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젠 쇼크에 뒤흔들린 바이오 업계… “과도한 기대감은 금물”플랫폼 기술 보유 업체 ‘재조명’… 임상 초기 바이오벤처도 관심K-바이오의 신약 개발 도전 계속돼야… “실패에 대한 관용 필요”
  • ▲ 문은상 신라젠 대표가 지난 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CCMM빌딩에서 열린 '펙사벡' 글로벌 임상 3상 무용성 평가 관련 긴급 간담회에서 잠시 입을 다물었다. ⓒ박성원 기자
    ▲ 문은상 신라젠 대표가 지난 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CCMM빌딩에서 열린 '펙사벡' 글로벌 임상 3상 무용성 평가 관련 긴급 간담회에서 잠시 입을 다물었다. ⓒ박성원 기자

    한 바이오벤처 CEO는 “신라젠은 펙사벡이라는 물질 하나에 모든 것을 걸어왔던 회사”라며 “물질 하나가 임상 3상에 실패한 이상 이제 방법이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신라젠이 지난 2일 항암 바이러스 ‘펙사벡’의 글로벌 간암 임상 3상 중단을 권고받았다고 공시한 이후 일주일이 지났다. 그 사이 바이오 업계는 한바탕 쑥대밭이 됐다.

    ‘신라젠 쇼크’ 전까지만 해도 63조 6569억원이었던 코스피 의약품업종의 시가총액은 하루 사이에 62조 4232억원으로 급감하며 1조 2337억원이 증발했다. 신라젠의 지난 긴급 기자간담회를 통한 진화 노력에도 불구, 5일에는 시총 5조 4927억원이 증발하며 ‘블랙 먼데이’를 맞았다.

    이 같은 바이오발(發) 충격에 이날 오후 2시 9분쯤 코스닥 지수가 6.19% 떨어지면서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신라젠 쇼크가 바이오 업계 전반은 물론, 코스닥 시장까지 뒤흔든 것이다.

    그간 신약 개발에 대한 시장의 기대감이 과도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3년간 신라젠은 740억원, 570억원, 562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해왔지만, 신라젠의 주가는 실적과는 동떨어진 흐름을 보였다. 펙사벡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되면서 1년여 만에 신라젠의 주가가 1만원대에서 15만원대까지 고공행진한 것이다. 투자자들의 뜨거운 관심이 몰리면서 소액주주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14만 6951명까지 늘었다.

    과도한 기대는 급격한 실망으로 이어졌다. 신라젠 쇼크로 인해 다른 제약·바이오 기업의 주가들도 우후죽순 무너졌다. 신라젠 쇼크의 여파로 주가가 급락한 한 바이오 업체 관계자는 “바이오 기업의 옥석을 가리는 정도를 벗어나 거의 외면 받는 수준”이라고 비관했다.

    시장에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 가지 신약후보물질에만 집중하는 바이오 기업은 위험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최근 코오롱생명과학의 ‘인보사’, 에이치엘비의 ‘리보세라닙’, 신라젠의 ‘펙사벡’ 등 한 가지 신약에 몰두해온 바이오 기업들이 차례로 무너진 것에 따른 교훈이다.

    투자자들은 플랫폼 기술에 기반을 둔 바이오 기업들을 재조명하고 있다. 플랫폼 기술을 통해 확장된 다양한 파이프라인을 통해 신약 개발로 인한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다.

    신약 개발의 리스크가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 신라젠 쇼크로 인해 K-바이오의 신약 개발 도전이 멈춰선 안 될 것이다. 특히 임상 초기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도전하는 바이오 벤처들에 대한 관심이 절실하다.

    이번 신라젠 쇼크로 임상 초기 단계의 신약개발 바이오벤처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이미 글로벌 3상에 진입한 업체들은 충분한 자금 수혈을 받았지만, 앞으로 자금 조달을 받아야 할 업체들에 대한 잣대가 더욱더 까다로워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주가가 떨어져서 힘든 것보다는 바이오 업계에 대한 전반적인 신뢰가 무너져서 자본조달이 힘들어졌다는 게 문제”라며 “투자자들도 이제 좀 더 보수적으로 투자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임상 3상까지 진입하려면 꾸준히 자본조달을 해야 하는데 임상 초기 단계의 업체들이 중장기적으로 더 힘들어지게 됐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후보물질 확보부터 신약 출시까지 이르는 신약 개발 성공 확률은 0.02%에 불과하다. 애초에 국내 바이오벤처가 신약 개발에 성공할 확률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그러나 잇단 실패에 비관만 할 수는 없다. 바이오 업계에 대해 냉철하게 분석하되, K-바이오의 신약 개발에 대한 응원은 계속돼야 한다. 기존에 없었던 치료제가 새로 개발됨으로써 얻는 치료 기회가 갖는 가치는 단지 산업적 측면에서만 고려될 문제는 아니다.

    이정규 브릿지바이오 대표는 최근 페이스북 게시글을 통해 “우리는 흔히들 실패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말하고, 늘 실패할 수 있어야 바이오텍이 성장한다는 총론에 동의하는 것 같지만, 개별적인 실패에는 매우 가혹하다는 인상을 늘 받는다”고 했다. 그가 한 말이 주는 울림을 곱씹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