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물꼬 트고 민주당 펌프질…洪부총리 악역 조연올 1차 추경안 내주 국회 제출… 당정 28일까지 결론與 "'소득하위40%' 일괄지원" 압박… 정액 지급 가닥
  • ▲ 재난지원금.ⓒ연합뉴스
    ▲ 재난지원금.ⓒ연합뉴스
    4·7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제4차 재난지원금이 풀릴 예정인 가운데 당·정·청이 재난지원금을 두고 결국 쇼를 한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이란 지적에 더불어민주당과 청와대가 논의를 확대 재생산하며 지급의 당위성을 설파하고 여기에 재정당국이 반발하는 모양새까지 갖춰 극적 효과를 높였지만 결국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넌 대답만 하면 돼)식 결론에 도달하는 모습이 연출되고 있어서다.

    민주당은 오는 24∼25일쯤 4차 재난지원금 관련 세부 내용의 가닥을 잡고 28일까지 당정 합의를 마무리한 뒤 다음 달 2일 국무회의에서 추경안을 확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난 2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확대간부회의를 열고 "(재난지원금 지급 등을 위한) 1차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을 다음 주 국회 제출할 수 있게 준비해달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정부는 추경을 신속히 편성하고 국회의 협조를 구하라"며 "가급적 3월 중에는 (4차 재난지원금) 집행이 시작되도록 속도를 내달라"고 지시했다. 4차 재난지원금 지급규모와 방식을 두고 언제 당정 간 갈등이 있었냐는 듯 일사불란한 모습이다.

    4차 재난지원금 지급과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그리고 이를 위한 추경 편성은 추진 과정에서 포퓰리즘 논란이 일고 당정 간 첨예한 갈등을 빚는 모습도 보였지만, 결국 민주당 주장대로 흘러가는 모습이다. 일각에선 일련의 과정이 잘 짜인 한편의 쇼를 보는 것 같다는 의견마저 나온다.

    민주당은 애초 4·7 재·보궐선거 이전에 4차 재난지원금을 지급해야 한다며 선별·보편 지급 병행 방침을 세웠고, 이를 두고 곳간지기인 홍 부총리와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갈등은 문 대통령이 지난 8일 수보회의에서 "정부는 재정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과감하게, 실기하지 않고, 충분한 위기 극복방안을 강구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한 뒤 봉합되는 모습을 보였다. 문 대통령 발언은 '과감하고 충분한' 지원과 '재정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라는 서로 상충하는 말이 뒤섞여 있고, 그동안 당정 간 견해차가 '재정 여력'을 어떻게 보느냐에서 갈렸던 만큼 모호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일각에선 발언의 내용보다 갈등을 봉합하려는 움직임 자체에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갈수록 레임덕 논란이 커지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의 발언을 계기로 당정이 갈등을 봉합하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줌으로써 남은 기간 국정운영의 주도권을 쥐면서도 책임은 피하려는 정치공학적 노림수가 깔렸다는 해석이었다. 이후 민주당은 선(先) 선별 후(後) 보편 지급으로 절충안을 냈고 당정은 취약계층을 '더 두텁게' 지원하는 방향으로 보조를 맞추고 있다.
  • ▲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는 이낙연 대표.ⓒ연합뉴스
    ▲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는 이낙연 대표.ⓒ연합뉴스
    전 국민 보편지급 논란만 봐도 당·청은 속 보이는 말치레를 주고받아왔다. 문 대통령은 지난 19일 청와대에서 민주당 지도부와 오찬 간담회를 하고 "코로나19에서 벗어날 상황이 되면 국민 위로 지원금, 국민 사기 진작용 지원금 지급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곧바로 '맞춤형 지원뿐 아니라 코로나 추이를 보고 경기진작용 전 국민 지원도 하겠다'고 밝힌 이낙연 대표의 제안을 문 대통령이 전폭 수용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발언은 새로울 것도 이 대표의 제안을 수용한 것도 아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18일 청와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보편 지급 논란에 대해 "지금처럼 방역이 어려운 상황에서 소상공인 피해가 지속한다면 선별방식으로 지급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다만 (코로나19가) 거의 진정돼 국민 사기 진작 차원에서 지원금을 주자는 상황이라면 그때는 보편 지급도 생각할 수 있다"고 밝혔다. 사실상 문 대통령이 전 국민 보편 지급의 물꼬를 튼 뒤 민주당이 펌프질하며 논의를 확대 재생산하고 다시 문 대통령이 쐐기를 박는 순서를 밟은 셈이다.

    이 과정에서 홍 부총리는 민주당 입장에선 악역으로 등장해 조연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동안 당정 간 마찰음이 날 때마다 소신을 꺾어 '홍백기' '홍두사미'란 별명을 얻은 홍 부총리는 민주당의 계속된 압박에도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며 뜻밖의(?) 강경한 모습을 보였지만, 결국엔 꼬리를 내리는 모습이다. 지난 5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도 "(문재인 정부) 마지막 해가 되면 국가채무비율이 60%에 육박한다"고 피력했던 홍 부총리는 사실상 나중에 막대한 나랏빚을 또 져야만 하는 데도 문 대통령이 전 국민 보편 지급을 공식화한 이후로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있다. 홍 부총리는 지난해 11월 주식 양도소득세를 부과하는 대주주 기준을 확대하는 정부안이 민주당의 반대로 무산되자 책임을 통감한다며 사의를 표명했고 문 대통령이 이를 반려하자 하루도 안 돼 "부총리로서 직무수행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히는 촌극을 연출했었다. 당시 국민의힘 예결위 간사인 추경호 의원은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국민은 엉성한 각본에 의한 정치쇼라고 생각한다"며 홍 부총리의 사과를 요구한 바 있다.
  • ▲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발언하는 문재인 대통령.ⓒ연합뉴스
    ▲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발언하는 문재인 대통령.ⓒ연합뉴스
    민주당은 홍 부총리를 다시 압박하는 중이다. 피해 지원금뿐 아니라 일자리, 백신 예산까지 포함해 이번 추경이 최소 20조원은 돼야 한다는 의견이 당내에서 여전히 강하게 제시된다. 여당은 '소득 하위 40%'에 해당하는 소득 1∼2분위 대상자에 대한 일괄 정액 지원을 재정 당국에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이 22일 수보회의에서 지난해 4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를 인용하며 "저소득층인 1·2분위의 소득과 소상공인·자영업자의 사업소득도 줄었음에도 정부의 정책대응으로 이전소득이 늘어 전체 가계소득은 늘었다"며 "앞으로 정부는 재정의 적극적 역할을 더 강화해 나가겠다"고 강조한 만큼 홍 부총리가 조만간 또다시 소신을 굽힐 거라는 시각이 많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매년 추경을 짜왔다. 지난해까지 총 88조원 규모로, 앞선 노무현·이명박·박근혜 3개 정부의 추경을 모두 합한 규모(90조1000억원)와 비슷하다. 이번 추경에 12조원만 반영해도 문재인 정부 들어 추경 규모가 총 100조원을 넘게 된다. 이는 노무현 정부 초반 1년치 본예산과 맞먹는 규모다.
  • ▲ 생각 잠긴 홍남기 부총리.ⓒ연합뉴스
    ▲ 생각 잠긴 홍남기 부총리.ⓒ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