政, ‘한시적 전화 상담→화상 진료’ 등 변화 언급의협 반대 거세지만 상급종병 중심으로 원격의료 시행 중박은철 보건행정학회장 “시대적 흐름 못 타면 정체될 것”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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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를 계기로 ‘원격의료’가 활성화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국내에서 원격의료는 의료법상 불법이지만 정부가 감염병 대응 차원에서 한시적 허용을 한 상태다. 20년째 시범사업에 머물러 제자리걸음을 했던 원격의료가 국가적 재난위기에 놓이자 다시금 수면 위로 오른 것이다. 

    비대면 진료의 위험성을 강조하는 의료계의 주장으로 한 발짝 앞으로 나가기가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부인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은 원격의료로 향하고 있다. 코로나19는 대한민국 의료생태계의 변화를 얘기하고 있고 그 중심에 원격의료의 당위성이 지속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 패러다임의 전환, 원격의료 한시적 허용 

    정부는 지난 2월 24일부터 환자가 의료기관을 직접 방문하지 않고 전화로 상담과 처방을 받을 수 있도록 원격의료를 한시적으로 허용했다. 팩스와 이메일 등을 활용한 처방전 전송, 환자·약사 간 협의를 통한 약 수령도 가능해졌다.

    당시 복지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상급종합병원 42개 중 50%인 21개, 종합병원‧병원 169개 중 56%인 94개, 의원급 의료기관 707개 중 72%인 508개가 전화 상담을 시행한다는 입장이었다. 

    현재 빅5병원을 포함한 상급종합병원에서는 재진환자 및 만성질환자 등을 중심으로 일 평균 200건 가량의 전화 상담이 이뤄지고 있다. 

    그간 의료법상 의료인과 의료인간 자문 형태의 원격의료는 허용되지만, 의사와 환자간 진료는 의료기관 내에서 이뤄져야 했다. 이를 어기면 불법 의료행위였는데, 현재의 특수한 상황을 감안해 원격의료가 가능해진 것이다.

    쟁점은 원격의료 한시적 허용의 플랫폼은 ‘전화’로 제한을 뒀지만 코로나19 의료인 감염 등 문제가 촉발되자 ‘화상 진료’ 도입에 대한 분위기도 긍정적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복지부 측은 “의료인 감염 예방을 위해 화상 진료가 준비가 완료된 의료기관과 논의를 진행 중이다. 준비된 곳부터 하나씩 실행하게 될 것이지만 구체적인 부분은 검토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원격의료는 상호 작용하는 정보통신 기술 등을 이용해 원거리에 의료 정보와 의료 서비스를 전달하는 진료, 처방 등 모든 활동을 말한다.

    발전하는 IT기술과 플랫폼을 활용하는 것이 원격의료의 본질인 만큼 코로나19가 종식되는 시점에 맞춰 원격의료 방법론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 비대면 진료 부작용 강조하는 의료계 종주단체 

    원격의료를 반대하는 대표적 단체는 직접적인 이해관계자인 대한의사협회다. 비대면 진료의 부작용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으며 이번 원격의료 허용에 대해서도 ‘한시적 전화 진료’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지난 13일 최대집 의협회장은 온라인 기자회견을 통해 “일시적 전화 진료 허용에 방침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시행 여부는 각 의료기관과 지역의 상황에 맞게 의사들의 판단에 맡겼지만, 원칙적으로는 반대한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의협이 원격의료를 반대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는 건 대면진료가 원칙이라는 기준 때문이다. 최선의 진료를 제공할 도덕적 책무가 있는데 그걸 달성하기 위해선 대면진료가 원칙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폐렴환자가 단순 상기도감염으로 오인될 가능성이 있고, 감기 처방을 받고 일상생활을 하면 주변으로 감염을 확산시킬 수 있다는 우려 등이다. 이른바 원격의료 허용으로 인한 부작용 발생을 억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논리다.  

    박종혁 의협 대변인은 “원격의료와 관련해서 1%의 문제가 있어도 99%가 좋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의사는 1000명 중 1명만 죽어도 그 윤리적 책임을 모두 져야 한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 원격의료, 그 커다란 시대적 흐름

    그러나 원격의료의 시대적 흐름을 부인할 수 없다는 전문가의 진단이다. 

    박은철 보건행정학회장은 “의료의 영역도 (타 산업 분야와 마찬가지로) 신기술이 도입되고 다시 새로운 기술이 나타나면서 발전하는 구조를 갖는다. 이러한 부분을 따라가지 못하면 정체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의료 공급체계의 변화가 예상되기 때문에 원격의료 도입에 일부 부정적인 시각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는데, 커다란 흐름에 부합하는 형태로 방향성을 설정하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의료에 있어서 하이테크(High-Tech) 영역이라고 여겨지던 항목들도 어느 순간 로우테크(Low-Tech) 로 변하게 되는 시점이 찾아온다. 즉, 지속적인 하이테크에 대한 갈증 없이는 발전을 견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박 학회장은 “우리는 IT선진국으로 불리는 나라임에도 이른바 ‘원격의료 쇄국정책’이 유지되고 있어 다른 나라의 발전 속도에 따라가기 어려운 상황이다. 빗장을 언제 풀지에 대한 심도있는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공지능(AI)을 필두로 4차 산업혁명의 시작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원격의료를 배제하고 가기에는 어려운 시점이 됐다. 국민의 요구도 역시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