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환율 방어 총력전에도 원달러 환율 고공행진 지속 "국민 재산 7% 증발" 경고했던 李 환율 리더십 어디로野 "돈 풀수록 물가 더 오르고 환율은 더 치솟을 것" 맹공전문가 "대통령 업무보고에서도 환율 발언은 없어"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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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원달러환율 등이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정부 부처 업무 보고를 생중계로 진행하면서 '넷플릭스 시청'과 견주며 집중하고 있는 사이, 원달러 환율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머금가는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정부가 국민연금까지 동원하고, 대기업과 증권사의 팔을 꺾으면서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환율은 내려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미 달러당 1500원이 넘는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모습이다.경제 전문가들은 외환 시장의 상황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여전히 지엽말단적으로, 임기응변식 대처에 머물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부가 각종 안정화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원화 약세 흐름을 되돌리기에는 한계가 뚜렷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대통령이 직접 수장이 돼 외환 시장을 근본적으로 안정시키기 위한 컨트롤타워를 가동해 환율 위기를 돌파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오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처럼 대통령 직속의 '워룸'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22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주간거래 종가보다 1.0원 오른 1477.3원에 거래를 시작했다.환율은 지난 17일 장중 1482.1원까지 뜀박질하며 미국 관세 이슈가 시장을 흔들었던 지난 4월 9일(1487.6원) 이후 8개월여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당시와 달리 현재 뚜렷한 악재가 없는 상황임에도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으로 이어지며 사실상 국정 공백 상태였던 시기와 맞먹는 수준으로 환율이 치솟으면서 시장의 경계심을 키우고 있다. 원화 가치 하락 폭이 예상보다 가파르면서 사실상 위기 국면에 들어선 것 아니냐는 불안감도 확산되고 있다.특히 새 정부 출범 이후인 하반기에 달러화가 상대적 약세를 보이고 있음에도 환율이 가파르게 오른 점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유로 등 주요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지난 1월 109까지 올랐으나 이달 들어 97∼98 수준에 머물고 있다. 달러 약세 국면에서도 원화 가치 하락 폭이 더 크게 나타난 셈이다.외환당국은 연일 시장 안정화 대책을 내놓고 있다. 금융기관에 적용되는 고도화된 외화유동성 스트레스 테스트의 감독상 조치를 내년 6월까지 한시적 유예하고, 수출기업의 '원화용도 외화대출' 범위를 국내 운전자금 등 경영상 목적까지 확대는 등을 골자로 하는 '외환건전성 제도 개편 방안'을 발표했다.서학개미와 국민연금 등 외환 수급 주체를 겨냥해 급증한 달러 유출을 억제하는데 초점을 맞춰온 기존 대응에서 벗어나 달러 유입을 늘리는 방향으로 정책의 방향타를 돌린 것이다.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18일 주요 대기업 관계자들을 만나 '달러 공급 협조'를 요청했다. 이 자리에서 김 실장은 기업들에 "(원화 약세 상황으로) 작은 이익을 보려고 하지 말아달라"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는 삼성전자, SK, 현대차, LG, 롯데, 한화오선, HD현대중공업의 최고재무관리자(CFO) 등이 참석했다. 일부 기업만 참석했지만 사실상 재계 전반을 향한 메세지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기업들로선 고환율이 물가와 민생에 부담이 된다는 정부 인식에는 공감하면서도 이미 환율을 반형해 설계된 사업 전략과 재무 계획을 단기간에 조정하는 것은 현실적 부담이 큰 상황이다.연말까지 환율을 낮추기 위한 정부 대응은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다. 연말 종가(30일 기준)는 기업과 금융기관이 내년 재무제표를 작성할 때 적용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주간거래 종가는 1472.5원에 달해 외환위기 당시인 1997년(1695.0원) 이후 27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환율 급등을 두고 "환율이 폭등해 이 나라 모든 국민의 재산이 7%씩 날라가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인가"라며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이 발언을 한 지난 2월 원달러 환율은 1444.3원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은 당대표 회의실에 환율을 비롯한 주요 경제지표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경제 상황판'을 설치하며 위기감을 부각시키기도 했다.이에 당시 환율 문제를 전면에 내세워 누구보다 강경한 발언을 쏟아냈던 대통령이 이제는 국정의 키를 쥔 만큼 환율 대응에서도 보다 적극적인 역할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환율 급등을 국민 자산의 잠식으로 규정하며 문제 제기했던 이 대통령이 집권 이후 환율 급등 상황에서 동일한 잣대와 긴장감으로 환율 불안에 대응해야 한다는 요구다. 고환율이 경제 전반을 뒤흔드는 국면에서 당국에만 책임을 맡길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 환율 대응 컨트롤타워를 가동해야 할 시점이라는 주장도 나온다.야당에서도 비판이 잇따른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이 정권이 자랑하는 비상경제점검 태스크포스(TF)도 7월 이후 문을 닫아버렸다"며 "그래 놓고 불쑥 선심 쓰듯 SNS에 민생대책 내놓은 것부터가 대통령의 진정성을 믿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이어 "현금 살표가 근본대책이 될 수 없다. 돈을 풀면 풀수록 물가는 더 오르고 환율은 더 치솟을 것"이라며 "다시 한번 경제 정책의 완전한 방향 전환을 촉구한다"고 했다.이를 두고 수도권 한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는 한국은행까지 총 동원해서 환율 급등을 막으려 하는데 사실상 대통령은 빠져 있다"며 "이번 업무보고 때도 환율 관련 발언이 없었다는게 그 반증"이라고 꼬집었다.전문가들은 고환율의 원인으로 구조적 요인을 꼽는다. 한미 관세 협상으로 매년 200억달러의 대미 투자 부담이 더해진 것 등이 원화 약세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염명배 충남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구조적 문제 해결이 필요하다"며 "민간 부분의 역량을 키우고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규제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