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선 "새 규제 거부감·인력 부족·업무 중복" 등 께름칙"취지 좋지만"…경영평가 가점·안전관리수준평가 감점 불편작성 가이드라인 시범서비스…전문가 컨설팅도 지원
  • ▲ 무궁화호 탈선현장.ⓒ연합뉴스
    ▲ 무궁화호 탈선현장.ⓒ연합뉴스

    철도전문가들은 우리의 철도 안전관리가 사후약방문 하듯 땜질식으로 이뤄진다고 지적한다. 철도에 대해 잘 모르는 비전문가가 철도안전 관련 업무를 맡아보거나 관리체계가 허술해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견해다. 무엇보다 철도 안전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고가 난 뒤 윗사람이 시키니까 그때만 반짝 신경 써선 철도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철도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과 남은 과제는 무엇인지 들여다본다. <편집자 註>


    (가칭)철도안전연차보고서(이하 안전보고서) 작성을 핵심으로 하는 '한국형 철도안전관리체계' 도입에 대해 일각에선 순탄치 않을 거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철도운영사들이 인력 부족과 업무량 증가를 이유로 불만을 제기할 게 불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철도전문가들은 시행착오를 다소 겪더라도 철도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철도운영사가 큰 부담 없이 안전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게 가이드라인을 잡아주는 게 대안으로 꼽힌다.

  • ▲ 강릉선 KTX 탈선 사고 원인 추정 선로전환기.ⓒ뉴시스
    ▲ 강릉선 KTX 탈선 사고 원인 추정 선로전환기.ⓒ뉴시스

    ◇철도운영사 "취지 좋아도 불편 주면 질색"

    철도현장에선 이번 국토교통부 연구용역에서 결론으로 내놓은 안전보고서 의무 작성을 탐탁지 않아 한다. 새로운 규제 도입에 대한 원초적인 거부감과 인력 부족, 업무 중복 가능성, 평가에 따른 벌칙 등이 이유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안전업무 담당자는 "유럽연합(EU)에 그런 게 있다는 정도만 알뿐 자세히는 모른다"면서 "(도입을) 검토해본 적 없고 (시범 운영)해본 적도 없어서 막막하고 내용이 궁금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어 "순기능·역기능이 있을 텐데 (정부가 보고서에) 어느 정도까지 내용을 담을지가 관건"이라고 했다.

    구체적인 내용을 떠나 철도안전을 강화하는 방향성에 대해선 나쁘지 않다는 반응이다. 코레일 관계자는 "지금도 행정안전부, 고용노동부, 기획재정부 등 안전을 챙기는 기관이 여럿 있다"며 "안전은 챙기면 챙길수록 강화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다만 안전 관련 업무 중복 가능성에 대해선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가령 현재도 기재부가 공기업 경영평가를 할 때 안전 관련 항목이 있고 비중도 꽤 큰 편"이라고 부연했다.

    대전도시철도공사 안전업무 담당자도 "국토부가 매년 철도사고 지표, 안전관리 등의 수준을 평가하고, 행안부도 경영평가 때 철도시설 유지·보수나 안전투자와 관련해 평가한다"며 "(안전보고서) 도입 취지는 이해되지만, 이중으로 하기보다는 기존 평가의 미비점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거들었다. 이어 "안전업무 외 다른 업무도 같이 해야 하는데 직원 2명이 하기엔 지금도 업무에 부하가 걸린다"며 "지난해만 해도 철도운영사의 안전관리체계(SMS)가 4번이나 바뀌었다. 관련 법령을 고치면 특별점검을 나오고 잘못된 부분에 대해 페널티를 준다. 현재의 안전관리수준평가를 따라가기도 어려운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 ▲ KTX 경정비-차량 앞부분 연결기 점검.ⓒ뉴데일리DB
    ▲ KTX 경정비-차량 앞부분 연결기 점검.ⓒ뉴데일리DB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통일된 양식 필요

    철도전문가 의견은 다르다. 기존의 톱다운 방식에서 벗어나 현장에서 자발적으로 안전문제를 진단하고 해결하는 상향식 철도안전문화가 정착돼야 하고, 그 지름길이 바로 안전보고서 작성이 될 수 있다는 견해다. 귀차니즘과 막연한 반발심에 덮어놓고 반대하기보다 근본적인 체질 개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견해다.

    또한 코레일이나 서울교통공사처럼 덩치가 큰 철도운영사에 대해선 심층검사가 현실적으로 곤란한 만큼 각 운영기관이 면밀히 위험요인을 찾아 분석하고, 한국교통안전공단 같은 검사기관이 보고서에서 언급된 취약·의심분야에 집중하는 식으로 검사체계를 개선하지 않는 한 철도안전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 연구용역 결과에서 철도운영사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제시한 대안이 바로 안전보고서 작성 가이드라인이다. 조기에 제도를 현장에 정착시키면서 현장의 부담을 줄여줄 수 있게 보고서 작성 지침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이미 안전보고서 제출을 의무화한 유럽 사례를 견줘보고 국내 법령과 정책에 맞게 통일된 양식을 만들면 각 철도운영사는 자신에게 해당하는 항목에 자체 안전감사 결과를 비롯해 시설관리 오작동 사례, 제안사항 등을 채워 넣는 방식이다. 철도운영자, 철도시설관리자, 상하 통합본 등 3가지 종류가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시범사업을 추진해보고 필요하다 판단되면 전문가 컨설팅 지원도 검토할 만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철도전문가는 "EU는 안전보고서를 2004년 도입해 작성을 권고했다가 지난 2016년부터 의무화했다. 국가별로 매년 종합적인 안전분석보고서가 나오는데, 우리나라는 그런 분석을 5년마다 세우는 철도안전종합계획을 수립할 때 하고 그나마도 부실하다"면서 "병은 소문내야 빨리 낫는다는 말이 있듯이 공개적이고 체계적으로 접근해야 철도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 안전보고서는 좋은 해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