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청원 글 닷새만에 5.5만명 넘어…현 추세면 30만명 웃돌듯일부 전문가 "특단대책 필요…흐지부지 넘기면 정책 근간 흔들려""오락가락 정책 혼란 가중" 반론도…"귀닫은 정부가 듣겠나" 의견도文대통령 "2·4 공급대책 속도 내야"… 與 "비리 심각하면 취소할 수도"
  • ▲ LH 직원 투기 의혹이 제기된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재활용사업장 인근 토지에 묘목들이 심겨 있다.ⓒ연합뉴스
    ▲ LH 직원 투기 의혹이 제기된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재활용사업장 인근 토지에 묘목들이 심겨 있다.ⓒ연합뉴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집단 땅 투기 의혹으로 추락한 정부의 부동산정책 신뢰 회복을 위해 3기 신도시로 추가 선정된 광명·시흥지구의 지정 철회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정책 신뢰 회복을 위해 발표한 일정대로 대책을 추진한다는 태도여서 국민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동산전문가 사이에서도 찬반 의견이 갈리는 모습이다.

    10일 청와대에 따르면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제3기 신도시 철회 바랍니다' 청원글에 5만6000명 이상이 동참하고 있다. "LH 주도의 제3기 신도시 지정을 철회해달라.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야 하느냐"라는 내용의 청원 글은 지난 5일 올라왔다. 하루 1만명 이상이 동참하는 중으로, 이런 추세라면 청원마감일인 다음 달 4일까지 30만명 이상이 동참할 것으로 추산돼 청와대의 답변 기준인 20만명을 웃돌 것으로 보인다.

    해당 글은 현재 국민청원 상위 5개 글 가운데 3번째로 많은 동의를 받고 있다. 교통·건축·국토 부문에선 유일하게 상위에 랭크돼 있다.
  • ▲ 국민청원 글 화면 캡처.ⓒ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홈페이지
    ▲ 국민청원 글 화면 캡처.ⓒ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홈페이지
    3기 신도시 지명 철회에 대한 전문가 의견은 찬반이 나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LH 직원들이 내부 정보를 이용해 (차명거래로) 친척들 부자 만들어준다는 얘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며 "이번에 빙산의 일각이 드러났지만, 어찌 보면 우리 사회의 오랜,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을 기회"라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정부가) 선거를 의식해 추상적인 말치레나 보여주기식 대처에 그친다면 국민 신뢰를 회복하는 데 충분치 않을 거다. 대통령이 나서 적극적인 수사를 주문해도 앞서 '버닝썬' 같은 잘못된 사례를 보면 결국 흐지부지 끝날 수 있다"면서 "지금은 원칙을 세우고 시간이 걸려도 올바른 선례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어쩌면 광명·시흥을 날리는 대신 기존의 3기 신도시 택지를 그대로 살릴 수 있는 상황이 될 수 있다. 긴 안목으로 보면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것"이라면서 "정부가 부동산시장의 교란 원인으로 투기세력을 지적해왔고 정작 공공기관 임직원들이 투기세력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만큼 특단의 대책이 없으면 정부 부동산정책의 근간이 흔들릴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와 여당이 이번 LH 사태에 '패가망신을 시키겠다' '일벌백계하겠다' 등 연일 강력한 대응을 주장하지만, 정부의 '셀프·늑장'조사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큰 실정이다. 검사 출신인 국민의힘 김웅 의원은 지난 6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명운을 걸고 수사한다던 버닝썬 수사가 떠오른다"며 "결국 잔챙이들만 부동산 투기 세력으로 몰려서 마녀재판을 받고 진짜 괴물들은 다 빠져나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연구원은 "정부가 광명·시흥을 3기 신도시로 발표했지만, 7만 가구가 단기간에 '뚝딱' 공급될 거로 생각하는 국민은 없다"면서 "(광명·시흥은) 지구 지정도 되지 않은 상태여서 따로 매몰비용이 발생하지도 않는다. (정부로서도) 한 발 빼기에 나쁘지 않은 타이밍"이라고 주장했다.
  • ▲ 2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LH 직원들의 광명·시흥 신도시 사전투기의혹 공익감사청구' 기자회견 모습.ⓒ연합뉴스
    ▲ 2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LH 직원들의 광명·시흥 신도시 사전투기의혹 공익감사청구' 기자회견 모습.ⓒ연합뉴스
    광명·시흥 지정 철회에 회의적인 시각도 적잖다. 김학환 숭실사이버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LH 직원들이 도덕적으로 해선 안 될 일을 저질렀지만, 지금 와서 (신도시 지정을) 원점으로 되돌린다면 오히려 정책 신뢰도가 무너지지 않을까 생각한다"면서 "그동안 부동산정책이 오락가락하면서 (정부 스스로) 신뢰를 잃은 적이 많은데 (지정 철회는) 이를 더 가중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 교수는 "지정 철회로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게 아니다. 너무 극단적인 처방이 아닐까 싶다"면서 "우선 문제를 수습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일단은 기존 대책을 일정대로 끌고 가는 게 맞다"고 덧붙였다. 다만 김 교수는 "감사원 등이 아닌 부처 차원의 셀프조사로는 설령 조사가 제대로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국민이 가지는 의혹을 해소하기 어렵다"면서 "(의혹 관련) 철저한 전수조사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지정 철회를 주장하는) 심정은 이해한다"면서 "다만 다른 곳에서도 투기가 확인되면 어떻게 할 건지 생각해야 한다. (지정 철회는) 과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이어 심 교수는 "정부 입장에서도 당연히 물러나지 않을 거다. 지금까지 (전문가들이) 뭐라고 하든 (부동산 정책을) 밀어붙여 왔는데 지금 와서 듣겠느냐"면서 "과거 비슷한 사례를 봐도 (정부가) 이미 지정한 신도시는 그대로 밀고 갈 것"이라고 말했다.
  • ▲ 발언하는 문재인 대통령.ⓒ연합뉴스
    ▲ 발언하는 문재인 대통령.ⓒ연합뉴스
    정부는 주택공급 대책을 강행한다는 태도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일 내부 회의에서 이번 사태와 관련해 "투기는 투기대로 조사하되, 정부의 주택공급 대책에 대한 신뢰가 흔들려선 안 된다. (2·4 부동산대책이) 오히려 더 속도감 있게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고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여당 일각에선 추이를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정책위의장은 9일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 인터뷰에서 3기 신도시 지정 취소 주장에 대해 "조사 결과를 지켜볼 필요성이 있다"고 전제한 뒤 "정부 여당 차원에서 검토한 것은 없지만, 조사에서 비리가 심각하다면 그럴 가능성도 있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