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심, 한국인의 맛 내세워 글로벌 식품 도약 의지신춘호 회장 "한국인에게 사랑 받는 라면은 우리 손으로 만들어야"글로벌 진출 당시에도 "맛, 포장 그대로 가져가는 것이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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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나이 울린' 농심 창업주 신춘호 회장이 향년 92세로 별세했다. 생전에 '한국인의 맛'을 가진 농심을 글로벌 식품기업으로 도약시키고자 했던 신 회장은 확고한 신념을 가진 경영인으로도 알려져 있다.

    신 회장은 '맛있는 라면'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나는 서민을 위해 라면을 만든 적이 없다. 라면은 서민만 먹는 게 아니다. 나는 국민을 위해 라면을 만들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신 회장은 신라면, 안성탕면, 너구리, 짜파게티 등 사실상 '한국 라면'을 대표하는 굵직한 대표 제품을 탄생시킨 주역이다. 신라면은 그의 성을 따 네이밍했고, '사나이 울리는 신라면' 카피 역시 신 회장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한국에서의 라면은 간편식인 일본과는 다른 주식이어야 하며 따라서 값이 싸면서 우리 입맛에 맞고 영양도 충분한 대용식이어야 한다. 이런 제품이라면 우리의 먹는 문제 해결에 큰 몫을 할 수 있을 것이며, 범국가적인 혼분식 장려운동도 있으니 사업전망도 밝다"고 강조해왔다.

    창업초기 "스스로 서야 멀리 갈 수 있다"며 "한국인에게 사랑받는 라면은 우리 손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신 회장은 회사 설립부터 연구개발 부서를 따로 두었다. 평소 ‘다른 것은 몰라도 연구개발 역량 경쟁에서 절대 뒤지지 말라’고 강조했다. 

    1971년 새우깡 개발 당시에도 “맨땅에서 시작하자니 우리 기술진이 힘들겠지만, 우리 손으로 개발한 기술은 고스란히 우리의 지적재산으로 남을 것이다”라고 했다. 새우깡은 4.5톤 트럭 80여대 물량의 밀가루를 사용하면서 개발해 냈다. 

    신 회장의 '글로벌' 욕심은 단순히 해외로 나가는 것만이 아니라, 한국의 고유한 식품 특성을 전세계로 알리고자 했다.

    그는 1996년 중국 상하이에 라면공장을 건설해 중국시장에 처음 진출하면서 "농심 브랜드를 그대로 해외에 가져간다. 얼큰한 맛을 순화시키지도 말고 포장 디자인도 바꾸지 말자. 최고의 품질인 만큼 프리미엄의 이미지를 확보하자. 한국의 맛을 온전히 세계에 전하는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농심이 라면을 처음 수출한 것은 창업 6년만인 1971년부터다. 지금은 세계 100여개국에 농심이 만든 라면을 공급하고 있다. 유럽의 최고봉에서 남미의 최남단까지다. 농심은 지난해 사상 최대인 9억9000만불의 해외매출을 기록했다.  

    신 회장은 "식품도 명품만 팔리는 시대다. 까다로운 소비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며 2011년 프리미엄라면 신라면블랙을 출시했다. 신라면블랙은 출시 초기 규제와 생산중단의 역경을 딛고, 지난해 뉴욕타임즈가 꼽은 ‘세계 최고의 라면 1위’에 올랐다. 

    2014년 6월 생수 '백산수'에 2000억원을 투자하기로 결심하면서는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한 사업에 집중해야 한다. 식품기업의 사명은 인류의 무병장수와 생명연장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라면사업의 성공경험을 바탕으로 건강한 식품판매를 적극 확대하자"는 말을 남겼다.

    농심 창립이 50주년을 맞은 2015년 '통일 나눔펀드'에 동참한 신 회장은 “뜨겁게 끓는 물이 있어야 라면이 맛과 가치를 인정받는 것처럼 통일도 국민의 뜨거운 염원이 뒷받침돼야 이룰 수 있다. 통일은 식품업체인 농심에도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같은해 50주년 기념식에서는 "우리는 1970년대 초 사활의 기로에서 짜장면 소고기라면 새우깡 등 고정관념을 깬 신제품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농심의 역사가 곧 국내 식품산업의 발전사다. 지난 50년 동안 이어온 혁신 본능을 바탕으로 이번에는 백산수를 통해 글로벌 농심, 100년 농심을 이룩해 나가자"고 강조하기도 했다.

    신 회장은 50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 그리고 수십년간 라면업계 1위를 수성해온 상황에서도 미래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고민을 끊임없이 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2016년 사내 게시판에 창립 51주년 축사를 보내며 "신라면의 성공에 안주하는 한 농심의 미래는 없다"고 했다. 신 회장은 "글로벌 식품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영광을 잊고 본원적인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 회장의 저서 '철학을 가진 쟁이는 행복하다'에는 그의 경영철학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돌이켜보면 시작부터 참 어렵게 꾸려왔다. 밀가루 반죽과 씨름하고 한여름 가마솥 옆에서 비지땀을 흘렸다. 내 손으로 만들고 이름까지 지었으니 농심의 라면과 스낵은 다 내 자식같다. 배가 고파 고통받던 시절, 내가 하는 라면사업이 국가적인 과제 해결에 미력이나마 보탰다는 자부심을 가져본다. 산업화 과정의 대열에서 우리 농심도 정말 숨가쁘게 달려왔다. 이제는 세계시장을 무대로 우리의 발걸음을 다그치고 있다. 우리의 농심가족들이 나는 정말 자랑스럽다. 쌓아온 소중한 경험과 힘을, 자부심을 가지고 당당하게, 순수하고 정직한 농부의 마음으로, 식품에 대한 사명감을 가슴에 새기면서 세계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