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 영장 기각… "구속 필요 소명 부족"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 요청 직후 '청구' 구설수"文 정부 들어 대기업 '적폐몰이 수사' 자행" 지적도
  • ▲ 지난 8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하고 있는 모습. ⓒ뉴데일리DB ⓒ뉴데일리 DB
    ▲ 지난 8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하고 있는 모습. ⓒ뉴데일리DB ⓒ뉴데일리 DB
    삼성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을 수사해온 검찰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구속 필요성의 소명이 부족하다며 기각했다.

    이 부회장의 구속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검찰은 유독 대기업에만 엄격한 잣대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원정숙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9일 새벽 자본시장법 위반(부정거래 및 시세조종 행위)과 외부감사법 위반 혐의를 받는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 영장을 기각했다.

    검찰은 구속영장 청구서에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및 시세조종 행위, 주식회사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위반, 위증 등 혐의를 적시했다.

    앞서 두 차례 검찰 소환 조사에서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던 이 부회장은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통해 기소 여부와 수사의 적절성을 국민에게 판단받겠다고 요청했지만, 검찰은 이틀 뒤인 지난 4일 이 부회장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1년 6개월 간 수사를 진행해왔던 수사팀은 지속해서 이 부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신병 확보를 통해 공판 과정에서까지 수사 동력을 살리는 구속기소 필요성을 주장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회계부정이라는 사안의 중대성이나 불법 승계의 최대 수혜자로서 이 부회장의 법적 책임 등을 고려할 때 신병확보 없이 불구속 기소하는 것은 다른 사안과의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취지에서다. 검찰은 150쪽 분량의 구속영장 청구서와 함께 구속이 필요한 이유를 담은 수백 쪽 분량의 의견서를 함께 제출했다. 400권·20만 쪽에 달하는 수사 기록을 법원에 접수시키느라 트럭까지 동원했다는 후문이다.

    이에 재계에서는 검찰수사심의위원회를 만든 취지가 유독 대기업에 대해서만 다른 잣대로 적용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검찰 수사의 중립성 확보와 수사권 남용 등을 막기 위해 도입된 제도인데, 대기업만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다.

    지난 2017년 8월 문무일 전 검찰총장은 검찰수사심의위원회 도입에 대해 "검찰이 불신을 받는 내용을 보면 '왜 그 수사를 했느냐', '수사 착수 동기가 뭐냐'를 의심하는 경우가 있고 '과잉 수사다', '수사가 너무 지체된다'는 문제제기도 많다. 이런 부분도 (검찰수사심의위원회로부터) 점검 받고 (필요하다면) 사후적으로도 수사하도록 하려고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수사팀은 구속영장 청구가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검찰 수뇌부 일각의 입장에도 '삼성 봐주기 수사는 안된다'며 영장 청구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해 관철시킨 것으로 전해진다.

    윤석열 검찰총장 역시 대기업에 엄격한 잣대를 가지고 사법처리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윤 총장은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삼성전자와 SK, 현대자동차, LG전자, SK이노베이션, 기아자동차 등 대기업 관련 수사에 속도를 냈던 인물이다.

    김진태 전 의원은 지난해 윤 총장의 인사청문회 관련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정부 들어 10대 기업 중 9곳이, 100대 기업은 절반 이상이 검찰 수사에 시달렸다"며 "특히 윤 후보자는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있으면서 과도한 적폐몰이 수사로 기업 죽이기를 자행했다"고 주장했다. 국내 10대 대기업 중 절반 이상을 직접 수사하며 기업을 적폐로 몰았다는 지적이다.

    검찰은 코로나19와 미중 무역분쟁, 한일 갈등 등 대외 리스크가 동반된 어려운 경영 여건에도 불구하고 도주 우려가 없는 이 부회장에 구속영장을 청구해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낳았다.

    특히 삼성전자의 경우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0%에 달하는 만큼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막대하다.

    경제단체 한 관계자는 "삼성 측이 지난 1년 8개월간 이뤄진 고강도 수사에 성실히 협조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이례적으로 수사심의 절차 중에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등 유독 대기업에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아닌지 안타깝다"고 전했다.

    이같은 우려는 외신에서도 쏟아지고 있다. 앞서 외신들은 이 부회장이 구속되면 삼성의 중장기 경영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분석을 잇따라 내놨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지난 4월 말 "이 부회장에게 유죄가 선고된다면 대신할 인물이 있을지 불확실하다"고 언급했다. 미국 AP통신도 "삼성이 불안정한 반도체 시황과 미·중 무역 분쟁 등으로 고군분투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부회장의 부재는 회사의 의사결정 과정에 피해를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프랑스 AFP통신도 " 유죄 판결이 내려진다면 삼성은 가장 중요한 결정권자를 잃을 수도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재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우리 경제는 한치 앞을 전망할 수 없는 가운데 미중 간 무역분쟁 등 대외적인 불확실성까지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런 상황을 극복하는 주역이 돼야 할 삼성이 검찰의 흔들기로 경영 위기까지 맞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