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장급 구두개입에 해외투자 비과세 카드까지환율 급락했지만 구조적 압력은 여전소비심리·실물경제로 번지는 고환율 충격단기 방어인가, 추세 전환의 시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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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달러 환율이 장중 1480원을 넘어서는 이른바 ''쇼크 구간'에 진입하자 정부와 외환당국이 강도 높은 대응에 나섰다. 국장급 공동 구두개입에 이어 해외 투자 자금의 국내 환류를 겨냥한 세제 인센티브까지 동시에 가동되면서, 환율은 단숨에 1450원대까지 급락했다. 다만 외환시장은 이번 조치를 추세 전환의 신호로 볼지, 또 하나의 단기 방어전으로 볼지를 놓고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24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484.9원에 출발하며 연고점을 경신했다. 그러나 개장 직후 외환당국이 "원화의 과도한 약세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공동 메시지를 내놓자 분위기는 급변했다. 환율은 계단식으로 하락하며 장중 한때 1450원대 초반까지 밀렸고, 전 거래일 대비 33.8원 내린 1449.8원에 마감했다.

    이번 구두개입은 수위와 형식 모두에서 이례적이다. 국제금융을 총괄하는 국장급 인사가 직접 메시지를 냈고, 단순한 우려 표명을 넘어 정책 실행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외환시장에서는 이를 추가 대응 여지를 남긴 '경고성 개입'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당국은 말뿐 아니라 행동도 병행했다. 정부는 해외 주식에 투자한 개인이 자금을 국내 시장으로 되돌릴 경우 해외주식 양도소득세를 한시적으로 면제하는 방안을 내놨다. 개인투자자가 해외 주식을 매도해 원화로 환전한 뒤 국내 주식에 장기 투자하면, 1인당 5000만원 한도 내에서 양도세를 비과세하는 방식이다. 해외 투자 확대가 외환 수급 불균형의 한 축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고환율의 부담은 이미 실물경제와 심리 지표로 확산되고 있다. 같은 날 발표된 소비자동향조사에서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109.9로 한 달 새 2.5포인트(p) 떨어졌다. 계엄이라는 특수 요인을 제외하면 최근 1년 사이 가장 큰 낙폭이다. 특히 현재 경기 인식과 향후 경기 전망 지수가 큰 폭으로 하락하며 체감경기 냉각이 뚜렷해졌다. 환율 변동성과 생활물가 부담이 소비 심리를 직접 압박한 결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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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율 수준 자체도 불안 요인이다. 외환위기 직후였던 1998년 원·달러 환율은 한때 1900원대까지 치솟았지만, 연평균으로는 1394.9원에 그쳤다. 반면 최근 환율은 위기 상황이 아님에도 1480원 안팎에서 장기간 머물며 IMF 시절 평균을 웃돌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글로벌 달러가 강세가 아닌 국면에서도 원화 약세가 지속된다는 점은 구조적 문제를 시사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환보유액의 실질적 방어력도 논쟁거리다.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약 4300억달러로 겉으로는 충분해 보이지만, 연간 수입액과 비교하면 약 7개월분 수준에 그친다. 일본과 중국이 각각 14~17개월분 수입을 감당할 수 있는 외환 완충력을 가진 것과 대비된다. 적극적인 시장 개입에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고환율의 여파는 취약 부문에서 먼저 나타나고 있다. 수입 원가 부담이 커지며 물가 압력이 누적되는 가운데, 고금리까지 겹치면서 자영업자와 영세 사업자의 재무 여건이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환율 상승이 비용 구조를 흔들고, 이는 소비 위축과 연체율 상승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시장에서는 이번 '구두개입+세제' 패키지를 고환율 국면의 분수령으로 본다. 과거에도 환율은 당국의 구두개입 직후 급락했다가 다시 반등하는 흐름을 반복했다. 달러 매도 개입이나 외환보유액 활용, 글로벌 달러 흐름 변화가 동반되지 않는 한 방향성을 바꾸기 어렵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세제 인센티브 역시 투자자 행동을 단기간에 바꾸기에는 유인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외환시장 한 관계자는 "당국의 의지는 분명히 전달됐지만, 환율 흐름을 바꾸려면 일회성 메시지나 인센티브를 넘어 실질적인 수급 개선이 뒤따라야 한다"며 "1450원대 안착 여부가 이번 대응의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글로벌 달러 흐름이 다시 강세로 돌아서거나 위험 회피 심리가 재부각될 경우 환율이 재차 반등할 여지도 남아 있다. 정책이 환율 '레벨 관리'에 집중될수록 시장이 당국의 방어선을 시험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박형중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달러 강세나 위험 회피가 유지되면 되돌림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며 "엔 캐리 청산에 원화 약세 압력이 높아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