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날때만 '반짝'…시켜서 하는 일회성 관리 한계관리체계 허술…감사원 "교통안전공단 검사 소홀"운영기관 자체감사후 보고하면 취약분야 집중 검사매년 보고서 의무제출…기관 경영평가때 가·감점상향식 사전관리로 전환…국토부 안전관리용역 결과
  • ▲ 강릉선 KTX 열차 탈선 현장.ⓒ연합뉴스
    ▲ 강릉선 KTX 열차 탈선 현장.ⓒ연합뉴스

    철도전문가들은 우리의 철도 안전관리가 사후약방문 하듯 땜질식으로 이뤄진다고 지적한다. 철도에 대해 잘 모르는 비전문가가 철도안전 관련 업무를 맡아보거나 관리체계가 허술해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견해다. 무엇보다 철도 안전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고가 난 뒤 윗사람이 시키니까 그때만 반짝 신경 써선 철도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철도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과 남은 과제는 무엇인지 들여다본다. <편집자 註>


    철도안전을 확립하고자 기존의 톱다운 방식에서 벗어나 현장에서 자발적으로 안전문제를 진단·해결하는 '한국형 철도안전관리체계'가 도입될 전망이다. 사고수습 대신 예방에 초점을 맞춘 사전 안전관리체계로, 철도운영자와 시설관리자가 (가칭)'철도안전연차보고서'(이하 안전보고서) 제출을 의무화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24일 철도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가 철도 현장의 안전관리시스템 개선을 위해 진행한 연구용역이 마무리돼 지난 12일 결과 보고가 있었다. 뉴데일리경제가 수소문한 결과 이번 용역에서는 철도안전을 위해 안전보고서를 도입하는 내용이 비중 있게 다뤄진 것으로 확인됐다.

  • ▲ 교통안전공단 권병윤 이사장.ⓒ연합뉴스
    ▲ 교통안전공단 권병윤 이사장.ⓒ연합뉴스
    ◇교통안전공단이 20여곳 안전관리체계 검사… 인력·전문성 부족

    철도전문가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현재 우리나라의 철도안전 관리체계는 따로국밥 수준이다. 정부의 상위 관리계획과 철도현장의 관리프로그램이 따로 노는데다 지난해 감사원 지적에서 알 수 있듯 철도운영사의 안전관리체계(SMS)에 대한 정부 검사도 허술해 안전관리에 누수가 있다.

    현재 철도당국의 최상위 안전관리지침은 철도안전법에 따라 5년마다 세우는 철도안전종합계획이다. 지난해말 수정된 제3차 계획(2016~2022)이 확정 고시됐다.

    철도안전정책의 목표·방향, 시설·차량의 관리, 안전제도 개선, 전문인력 양성·교육훈련, 안전기술 개발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제3차 계획이 제시하는 비전은 '국민이 신뢰하는 사람 중심의 철도안전시스템 구현'이다. 이를위해 정부는 매년 철도안전시행계획을 수립한다. 일선 현장에선 철도운영사와 시설관리자가 철도안전관리시스템 프로그램, 열차운행·유지관리프로그램을 마련해 시행한다.

    문제는 정부의 상위계획과 현장의 관리프로그램이 맞물려 움직이지 않고 따로 노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관리·감독시스템의 작동체계에 허점이 있다는 의견이다.

    염병수 아주대 철도시스템학과 교수는 "철도안전 관련 업무를 맡는 기관의 종사자중 정말로 철도에 대해 잘 아는 전문가가 몇명이나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철도업계 일각에선 철도안전을 점검하는 한국교통안전공단의 업무 과부하와 비전문성을 지적한다.

    공단은 국토부 위탁을 받아 철도운영사 등의 안전관리체계를 정기검사하고 변경·승인하는 업무를 수행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철도전문가는 "공단은 거푸집처럼 틀에 박힌 잣대로 안전관련 프로그램을 검사하는 수준에 그친다"며 "가령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앞선 신호기술을 현장에 접목하려고 안전관리프로그램 변경을 신청해도 공단에서 이를 승인해주지 않으면 도입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부연했다. 이어 "철도선진국인 유럽은 현장경력만 10년 이상인 전문가가 철도안전전담기관에서 일하는 형태지만 우리는(공단 담당부서는) 엔지니어링·용역사에서 근무한 경력자가 일부 있을 뿐 나머지는 공과대학 졸업후 채용시험 봐서 들어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정부가 철도종합계획에서 안전기술 개발 등의 목표를 제시해도 일선 현장에서 첨단 신호기술 등의 도입을 승인해주지 못하고 오히려 기존 안전관리체계와 안 맞는다며 시정조치를 내리는 등 안전관리 작동체계에 괴리가 있다는 설명이다.
  • ▲ 고속철도 전용구간 선로 점검.ⓒ연합뉴스
    ▲ 고속철도 전용구간 선로 점검.ⓒ연합뉴스
    ◇철도종사자 모두가 '안전일기'를 쓰듯…상향식 안전문화 정착

    국토부 연구용역 결과에선 유럽연합(EU)에서 2004년부터 도입해 지난해부터 철도운영기관이 의무적으로 제출토록 한 안전보고서 도입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실행력을 담보하기 위해 운영기관 경영평가 때 가·감점을 주는 방안이 유력하다.

    안전보고서에는 철도운영사나 시설관리자의 자체 안전목표는 물론 이를 달성하기 위한 계획이 담긴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세운 철도안전 상위계획과의 연동성이 높아진다.

    철도운영 및 시설관리 과정에서 확인된 오작동 사례나 부족한 부분도 공개한다. 자체 안전관리 우수 사례도 포함한다. 안전을 위해 어느 분야에 얼마나 투자했는지를 공개토록 한 철도안전투자공시 내용도 여기에 포함될 수 있다.

    무엇보다 안전보고서엔 철도운영사 등의 자체 안전감사 결과가 담긴다. 안전에 취약한 부분을 진단하고 어떻게 대응할지에 관한 내용이 포함된다. 이는 철도운영기관의 책임을 강화하는 것으로 철도현장에 자율성을 주되 만약 안전보고서에 언급하지 않은 내용으로 사고가 발생하면 제재하는 방식이다.
     
    한 철도전문가는 "안전보고서를 통해 철도운영기관이 스스로 위험요인을 찾아 분석하고 해결하게 하면 검사체계의 효율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철도안전기술원(가칭)처럼 철도안전을 총괄하는 전담기구가 생길 때까지 선택과 집중을 통해 교통안전공단의 숨통을 터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공단은 매년 20여개가 넘는 철도운영기관의 안전관리체계를 정기검사한다. 보통 1곳의 철도운영사 정기검사에 계획통보부터 서류·현장검사, 결과통보까지 한달쯤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족한 인력으로 매달 1곳 이상 정기검사를 벌인다는게 녹록지 않은 처지다.
     
    설상가상으로 사고라도 나서 수시검사까지 진행해야 한다면 코레일, 서울교통공사처럼 몸집이 큰 운영사는 수박 겉핥기식으로 살펴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는 지난해 9월 감사원의 철도안전 관리실태감사 결과에서도 드러났다. 

    감사원은 철도안전관리체계를 점검·승인하는 공단이 정기검사 업무를 소홀히 했다고 질타했다. 공단은 코레일이 KTX 부품 중정비 주기를 어긴채 운행하는 등 안전관리에 문제가 있었음에도 2015~2018년 4년간 정기검사에서 이를 잡아내지 못했다.

    철도전문가는 "운영기관이 안전보고서를 내면 검사기관(공단)은 보고서에서 밝힌 취약·의심분야에 대해 검사를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안전보고서는 중장기적으로 철도안전문화 정착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후한 점수를 줄 수 있다. 사고 발생후 위에서 시키니까 반짝하고 마는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철도현장에서 지속해서 위험을 진단하고 평가를 통해 이를 책임지는 상향식 검사의 토대가 갖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철도전문가는 "안전보고서는 운영기관으로선 안전일기를 쓰는 것과 같다. 검사기관은 매년 쌓이는 보고서를 통해 무엇이 개선되지 않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다"면서 "보고서를 모으면 그 자체로 우리나라의 철도안전보고서가 되는 것으로 안전문화가 뿌리내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 국토교통부.ⓒ뉴데일리DB
    ▲ 국토교통부.ⓒ뉴데일리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