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공식일정으로 전경련 방문묘연한 한일관계 회복, 민간 경제교류로 돌파 전략전경련 대일 소통채널 유지… 양국 상의회의는 단절
  • 한일 관계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가운데 새로 부임한 아이보시 고이치 일본대사가 전경련을 가장 먼저 찾아 눈길을 끌고 있다.

    현정권들어 제1 경제단체로 부상한 상공회의소 대신 전경련으로 발길이 먼저 향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점이 적지 않다는 분석이다. 양국간 정치적 관계복원이 묘연한 상황에서 민간 경제협력을 기반으로 반전을 모색하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뒤따른다.

    아이보시 대사는 지난달 입국해 2주간 자가격리를 거친 후 외교부에 신임장 사본을 제출했다. 관례상 특별한 대외활동을 하지 않는 3·1절 주간을 지낸 뒤 첫 공식일정은 허창수 전경련 회장 방문이었다. 허 회장과 아이보시 대사는 지난 8일 양국간 협력증진 방안 등 주요 현안에 대해 논의했다.

    이날 접견에서 허 회장은 단절된 한일 민간 교류가 더욱 확대돼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경련 관계자는 "2년 가가까이 이어진 한일 수출분쟁으로 점차 진영화되는 글로벌 경쟁 속에서 양국이 치킨 게임을 벌이는 상황"이라며 "미국 바이든 정부 출범과 발맞춰 한미일 경제협력체계 구축이 시급하다는 인식"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아이보시 대사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한국이 가입하는 동향에 대해 관심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이 주도한 CPTPP는 트럼프 행정부 시절 탈퇴한 이후 일본이 주도하는 경제동맹체다. 한국 정부는 바이든 대통령 당선 이후 미국의 재가입이 유력해지자 여기에 서둘러 가입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전경련 조사에 따르면 한국이 미국과 함께 CPTPP에 가입할 경우 실질 GDP는 3.1%P 늘어난다.
  • ▲ 허창수 전경련 회장과 아이보시 고이치 일본 대사가 주먹 인사를 나누고 있다.
    ▲ 허창수 전경련 회장과 아이보시 고이치 일본 대사가 주먹 인사를 나누고 있다.
    아이보시 대사의 행보는 지지부진한 한일 관계 회복을 타개하기 위해 적극적인 민간 교류 확대를 해법으로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혼자 신승훈 콘서트를 찾을 정도로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은 아이보시 대사는 DJ정부와 노무현 정부 당시 주한 일본대사관에서 근무한 대표적 지한파다.

    외연확대로 국내 경제단체를 대표하는 대한상의의 최 회장보다 허 회장을 먼저 찾았다는 점도 주목할만한 점이다. 전경련은 1983년 이후 일본 최대 경제단체 게이단렌과 한일 재계회의를 개최하며 최고위급으로 구성된 탄탄한 소통 채널을 구축하고 있다. 한일 재계회의는 지난해 코로나19 여파로 한차례 미뤄지긴 했지만 꾸준히 소통이 이뤄지는 반면, 양국 상공회의소 회의는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단절된 상태다.

    전경련은 2007년 이명박 대통령의 기습 독도 방문으로 악화된 양국 관계를 당시에도 전경련을 이끌던 허 회장의 한일 재계회의 재개로 풀어낸 바 있다. 또 2018년 일본 기업에 대한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으로 굳어진 양국 갈등을 일본 재계의 초청을 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현지 정재계 관계자들과 연쇄 비지니스 미팅을 소화하며 누그러뜨리기도 했다.

    한일 관계 회복을 위한 정치적 돌파구는 여전히 불안정한 상태다. 문재인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정부는 언제든 일본 정부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눌 준비가 돼 있다"며 일본을 '가장 가까운 이웃'이라고 치켜세웠다. 하지만 지난달 취임한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한달이 지나도록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과 전화통화조차 못한 상태다. 아이보시 일본 대사도 외교부에 신임장을 제출하면서 정 장관이 아닌 최종건 1차관만 만났고, 지난 1월 일본에 입국한 강창일 신임 주일 대사도 외무상 접견이 미뤄지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골수 지한파인 아이보시 대사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중국을 위시한 일대일로 경제동맹에 맞서는 한중일 삼각동맹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소통채널 재건을 위해 전경련의 역할을 높게 평가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