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에 고용난 가중, 취약근로계층 제도권 편입시키기사회적 합의 미숙, 재원 조달 어려워… 가입자 늘리기 꼼수?정부 몫 실업부조 고용보험에 책임 전가…국민연금 꼴 날라
  • ▲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취임3주년 특별연설을 위해 청와대 브리핑룸으로 입장하고 있다.ⓒ청와대 제공
    ▲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취임3주년 특별연설을 위해 청와대 브리핑룸으로 입장하고 있다.ⓒ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전국민 고용보험 추진을 공언하면서 이를 위한 정책적 기반 마련이 가시화되고 있다.

    코로나19로 야기된 대규모 고용난이 임시·단기직에 종사하는 근로자나 영세 자영업자를 먼저 덮치자 이들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 확충을 서두르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취약 근로계층을 제도권으로 편입시키는 사회적 합의도 이뤄지지 않은데다, 여기에 들어가는 막대한 재원 마련방안도 녹록지 않아 부작용이 우려된다.

    결국 전국민 고용보험 가입은 기존 가입자의 부담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바로 고용보험료 인상이다. 그동안 고용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에 대한 복지를 담당해온 정부가 이를 사회기금에 책임을 전가한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1300만명 고용보험에 1500만명 얹기… 배보다 배꼽이 더 커

    한국고용정보원 고용행정통계에 따르면 지난 3월 고용보험 가입자는 1378만2000명. 꾸준히 늘고 있다지만 전체 경제활동인구 2778만9000명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

    나머지 1400만7000명은 특수고용노동자(특고, 220만명), 프리랜서, 영세 자영업자 등이다. 특히 고용보험 임의 가입이 가능한 1인 자영업자의 경우 405만명 중 1만5549명만 가입돼 있다(가입률 0.38%). 대부분 영세 자영업자나 저소득 근로자들이 비싼 고용보험 가입 자체를 꺼리기 때문이다.

    10인 미만 숙박 및 음식점 비정규직의 고용보험 미가입률은 77.6%에 달하며 예술·스포츠 및 여가 서비스업(75.7%), 협회·단체·수리 및 기타 개인 서비스업(72.4%), 교육 서비스업(67.3%) 등 상당수 임시직·프리랜서들의 미가입률은 절반을 상회한다.

    만약 이들이 고용보험이란 제도권 테두리에 들어온다면 막대한 재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고용보험 가입을 꺼리는 만큼 정부가 일정부분을 재정지원에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가야 할 길이긴 하지만 일시에 도입될 수 있는 방안이 아니다"는 신중론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11일 "먼저 특고종사자, 예술인 등에 대한 고용보험 적용을 신속히 추진하겠다"며 "이들에 대한 소득 파악체계를 구축하고 징수체계를 개편하는 등 준비작업에 착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용 취약계층의 고용보험 가입을 위한 재원이 얼마나 필요한지 계산해보겠다는 얘기다.
  • ▲ 고용보험기금 근로자 실업급여 계정의 수입․지출 및 재정수지 전망: 2018~2027년(단위 : 조원)ⓒ국회예산정책처
    ▲ 고용보험기금 근로자 실업급여 계정의 수입․지출 및 재정수지 전망: 2018~2027년(단위 : 조원)ⓒ국회예산정책처
    말라붙은 고용보험 기금, 작년 적자만 2.1조…가입자 늘려 재원 확보?

    문재인 대통령이 아직 사회적 합의가 부족한 전국민 고용보험 시대를 발표한 이면에는 빠르게 바닥을 보이는 고용보험 기금에서 그 원인을 찾는 시각이 팽배하다. 코로나19로 실업급여 지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당초 예상보다 기금재원 소진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국회예산정책처의 사회보험 재정전망에 따르면 고용보험 기금은 2018년 8100억원의 적자를 기록한데 이어 2019년 2조1000억원이 감소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9100억원 흑자, 2016년 1조3800억원 흑자, 2017년 6800억원 흑자인 것과 대비된다. 2017년 10조2544억원으로 최고점을 찍은 고용보험기금은 지난해 7조3500억원으로 뚝 떨어졌고 올해는 7조원 밑으로 떨어질 것이 확실시 된다.

    고용보험기금이 빠르게 줄어든 이유는 2가지다.

    첫째는 2013년 3.1%였던 실업률이 2018년 3.8%로 급증했고 2019년 6월 4.2%로 경신하는 등 실직자가 속출하면서 실업급여 지급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고용보험기금 중 실업급여계정은 지난 한해만 1조3802억원의 적자를 기록할 정도로 빠르게 소모됐다. 여기에는 실업급여 지급액이 평균 임금의 50%에서 60%로 확대되고, 지급 기간도 90∼240일에서 120∼270일로 30일이 늘어난 것도 주효했다.

    두번째 이유는 연간 1조5000억원이 들어가는 모성보호육아지원 사업 즉, 육아휴직급여 지급을 고용보험기금으로 충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지난해 10월 고용보험료율을 1.3%에서 1.6%로 올리는 특단의 조치를 단행했지만, 여전히 충분한 재원조달은 어려운 실정이다. 코로나19에 따른 고용률 감소로 예상만큼 보험료가 걷히지 않아서다.

    국회 기재위 관계자는 "정부의 당초 계획대로라면 고용보험기금 적자폭은 지난해 정점을 찍고 올해 -8000억 내년 -4000억원 등 점차 줄여나가 2023년에는 9000억원 흑자로 만들 계획이었다"며 "이 계획이 코로나19로 틀어지면서 사각지대 근로자들을 고용보험에 가입시키려는 의도가 좀 더 빨라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 ▲ 한 취업박람회에서 청년 구직자가 채용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뉴데일리 DB
    ▲ 한 취업박람회에서 청년 구직자가 채용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뉴데일리 DB
    DJ 전국민 국민연금처럼 기존 가입자 부담 가중 불가피

    전국민 고용보험 가입이 이뤄지면 결국 기존 가입자들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질 것은 불가피 해 보인다.

    20년이 넘도록 갖가지 부작용을 낳고 있는 DJ정부의 국민연금 전국민 확대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우려다.

    1999년 4월 김대중 정부는 영세 사업자와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까지 국민연금 대상자로 포함시키는 개혁을 단행한다. 소득규모가 파악되지 않는 자영업자나 불안정 근로자들의 수입을 파악하기 위해 개인 재산을 파악하고 소득신고를 독려하는 등 미숙한 징수체계로 많은 반발을 샀다.

    지역가입자라는 기형적 형태를 양산한 이 정책은 영세 자영업자에게는 부담스러운 보험료가 부과됐고, 직장가입자들도 덩달아 피해를 봤다.

    정부의 재정지원도 적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는 지출이 오히려 줄었다. 국민연금 확대로 정부가 최저생계비를 보장해야 하는 기초생활수급자 규모가 줄었기 때문이다.

    이번 고용보험 대상 확대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코로나19로 고용사각지대 근로자에게 쏟아붓는 실업부조 예산은 3차 추경안에 포함되는 고용안정대책 자금 10조원 등 20조원이 넘는다. 만약 특고종사자나 프리랜서, 영세 자영업자가 고용보험에 가입되면 정부가 그동안 전액 재정으로 지출했던 실업부조 예산을 아낄 수 있게 된다.

    정부 영역인 취약계층 실업·고용복지 책임을 사용자와 근로자가 부담하는 사회기금으로 전가시키는 셈이다.

    당장 고용보험료 인상 얘기가 정치권에서부터 거론되고 있다.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의 '고용보험 전국민 가입 추진' 발언 이후 당정은 소득수준에 따라 보험료를 차등해 징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1.6%로 동일한 기존 보험료율에서 고소득자에게는 더 높은 요율을 적용하는 방식이다.

    당장 직장가입자의 얇아지는 월급봉투를 걱정해야 하는 이유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세금(국세+지방세)과 사회보장기여금(4대 보험)을 나타내는 국민부담률은 2010년 22.4%에서 2018년 26.8%, 올해는 27.2%에 달할 전망이다. 해마다 오르는 세금과 사회보험료 탓이다.

    연봉 3000만원 직장인의 경우 월 실수령액은 2017년 224만8000원에서 올해 222만9000억원으로 1만9000원이 깎였다. 3년새 연간 22만8000원의 세금을 더내는 것이다.

    기재부 차관 출신인 송언석 미래통합당 의원은 "실업급여 고갈문제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에 따른 실업자 급증이라는 전형적인 정부의 정책실패로 발생한 것"이라며 "기금고갈 위기를 초래한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근본적인 문제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