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평가 못 하는 데 여전히 '감정원'(鑑定院)… 오해 소지 다분국감 단골 지적사항… "검토하겠다"던 김학규 원장 '감감무소식'전문가들 "제도개선 출발선은 명칭 오류 바로잡는 것부터"
  • 한국감정원(이하 감정원)이 토지·부동산 등의 감정평가 업무에서 공식적으로 손을 뗀 지 3년이 되어 간다. 감정원은 정부 위탁사업을 통해 표준지 공시지가 조사·평가 부대업무를 수행할 뿐 감정평가행위를 하면 '감정평가 및 감정평가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벌받는다. 하지만 감정원은 여전히 시장과 업계에서 뜨거운 감자다. 감정평가 영역의 언저리에서 아슬아슬 줄타기한다는 지적이 적잖다. 기관 이름에서부터 대외 행보, 공공기관 구분유형에 이르기까지 혼란스럽기만 한 감정원의 정체성에 대해 짚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편집자 註>

  • ▲ 한국감정원 대구본사.ⓒ한국감정원
    ▲ 한국감정원 대구본사.ⓒ한국감정원

    "기관 이름이 한국감정원이 아니어도 해외 감정평가 관련 기구들과 교류하는 데 무리가 없을까요?"

    공식적으로 감정평가 업무에서 손을 뗀 감정원의 이름이 여전히 '감정원'(鑑定院)인 데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다. 경제전문가들과 감정평가 업계는 이구동성으로 감정원의 이름을 바로잡는 것에서부터 제도개선이 시작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30일 감정원에 따르면 감정원의 영문명칭은 '코리아 어프레이절 보드'(Korea Appraisal Board)다. 어프레이절은 '감정평가'를 의미한다. 감정원은 지난 2016년 9월 시행된 '감정평가 관련 3개 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이하 감정원법)에 따라 감정평가 업무에서 철수했다. 하지만 기관 이름을 보면 여전히 감정평가 업무를 수행하는 곳으로 오해를 사기 충분하다는 지적이다. 한 경제전문가는 "공기업인 감정원의 이름에서 감정평가를 빼면 해외의 감정평가협회들로부터 세미나 초청장을 받는 것도 어려워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동산학과 한 대학교수는 "감정원 홈페이지에서 하는 업무를 보면 감정평가와 관계없는 일을 많이 한다"며 "기관의 설립 목적과 미션·비전을 보면 감정원이란 이름을 쓰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감정원 홈페이지에는 감정원이 '부동산의 가격공시와 통계·정보 관리업무, 부동산시장 정책 지원' 등의 업무를 보는 준시장형 공기업이라고 소개돼 있다.

    감정원 이름은 국정감사의 단골 지적사항이기도 하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홍철호 의원은 지난해 국감에서 "감정원이 감정평가 업무를 하지 않는데 이름에 여전히 '감정'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국민이 오해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김학규 감정원장은 "공공기관 브랜드 인지도가 높아 이름을 바꾸기 쉽지 않다"고 답했다가 홍 의원이 "그럴수록 오해를 없애려면 더 이름을 바꿔야 하는 거 아니냐"고 따지자 "이름 변경을 검토해보겠다"고 밝혔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감정원이 임기응변으로 위기를 넘길 뿐 고민이 깊지 않은 것 같다고 분석한다. 익명을 요구한 부동산 관련 학과 교수는 "국토부 내부에서도 이름을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고위 관계자가 '바꾸자'고 말도 한다"면서 "하지만 (감정원은) 이에 대해 아무 말도 안 하고 버틴다. 바꾸고 싶지 않은 것"이라고 귀띔했다.

  • ▲ 궐기대회.ⓒ감정평가협회
    ▲ 궐기대회.ⓒ감정평가협회
    감정원 이름 바꾸기는 정부 차원에서도 검토됐던 내용이다. 정부는 지난 2015년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핵심과제로 공공기관의 기능 조정을 통한 정상화를 추진했었다. 당시 감정원은 공공기관 기능조정의 16대 대표 사례에 포함됐었다. 감정평가 업무를 민간에 넘기고 부동산 조사·통계 등 공적 기능에 주력하는 방향으로 기능조정이 설정됐었다. 아울러 기능전환·축소에 따라 기관명칭 변경도 검토하기로 했었다.

    그러나 이후 감정원법이 시행되는 과정에서 명칭 변경은 흐지부지됐다. 감정원의 감정평가 타당성 조사에 대한 이해충돌과 국토부의 감정원 감싸기 논란이 커지면서 명칭 변경 논의가 뒷전으로 밀렸기 때문이다. 감정평가 업계에선 '한국감정원법'의 법 이름부터 불합리하다고 지적한다. 감정평가 업계에선 "감정원이 감정평가업을 할 수 없게 업무 범위가 정해졌음에도 법 명칭을 '한국감정원법'이라고 표현한 것은 국민의 오해를 불러오는 '입법상 오류'라고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조세심판원 상임심판관을 지낸 법무법인 율촌의 전동흔 고문은 지난해 부동산 감정평가 세미나에서 "감정원이 설립 목적에 따라 부동산 가격정보관리를 주요 업무로 한다면 가칭 '한국부동산가격정보관리공사'로 법과 기관 이름을 고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해 눈길을 끌었다. 전 고문은 "(감정원의) 감정평가 타당성 조사 업무도 분석을 목적으로 하면 필연적으로 감정평가 활동을 수반해야 하므로 유사 감정평가행위와 상충하는 부분이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면서 법·기관 이름 변경이 그 출발선이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감정원 이름을 감정원 주장대로 '조사·산정' 업무에 초점을 맞춰 가칭 '한국산정원'으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없잖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는 이론적 토대가 약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전 고문은 "감정원이 맡는 표준주택가격 공시 업무의 경우 적정가격을 공시하기 위해선 '조사·평가' 활동이 불가피하게 뒤따르게 된다"면서 "그 근본에 변화가 없는데 이를 '조사·산정'이라고 포장하는 것은 근본적인 오류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부동산학과 모 교수도 "(감정원은) 부동산공시법상 조사·산정은 조사·평가와는 다르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상 같은 것"이라며 "평가기준에 통계학 모델을 사용하는 것을 대량평가라고 불러 일반평가와 나눠 설명하기는 하지만, 사실상 같은 의미라는 게 일반적인 견해"라고 부연했다.

    전문가들은 국토부가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감정평가 업계 한 관계자는 "감정원은 아직도 감정평가 업무에 대한 미련이 있는 것 같다. 반복되는 지적에도 감정원 이름을 고수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며 "국민이 오해하지 않게 국토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토부는 "입장을 얘기할 상황이 아니다"며 즉답을 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