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 "가톨릭 수녀 제안으로 보육원 아동 펀드 투자 현실화""18세면 보호시설 떠나야…보호아동 경제독립, 한국 미래위해 꼭 필요한 일"직원들도 대리인으로 나서…따뜻한 동참 행렬 절실
  • 최근 서울 삼청동 모처 아동양육시설에서 사목(봉사)하는 한 가톨릭 수도회 수녀가 동학개미의 정신적 지주로 떠오른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를 찾아왔다.

    일종의 투자 상담이었다. 저명한 투자 전문가와 일생을 청빈하게 살겠다 서약한 수녀와의 만남이라니, 어딘지 어색하게 들렸다. 

    소위 'TV만 틀면 나올 정도'로 활발한 대외활동을 통해 투자자 교육을 앞장서온 그의 파급력이 수녀원에까지 닿은 것이다. 

    수녀의 제안은 당차고, 과감했고, 또 간절했다.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됐던 보호종료 아동 문제를 존 리 대표 앞에 꺼내들었다.

    '열여덟 어른', 민법상 미성년의 나이인 열여덟에 보육원을 나와 자립하는 보호종료 아동을 상징하는 표현이다. 

    아동복지법상 양육시설에서 보호받던 아이들은 만18세가 되면 보호시설을 강제로 떠나야 한다. 보호가 종료되는 아동·청소년은 한 해 2500명. 본인 의지와 상관 없이 독립해야 하는 이들에게 제공되는 건 500만원가량의 자립정착금과 3년간 매달 30만원 수준의 자립수당 정도다.

    장성한 어른들에게조차 녹록치 않은 세상에 오롯이 홀로 선 아이들이 자립하기엔 터무니 없이 적다. 이는 불안정한 여건으로 이어져 드러나지 않는 범죄 피해·빈곤·죽음 등 그들의 참상은 최근 한 비영리 공익재단의 캠페인을 통해 재조명되고 있다. 

    전 국민 투자 열기가 뜨겁던 어느날, '금융문맹 탈출과 경제독립 운동'을 강조하던 존 리 대표의 콘텐츠를 접한 수녀는 아이들을 도울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실낱 같은 희망을 품고 그의 사무실에 찾은 것이다.

    존 리 대표는 "처음엔 아동양육시설에서 봉사하는 수녀가 나를 왜 찾아왔을까 놀랐지만 간절함을 담은 그의 제안은 더 놀랍고 반가웠다"면서 "보육원 아이들의 이름으로 주식과 펀드 등에 장기투자를 하면 세상에 나갔을 때 아이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제안이었다"고 회상했다. 

    사실 시설에 제공되는 기업들의 기부는 단편적이고 이벤트적인 경우가 많다. 물론 이 역시 귀한 도움이지만 아이들의 자립에 현실적인 보탬이 될 수 있는 방법에 그는 무릎을 쳤다. 특히 긴 세월 동안 그가 강조해온 투자 철학에도 부합하는 기부 방식이었다.

    아주 어린 나이에서부터 건전한 방식의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끝내 경제적 독립을 이루는 것. 취지 역시도 훌륭했기에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단번에 존 리 대표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실행에 나섰다. 

    그 과정에서 생각지 못한 복병을 만났다. 법적인 문제였다. 미성년자가 계좌를 만드려면 후견인 또는 대리인이 있어야 하는데, 보호시설 아동의 경우 친권자와의 법적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존 리 대표는 "막상 실행하려고 보니 생각보다 간단치가 않았다. 예컨대 만약 18살에 아이들이 시설을 나왔을 때 친권자가 아이들의 권리를 주장할 수도 있다. 실제 법적으로 미비한 부분이 있어 금전적인 이유로 친권자가 아이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사례가 빈번히 일어나고 있더라. 기부금의 관리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지, 대리인을 누구로 할지 또 혹시라도 그 대리인에게 사망 등 불상사가 생겼을 때는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생각보다 짚고 넘어가야 할 법적 고려 사항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그간 시도한 적 없던 방식의 펀딩이기에 법적인 문제가 불거지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었다.

    법률적으로 불명확한 부분들을 확실히 하고자 자문을 위해 수소문했고, 박일환 전 대법관으로부터 '보호시설 아이들도 주식과 펀드투자가 가능하다'는 답을 얻었다. 박 전 대법관은 36년의 판사 생활 후 지난 2006년부터 6년간 대법관을 지냈다. 

    자문에 따르면, 민법 제918조1항을 근거로 친권자는 미성년 자녀에 대한 관리의 권리만 있을 뿐 재산에 대해선 기부자가 관리 권한을 갖는다. 행여 먼훗날 기부자의 본의가 바뀌어 기부한 돈을 소유하려고 해도 관리 권한만 있어 처분할 수도 없다. 

    문제는 대리인이었다. 현행법상 미성년자 투자에서 원금 손실이 발생할 때 법정대리인에게 이에 대한 책임을 지우고 있다. 좋은 마음으로 기부는 하더라도 선뜻 대리인으로 나서지 못하게 되는 현실적인 부담이 존재했다.
  • 여기에 선뜻 나서준 이들은 메리츠자산운용의 직원들이었다.

    존 리 대표와 함께 일하고 있는 직원 가운데 11명이 직접 대리인이 되겠다는 뜻을 밝혀온 것이다. 처음 수녀가 존 리 대표를 찾아와 한 제안을 내부에 공유했을 때 '이건 무조건 해야 한다'고 힘을 실어줬던 이들도 회사 직원들이었다.

    그는 "법적으로 미비할지라도 누군가는 시작해야 할 일이었다. 현 법체계로서는 일단 시작은 할 수 있다는 답을 얻었을 때 정말 기뻤다"면서 "함께 나서준 직원들에게도 정말 감사하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런 마음들이 모여 시작할 수 있다는 그 자체로 희망적"이라고 말했다. 

    펀드 운용은 정확한 계좌관리를 위해 메리츠자산운용이 전담한다. 언젠가 존 리 대표가 현직에서 은퇴하더라도 이 일이 그침 없이 이어질 수 있도록 그 개인이 아닌 기관의 일이 돼야 한다는 판단이다. 기부금이 들어오면 각자 다른 아이들의 상황에 맞게 조정해 투자하는 방식으로 이뤄질 예정이며, 입양 등 변수 상황에서의 원칙도 세웠다. 

    무엇보다 아이들 스스로 주어진 자산을 관리하게 될 훗날, 명확한 경제관념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주기적인 금융교육을 진행할 예정이다. 형편에 따라 필요하다면 그의 사재를 털어 동참할 생각까지 할 만큼 이번 일에 대한 의지가 남다르다.

    존 리 대표는 보호아동들의 성공적인 경제독립은 한국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경제 양극화의 고리가 끊길 수 있도록 대중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점도 거듭 밝혔다.

    그는 "사실 기부금만큼이나 많은 대리인의 동참이 필요하다. 대리인 참여를 통해 귀한 이 아이들에게도 사랑을 나눠줬으면 한다. 이들은 보호받아야 할 한국의 미래"라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