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석유공급 심장부… 일일 약 44만 배럴 출하2018년 도유근절 마스터플랜 통해 범죄율 '뚝'누유감지시스템 자체 개발… "실시간 모니터링""도유범 처벌 수위 높이고 사회적 관심 필요"
  • ▲ 대한송유관공사(이하 송유관공사)의 판교저유소.ⓒ뉴데일리DB
    ▲ 대한송유관공사(이하 송유관공사)의 판교저유소.ⓒ뉴데일리DB
    "지난해 10건에 달했던 도유 범죄 건수가 올해 들어서는 단 1건으로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도유범죄는 그 자체로도 중대범죄지만 다양한 사회적 문제도 야기하는 만큼 도유범 소탕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지난 19일 오후 방문한 경기도 성남 대한송유관공사(이하 송유관공사)의 판교저유소. 사방이 산으로 둘러싼 이 곳은 기름 저장소 답게 각기 다른 크기의 저장탱크와 송유관들이 질서정연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해안가에 위치한 정유사들이 생산하는 제품들은 땅 속 1~2m 깊이에 묻힌 송유관으로 운반되는데, 울산의 영남라인과 여수의 호남라인에서 시작해 대전에서 합류해 수도권으로 이어진다. 

    대산의 호서라인은 충청권 석유 물류를 책임지며 천안에서 주배관망에 합류해 수도권에 닿는다. 이렇게 전국적으로 매설된 송유관의 길이는 서울 부산간 고속도로 길이의 2배 이상에 해당하는 총 1104km로 에너지 수송의 대동맥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중 판교저유소는 수도권 유류공급을 담당하는 핵심시설로 우리나라 석유공급의 최종 종착지다. 서울·경기 지역내 주유소들에서 판매되는 휘발유, 경유 등 석유제품들이 모두 이 곳을 거쳐 나간다고 보면 된다. 

    판교저유소는 217만9000배럴을 저장할 수 있는 40기의 탱크와 84개의 출하대를 통해 일일 약 44만 배럴을 출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방문 당시 석유제품을 실어나르는 유류탱크차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번호가 붙어 있는 출하대 곳곳에서 직원들이 유조차 위, 아래에서 석유제품을 담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하루 약 1150대의 유류탱크차가 판교주유소를 오고 나간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우리나라에는 판교를 비롯해 대전, 천안 등 전국 11개 저유소 164기의 탱크에서 국내 소비량의 6일분에 해당하는 500만 배럴의 경질류를 비축하고 있다.

    이를 통해 국내 석유 수송량의 60%에 달하는 연간 1억8905만배럴 이상을 실어 날라 내수 시장에 유통하고 있다. 국내 에너지 공급의 심장부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송유관공사는 배관망 관리에도 만전을 기하고 있다. 

    그러나 골칫거리도 존재한다. 송유관에서 몰래 기름을 빼내는 도유범들 때문이다. 

    도유범죄는 그 자체로도 중대범죄지만 도유 과정에서 화재나 인명피해, 상수원 오염 등 큰 사고로 확산될 수 있고 훔친 석유가 시장에 유통되는 등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야기한다.

    송유관공사가 지난 2018년부터 도유근절 마스터플랜을 수립해 도유 범죄와 전면전을 선포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를 위해 송유관공사는 감지 시스템 고도화 ▲인력 감시체계 확충 ▲관계기관 협력 강화 등 다양한 노력을 통해 송유관 석유 절도 행위를 근절해 나가고 있다.

    이런 노력은 최고의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3년 평균 14건이였던 도유 범죄 건수가 올해 들어서는 단 1건으로 눈에 띄는 감소세를 보인 것이다. 

    이런 성과에는 자체 개발한 누유감지시스템(d-POLIS·dopco-Pipeline Oil Leak Inspection System)이 큰 효과를 보였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송유관은 일정 압력에서 휘발유, 경유 등이 흐르고 있는데 외부 충격이나 인위적인 파손으로 기름이 새게 되면 유량과 압력에 변화가 생긴다. 

    d-POLIS는 송유관에 설치된 센서를 통해 미세한 압력·유량·온도·비중 변화에 대한 정보가 24시간 수시 전송돼 자동 분석되도록 고안된 시스템으로 기름이 새는 위치와 양까지 탐지 가능하다. 

    여기에 이동식 감지 기능이 추가되면서 실시간 탐측이나 장소제한 없이 모니터링이 가능한 모바일 d-POLIS를 구축했다. 이 시스템은 세계 최초 LTE통신을 기반으로 개발·상용화된 기술로 정밀성과 활용성을 인정 받아 특허로 출원되는 등 d-POLIS 관련 특허만 10건에 달한다.

    기술 고도화와 함께 감시 인력을 활용한 예방체계도 상시 가동 중이다. 관로 상부에서 송유관 피복손상을 탐지할 수 있는 특수장비인 관로피복손상탐측기(PCM·Pipeline Current Mapper)를 이용해 탐측을 강화하는 한편 CCTV를 관로 전구간에 설치해 수시로 도유를 감시하고, 야간이나 차량 진입이 힘든 구간은 열화상 카메라를 사용한다.

    관계기관과 협력체계도 강화하고 있다. 도유범 소탕에 뜻을 같이 하는 지방경찰청, 한국석유관리원 등과 정기 간담회를 통해 도유관련 정보를 공유하고 업무협조체계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다만 업계에서는 도유범들의 범죄를 원천봉쇄하기 위해서는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도유범 검거를 위한 관계기관의 다양한 노력으로 검거율은 높였지만, 재범률이 여전히 높아서다.

    실제로 최근 5년간 도유범 선고 형량을 살펴보면 2년 이하의 징역형이 46% 수준으로 도유범죄의 심각성 등을 고려하면 그 처벌수위가 미약한 실정이다. 법원이 송유관 도유행위를 생계형 범죄로 인식해 형량을 낮춰주기 때문인데 집행유예나 불구속으로 풀어주는 경우도 많다. 

    이와 함께 도유범죄를 단순 절도가 아닌 심각한 조직범죄로 인식하는 관계당국의 인식전환과 함께 업계와 시민들의 사회적 관심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대한송유관공사 관계자는 "도유범죄는 막대한 국가적, 사회적 폐해를 불러 일으킨다"며 "구멍을 뚫어 샌 기름에 주변 토양은 물론 하천이 오염되는 피해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기름에 오염된 토양과 수질을 복구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고, 경제적인 피해도 막대하다"며 "재범률을 낮출 수 있도록 강력한 형량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