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액 큰 바나나·파인애플도 양허제외로 보호기존 FTA로 추가 개방 최소… 관세철폐기간 확보韓·日 첫 FTA… 낮은 수준의 개방·상징적 합의
  • ▲ 벼 수확.ⓒ연합뉴스
    ▲ 벼 수확.ⓒ연합뉴스
    세계 최대 규모 자유무역협정(FTA)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최종 타결된 가운데 민감한 농·수산분야는 추가 시장 개방을 최소화해 피해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첫 FTA를 맺은 일본과는 소주·막걸리, 천일염·양식 뱀장어 등의 품목에서 수출이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는 15일 열린 제4차 RCEP 온라인 정상회의에서 최종 서명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RCEP는 아세안(ASEAN) 10개국과 한국·중국·일본·호주·뉴질랜드 등 총 15개국이 참여했다. 애초 인도도 포함됐지만, 지난해 협정문 타결 과정에서 빠졌다.

    RCEP는 무역규모 5조4000억 달러, 국내총생산(GDP) 26조3000억 달러, 인구 22억6000만명 등 전 세계의 30%쯤에 달하는 거대시장에 대해 FTA가 체결됐다는 데 의미가 있다.

    농산물 분야는 협상과정에서 추가 개방을 최소화했다는 게 농림축산식품부 설명이다. 먼저 핵심 민감품목인 쌀·고추·마늘·양파·사과 등은 양허제외로 보호했다. 쌀은 현행 513% 고율관세가 유지된다. 마늘(360%)과 고추(270%) 등도 마찬가지다. 수입액이 큰 바나나(2억4100만 달러)와 파인애플(7900만 달러) 등도 양허제외 품목에 포함됐다.

    농식품부는 추가로 시장이 열리는 품목에 대해선 관세철폐 기간을 충분히 확보했다는 견해다. 아세안과는 열대과일 중 구아바·파파야·망고스틴을 개방하기로 했다. 현행 30% 관세를 각각 10년에 걸쳐 없애게 된다. 매년 3%씩 줄여나가야 한다.

    중국과는 녹용에 붙는 현재 20% 관세를 20년에 걸쳐 없애기로 합의했다. 덱스트린(변성전분)은 8% 관세를 즉시 철폐한다. 호주에는 소시지 케이싱만을 추가로 개방했다. 현행 27% 관세는 20년에 걸쳐 무관세로 전환한다. 뉴질랜드와는 추가 개방없이 협상을 마무리했다.

    일본과는 첫 FTA여서 개방품목이 상대적으로 많다. 추가 개방품목이 아세안 130개(8%), 호주 2개(0.2%), 중국 4개(0.2%)였던 데 비해 일본은 750개(46%)다. 청주는 15% 관세를 15년, 맥주는 30% 관세를 20년에 걸쳐 각각 없애기로 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FTA 평균 농산물 관세철폐 비중(자율화율)이 72%다. 일본과는 46%로 낮은 수준의 개방"이라고 부연했다.

    우리 농산물 수출은 일본의 경우 소주·막걸리, 인도네시아는 사과·배, 태국은 딸기의 시장 접근성이 개선될 거로 예상된다. 일본은 앞으로 20년에 걸쳐 우리 소주에 매겼던 16% 관세를 철폐해야 한다. 막걸리도 ℓ당 42.4엔을 부과하던 관세를 20년에 걸쳐 없애기로 했다. 지난해 대일 수출액은 소주 4456만 달러, 막걸리 648만 달러였다. 인도네시아는 우리 사과·배에 물리던 5% 관세를 즉시 철폐한다.
  • ▲ 오징어.ⓒ연합뉴스
    ▲ 오징어.ⓒ연합뉴스
    수산물도 추가 시장 개방을 최소화하는 수준에서 협상이 마무리됐다고 해양수산부가 전했다. 일본과는 2017~2019년 평균 교역액을 기준으로 수입은 1억4200만 달러의 2.9%에 해당하는 400만 달러, 수출은 7억5400만 달러의 4.1%인 3100만 달러 수준으로 개방을 결정했다. 돔·가리비·방어 등 민감 품목은 현행 관세를 유지한다. 우리가 시장을 연 302개 품목 중 청어필렛·검정대구필렛(냉동) 등은 관세를 즉시 철폐한다. 이빨고기(냉동)와 남방참다랑어(냉장) 등은 10년, 새조개(냉동)와 눈다랑어(냉장), 캐비아대용물 등은 15년에 걸쳐 관세를 없앤다.

    중국과는 추가 개방없이 2015년 발효한 FTA를 따르기로 했다. 한·중 FTA는 협상품목 631개 중 542개를 이미 개방한 상태다. 2017~2019년 평균 총수입액 기준으로 13억6200만 달러의 36%에 해당하는 4억9100만 달러 규모다.

    아세안과는 평균 총수입액 3억2600만 달러의 1.6%인 500만 달러, 평균 총수출액 2억9700만 달러의 97.9%인 2억9100만 달러를 추가 개방하기로 합의했다. 가다랑어·황다랑어(냉동), 김(조제) 등을 수출할 때 붙던 5% 관세는 RCEP 발효 즉시 사라진다. 우리는 어린 농어 등에 매기던 관세를 즉시 없애고 대서양·태평양참다랑어는 15년, 다시마와 대게는 20년에 걸쳐 관세를 없애기로 협상했다.

    베트남과는 평균 총수입액 8억100만 달러의 0.4%인 300만 달러 규모 시장을 추가로 열기로 했다. 마른 해조류와 갑오징어(훈제)는 10년, 남방참다랑어는 15년에 걸쳐 관세를 철폐한다. 수출은 기존 FTA에서 1억3200만 달러 규모의 베트남 시장이 이미 열려 추가 협상은 없었다. 우동식 해수부 국제협력정책관은 "민감 품목은 막고 추가 개방은 기존 FTA를 기준으로 최소화해 수입 확대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했다"면서 "일본과는 전체 RCEP 타결을 위해 최소 수준에서 상징적으로 협상을 마무리하기로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말했다.
  • ▲ 지난 8월 열린 제8차 RCEP 장관회의.ⓒ연합뉴스
    ▲ 지난 8월 열린 제8차 RCEP 장관회의.ⓒ연합뉴스
    이번 협상에는 세계무역기구(WTO)의 '위생·식물위생 조치의 적용에 관한 협정'(SPS)과 관련해 절차를 구체화하고 정보교환을 강화하는 내용도 담겼다. 수입식품 위생·검역에서 중대한 부적격이 발생했을 때 수출국에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할 수 있게 했다.

    원산지는 신선 농산물의 경우 우회수입을 막고자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기로 했다. 처음부터 해당 수출국에서 전적으로 획득하거나 생산한 경우에만 원산지를 인정하는 완전생산기준(WO)이나 유사 기준을 정하기로 합의했다. 가공식품은 원료수급 여건 등을 고려해 완화한 기준을 적용한다.

    정부 관계자는 "통상조약법에 따라 앞으로 6개월쯤 FTA에 따른 영향평가를 진행할 것"이라며 "결과를 보고 필요하면 피해 보완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