공급할 QBB사의 제품은 국내에서는 맛보기 어려운 디저트풍의 치즈제품 ‘치즈디저트 3종(바닐라, 럼건포도, 리치넛츠)’과 크림치즈와 초콜릿이 어우러진 ‘프로마쥬엘 2종(초콜릿, 녹차)’을 시작으로 특정지역 또는 계절 한정 제품도 국내에 소개할 예정이다.

    송용헌 서울우유 조합장은 "서울우유협동조합과 롯코버터주식회사의 이번 유통계약을 통해 국내에 해외의 다양한 제품을 선보일 수 있게 돼 기쁘게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관련 사업을 더욱 강화해 우리나라에서 경쟁력 있는 제품을 선별해 소개할 계획"라고 전했다.

    서울우유가 QBB사와 손을 잡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일본 소비자들의 '보수성' 때문이라는 업계 안팎의 분석이다. 일본에 진출한 해외 식품업체들은 만만치 않은 일본 시장 공략에 번번이 철수를 거듭해야 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일본 소비자들은 자사 기업의 식품, 특히 잘 알려지고 오랫동안 먹어왔던 것만을 먹는 보수적인 성향이 강하다"며 "유행과 트렌드에 민감한 국내 식음료업계와는 완전히 반대의 성격을 보이기 때문에 일본 소비자들의 마음을 열기 위한 장기적인 투자와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 경우 일본 기업과 손을 잡으면 일본 소비자들이 느끼는 거부감을 덜 수 있다. 일본 기업은 정체돼있는 자사 제품 라인업에 변화를 줄 수 있고, 한국 시장에 진출할 수 있기 때문에 '윈윈'인 셈이다. 이 때문에 최근 국내 식품업체들은 잇따라 일본업체와 손을 잡고 있다.

    신세계푸드는 일본 영향치료 선두기업 '뉴트리'와 케어푸드 제조에 들어갈 소재 공급을 맡을 '한국미쓰이물산'과 한국형 케어푸드 개발과 상용화를 추진하는 내용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차세대 유망식품으로 관심을 받고 있는 케어푸드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포석이다.

    뉴트리는 케어푸드 제조에 주로 사용하는 점도증진제(식품의 점도를 조절하는 소재) 분야에 있어 일본 내 시장 점유율 50% 이상을 차지하는 영양요법 식품제조 전문기업으로 케어푸드 제조에 관련한 기술과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다. 이번 양해각서 체결을 통해 신세계푸드와 뉴트리는 케어푸드 제품의 공동개발과 생산을 위한 기술 협력을, 한국미쓰이물산은 케어푸드 제조에 필요한 소재 공급과 물류를 지원한다. 

    신세계푸드는 뉴트리, 한국미쓰이물산과 함께 지난해부터 자체적으로 개발해 온 케어푸드 제품의 상용화에 속도를 낸다는 계획이다.

    특히 내년 상반기 케어푸드 전문 브랜드를 론칭하고 병원식 중심의 기업 간 거래(B2B)를 넘어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제품을 선보이며 미래 성장 동력으로 육성한다는 방침이다.

    신세계푸드 관계자는 “일본 케어푸드 선두기업인 뉴트리가 그 동안 연구해 온 신세계푸드의 케어푸드 개발성과와 향후 발전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기에 이번 협약체결이 가능했다”며 “가정간편식 제조와 병원식을 운영하며 쌓은 노하우를 접목해 신세계푸드만의 차별화 된 케어푸드를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일화는 일본 LS 코퍼레이션과 일화 홍삼 농축액 및 홍삼 농축액 분말 등의 원료에 대한 일본 내 마케팅 및 영업에 관련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LS 코퍼레이션은 일본 내 건강기능식품 원료전문 유통회사로서 건강기능식품 기획/개발/OEM 유통과 화장품 유통 외에도 병원 및 건강클리닉센터 운영 등 굴지의 건강기능식품원료 및 건강관련 전문 유통기업이다. 일화는 MOU 체결에 따라 LS 코퍼레이션에 원료를 수출, 연간 약 100억원 규모의 원료 제품을 공급하겠다는 계획이다.

    일화 정창주 대표이사는 “이번 LS 코퍼레이션과의 MOU 체결을 통해 우수한 품질의 홍삼 농축액 원료를 일본 시장에 안정적으로 공급하게 돼 기쁘게 생각한다”며 “일화의 현지법인인 일화JAPAN과의 긴밀한 협조를 통해 상호 시너지 효과를 창출해 매출 증대에 기여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농심은 합작회사를 설립한 일본 가공식품 1위기업 아지노모토와 우리나라에 2300만달러 규모를 투자, 공장을 설립한다. 아지노모토와 농심은 평택 포승에 있는 기존 농심공장 내 일부 부지에 즉석식품 생산공장을 설립한다. 2019년 준공이 목표다. 이에 따라 그동안 일본에서 수입 판매 중이던 아지노모토의 즉석 분말스프 제품에 대한 수입 대체 효과는 물론 국내 소비자들에게 더 안정적으로 제품을 공급할 수 있게 됐다.

    아지노모토는 지난 1909년 일본 도쿄에서 설립됐으며 지난해 연 매출액 1조1502억엔에 달하는 일본의 대표 종합식품업체다. 세계적으로 24개 지역·국가에 123개의 공장을 두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조미료 '미원' 생산업체로 잘 알려진 글로벌기업이다. '전범기업'이라는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농심으로서는 꼭 필요한 파트너다. 국내 즉석 스프 시장 경쟁에 대비하면서도 해외 시장에 오랜기간 공을 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농심은 올해 해외매출 8억1000만달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앞서 2012년에는 대상이 일본 대형 유통도매업체인 악세스(ACCESS)사 손잡고 다양한 한국식 신제품을 통해 일본 시장을 노렸고, 2013년 LG생활건강은 일본 건강기능식품회사 에버라이프(Everlife)를 인수, 일본 시장 내 사업 기반을 다져왔다. 2012년부터 일본 시장에 쁘띠첼 미초를 수출해온 CJ제일제당은 긴자에 위치한 레스토랑 ‘Skew’와 함께 콜라보 마케팅을 진행하는 등 채널 확보에 힘쓰고 있다. 쁘띠첼 미초는 올해 일본에서 200억원을 어치 이상 팔려나갔다.

    국내 식품업체가 혼자 힘으로 일본 시장에서 힘을 못 쓰는 이유를 두고 업계 안팎의 우려는 점차 커지고 있다.

    최근 CJ푸드빌은 9년 만에 일본시장에서 완전 철수했다. CJ푸드빌은 한식 전문 매장 ‘비비고’를 비롯해 한식 패스트푸드 ‘한채’ 등을 운영해왔지만 결국 일본 법인인 ‘CJ푸드빌재팬’을 청산한 것으로 확인됐다. CJ푸드빌 재팬은 일본 진출 첫해 7억원의 손실을 냈고 지난해까지 적자 행진은 이어졌다. 2016년과 2017년까지도 각각 24억원과 10억원의 손해를 봤다. 누적 손실은 118억원이다.

    업계 사이에서는 현지 시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전략이 부족했던 점도 문제로 지적되지만 일본 시장 자체의 보수성을 이기기는 쉽지 않다고 보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가깝지만 식문화가 현저히 다르고, 정치·사회적인 이슈가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도 언급된다.

    실제 최근 국내 식품업계에는 가정간편식(HMR) 열풍이 거세지만, 일본 현지에선 간편식보다도 더욱 편리해진 즉석식품이 현저히 증가하는 추세이기도 하다.  aT에 따르면 한국에서 제조해 수출한 상품의 경우 조리 기구를 이용해 데우거나 가열해서 먹는 상품이 주를 이룬다. 대체로 용량이 큰 편이라 상품 단가도 다소 높다. 이와 반면 일본에서 제조하는 한국풍 즉석상품은 전자레인지 등을 활용해 바로 먹을 수 있는 제품과 1인용 소포장 사이즈가 주를 이룬다. 가격도 300엔 이하다. 최근 출시 상품은 용기 자체가 그릇 역할까지 하는 상품도 많이 있다. 

    이처럼 일본 식품 시장의 어려움을 맛본 국내 식품업체들이 잇따라 일본 기업과 협력하면서 일본 시장에서의 K-푸드 입지가 변화할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관련 업계 관계자는 "일본의 소비자 트렌드와 식품업계 변화에 주목해 니즈에 맞는 상품을 출시해 나간다면 한국산 식품의 일본 내 수요시장은 더욱 확대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