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에쓰오일, 배당총액 줄여휘발유 가격역전… 벙커C유 보다 더 싸게 거래정제마진 '마이너스'… "팔면 팔수록 손해 커져"임원 급여 삭감 이어 희망퇴직 만지작… '허리띠 졸라매기' 나서
  • ▲ 자료사진. ⓒ정상윤 기자
    ▲ 자료사진. ⓒ정상윤 기자

    대표적인 고배당주로 투자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모았던 정유주가 국제유가 폭락 등 잇단 악재로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최악의 업황을 맞이하면서 희망퇴직을 검토하는 한편, 임원 급여를 반납하는 등 비상경영에 돌입했다. '고배당', '배당축제'는 옛말이 됐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전날 에쓰오일은 정기 주주총회에서 중간배당 포함 총 233억원 규모의 배당안을 원안대로 통과시켰다. 2016년 결산 당시 배당금총액이 7219억원에 달했던 것에 비하면 3% 수준으로 쪼그라든 것이다. 실제 에쓰오일의 배당금은 2016년 결산 이후 3년 연속 감소하고 있으며 이번 배당 규모는 2014년 결산 175억원 이후 최저치다.

    또 다른 상장사인 SK이노베이션도 마찬가지다. 같은 날 진행된 정기 주주총회에서 SK이노베이션은 배당금총액을 2646억원으로 확정했다. 이는 전년 7083억원에 비해 62.6% 줄어든 수준으로, 2년 연속 위축됐다. 특히 34년 만에 무배당을 실시한 2014년 결산 이후 가장 작은 규모다.

    양사의 시가배당률(주당배당금/주가)도 전년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에쓰오일은 2018년 결산 0.70%에서 0.20%로, 같은 기간 SK이노베이션은 4.40%에서 1.90%로 각각 감소했다.

    문제는 배당의 근간이 되는 영업실적 전망이 불투명하면서 올해도 배당여력이 크게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당장 유가 하락에 따른 재고평가 손실이 우려된다. 올해 초 배럴당 60달러를 웃돌던 국제유가가 이달 20달러 선으로 추락하면서 재고손실만 수천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정유사는 통상 원유를 사들인 후 정제하는 과정을 거쳐 2~3개월 후 판매하기 때문에 유가가 단기간 급락하면 비싸게 산 원유 비축분의 가치가 떨어져 손해를 본다.

    함형도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1분기 정유사별 재고평가손실은 SK이노베이션 5000억원, 에쓰오일 2500억원이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정유사의 수익성 지표인 정제마진도 또 다시 마이너스로 돌아서면서 비상이 걸렸다. 3월 2주 배럴당 1.4달러였던 정제마진은 지난주 -1.9달러로 약 3개월 만에 다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지난해 11~12월 -0.2달러에서 -0.9달러를 오가던 것보다도 악화한 수치다. 지난 16일에는 -2.48달러로, 1997년 이후 하루 평균 최저치를 기록한 바 있다.

    정제마진은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가를 뺀 것으로, 손익분기점은 4달러 안팎이다. 현재 정유사는 제품을 생산할수록 손해를 보는 상황이다. 사실상 원유 가격보다 휘발유 가격이 더 싸진 셈이다.

    자동차 공장처럼 한시적 가동 중단도 불가능하다. 설비를 한 번 껐다 켜는데 1~2주가 소요되고, 공장 규모에 따라서는 수십억원에서 최대 수백억원의 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 ▲ SK 울산 CLX. ⓒ성재용 기자
    ▲ SK 울산 CLX. ⓒ성재용 기자

    코로나19 사태로 석유 최대 소비 지역인 유럽과 북미에서 석유 수요 감소도 현실화하는 중이다. 주요 글로벌 분석기관들은 각국 정부가 코로나19 확산을 방어하기 위해 물류 및 인구이동 조치를 잇달아 취할 경우 석유 소비가 역사상 가장 크게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스탠다드차티드는 지난해 보다 하루 최대 339만배럴, 골드만삭스는 하루 800만배럴의 석유 수요가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원유 트레이딩업체 비톨의 경우 미국과 유럽이 물류 및 인구 이동 통제를 강경하게 할 경우 하루 1000만배럴까지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이탈리아에서 대중교통 60%가 중단되고, 석유 수요가 40~50% 감소한 상황을 유럽과 미국 등에도 적용한 시나리오다.

    김정현 교보증권 연구원은 "자택대피령 등 강도 높은 코로나 억제 대책을 실시 중인 미국과 국가간 여행금지 조치에 합의한 유럽연합(EU)에서 도로주행용 연료소비 감소가 두드러질 것"이라며 "이미 글로벌 주요 도시 전역에서는 교통 혼잡도가 현저히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중국 정유사들이 가동률을 높이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잇따르면서 석유제품 과잉공급에 따른 제품가격 하락이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컨설팅업체 JLC에 따르면 중국 산둥 지역 정유사 가동률은 지난주 49%로 조사됐다. 코로나19 사태로 5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한 2월 말 37%에 비해 12%p 올랐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면서 이번 주에는 57% 안팎으로 뛰어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최근 급등한 환율 역시 정유사들의 단기 실적을 악화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정유사들 원유를 달러로 구매하기 때문에 환율이 오르는 만큼 비용이 커지는 구조다.

    에쓰오일의 지난해 감사보고서를 보면 원·달러 환율이 10% 상승할 경우 세후이익은 약 2166억원 감소한다. SK에너지의 지난해 3분기 누적 세전 순이익 역시 환율이 5% 상승할 때 658억원 감소한다.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코로나19 탓에 전 제품 수요가 절벽인 상황에서 유가 급락에 환율 급등까지 겹악재를 넘고 있는 심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정유사들은 비용절감을 단행하는 한편, 공장가동률을 낮추는 등 비상경영으로 위기에 대응하고 있다.

    직장인들이 '신도 부러워하는 직장'이라고 하는 에쓰오일은 희망퇴직을 검토 중이다. 1976년 창사 이후 처음이다. 에쓰오일은 평균 연봉 1억3759만원에 근속연수 16년으로, 삼성전자(1억1900만원, 11년 6개월)보다 좋은 '알짜' 직장으로 꼽힌다.

    또 다른 정유회사인 현대오일뱅크의 경우 지난 24일 강달호 사장을 비롯한 전 임원의 급여 20% 반납과 경비예산 최대 70% 삭감 등 비용 전면 축소를 골자로 한 비상경영체제를 시행하기로 했다. 정제공장 가동률은 지난해 말 90%로 낮춘 뒤 올리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분기에 수천억원대 영업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는 SK이노베이션은 석유제품 수요 감소로 이번 달 가동률을 15% 줄였다. GS칼텍스는 정기보수 일정을 3월로 앞당겼다.

    또 다른 관계자는 "원유 수요가 언제쯤 회복될 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1분기에는 정제마진 악화와 재고평가 손실이 모두 반영돼 적자가 불가피할 것으로 본다. 실적 개선은 하반기에나 가능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