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평사 무디스, 지난달 재정당국과 국가신용등급 연례협의홍남기 부총리 "내수·고용 점차 개선…국가채무는 경계심"전문가 "팬데믹 상황서 유지 전망… 내년 이후 조정 들어갈 듯"차기 정부 손발 묶일 수도… 가계·기업부채 관리 필요성
  • ▲ 경제.ⓒ연합뉴스
    ▲ 경제.ⓒ연합뉴스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이 불안하다는 의견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당장 올해는 아니어도 이르면 내년 이후 조정 가능성이 있다는 견해가 나온다. 중국발 코로나19(우한 폐렴) 사태 이전부터 '재정 중독'에 빠졌다는 평가를 받아온 문재인 정부 들어 나랏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차기 정부의 부담만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1일 재정당국에 따르면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지난달 25~30일 국가신용등급 평가를 위한 연례협의를 진행했다. 무디스 평가단은 기획재정부와 국회 예산정책처, 한국은행 등과 경제동향·전망, 정책방향 등을 논의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30일 알라스테어 윌슨 무디스 국가신용등급 글로벌 총괄과의 화상통화에서 올해 한국 경제가 수출을 중심으로 회복세를 보이는 가운데 내수·고용도 점차 개선 추세를 보일 거라고 설명했다. 다만 홍 부총리는 나랏빚 증가 속도가 빠르다는 점에 각별한 경계심을 가진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무디스는 지난 2015년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2'로 올린 이후 등급을 유지해왔다. Aa2는 3번째로 높은 등급으로 프랑스, 영국과 같은 수준이다. 국가신용등급은 외국 투자자 입장에서 볼 때 해당 국가가 빚을 갚을 능력이 되는지를 알 수 있는 척도가 된다. 신용등급이 높다는 얘기는 한국에 돈을 투자해도 얼마든지 돌려받을 수 있다는 신뢰감이 있다는 것으로, 우리로선 외국자본을 싸게 조달할 수 있게 된다.

    무디스는 통상 연례협의를 마치고 두세달 후 신용등급 평가결과를 발표한다. 올해도 5월쯤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올해 한국의 대내외적 상황을 살펴보면 국가신용등급에 미칠 긍정적인 요인과 부정적인 요인이 혼재한다.

    먼저 수출을 보면 코로나19 팬데믹(범유행) 상황에서도 한국 경제가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날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3월 수출입현황'을 보면 수출은 538억3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6.6% 늘었다. 지난해 11월 이후 5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갔다. 산업부 관계자는 "지난해와 비교해 수출이 두 자릿수 증가해 의미가 크다. 기저 효과를 배제하더라도 수출이 선전하는 것을 확인할수 있다"고 밝혔다. 같은 기간 수입은 496억5000만 달러로, 3월 무역수지는 41억7000만 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11개월 연속 흑자다. 신용평가사가 볼 때는 나쁘지 않은 지표다.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가 권고하는 대로 확장적 재정운용등을 통해 코로나19 피해계층을 지원하고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정책적 노력을 기울인 것도 긍정적인 평가요인이다.
  • ▲ 채무.ⓒ연합뉴스
    ▲ 채무.ⓒ연합뉴스
    그러나 부정적인 요인도 만만찮은 실정이다. 정부는 내수와 고용이 개선되는 추세라고 무디스 측에 설명했지만, 고용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홍 부총리는 최근 고용통계를 들어 2월 취업자 수 감소 폭이 1월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고 3월에도 지표 회복세가 뚜렷해질 거라고 예상했다. 통계청 고용동향에 따르면 2월 취업자 수는 1년 전과 비교해 47만3000명(-1.8%) 감소했다. 이는 98만2000명(-3.7%) 급감했던 1월보다 감소 폭이 절반 수준으로 꺾인 것이다. 하지만 이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일자리 사업이 재개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성 일자리가 적잖게 공급된 게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우리 산업의 중추이면서 상대적으로 괜찮은 일자리로 분류되는 제조업은 같은 기간 2만7000명(-0.6%)이 줄어 지난해 3월 이후 12개월째 감소세를 이어갔다.

    한동안 잠잠하던 북핵 등 지정학적 리스크도 여전하다. 북한은 지난달 25일 신형전술유도탄 시험발사를 진행했다며 탄도미사일 발사를 공식 발표했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긴장은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결정하는 요인 가운데 하나다. 북핵 위협 등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와 함께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미사일 도발을 미국 바이든 행정부와의 외교 협상을 위한 포석으로 보는 시각이 적잖다. 다만 공교롭게도 국가신용등급 평가를 위한 연례협의가 시작되는 시점에 위험요인이 부각된 모양새여서 이번 무디스 평가에 좋지않은 영향을 끼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견해가 나온다.

    우리의 강점인 수출도 불안하긴 매한가지다.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로도 미·중 간 갈등이 격화될 가능성이 커 대외의존도가 큰 한국으로선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 들어 계속된 확장적 재정운용으로 국가채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상황은 염려스러운 대목이다. 최근 국회는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을 처리하면서 증액과 감액 규모를 비슷하게 맞춰 추경 규모를 정부안과 엇비슷하게 유지했다. 덕분에 재원 조달을 위한 적자국채 추가 발행은 피했지만, 그럼에도 나랏빚 규모는 965조9000억원까지 늘어났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48.2% 수준이다. 홍 부총리는 지난 1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내년 국가채무가 1000조원을 돌파한다"며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고 했다.

    재정당국의 중장기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보면 문재인 정부 마지막 해인 내년 국가채무비율은 52.3%까지 치솟는다. 2024년에는 59.7%까지 오를 전망이다. 지난해 2월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는 "한국의 부채비율이 2023년 46%까지 오르면 국가신용등급이 내려갈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홍 부총리는 지난달 18일 열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지난해 112개국의 국가신용등급이 하락했다. 국제 신평사들이 지난해까지는 (한국에 대해) 긍정 평가했지만, 최근에는 코로나19 이후의 채무 안정화 대책이 없으면 (신용등급 하락의) 위험이 있을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온다"고 설명했다.
  • ▲ 적자국채.ⓒ연합뉴스
    ▲ 적자국채.ⓒ연합뉴스
    전문가들은 당장 올해는 아니어도 내년 이후 국가신용등급에 빨간불이 켜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김경원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한국도 (여건이) 좋지않지만, 다른 나라는 더 나빠졌다. 상대적인 것도 작용한다"면서 "이번엔 (신용등급) 유지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내다봤다. 다만 김 교수는 "1년 새 재정이 너무 나빠졌다"며 "경기 회복이 본격화하면 내년에는 조정 가능성이 있어보인다"고 진단했다. 그는 "등급을 강등하진 않더라도 부가적으로 등급 전망을 유의 또는 관찰 등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재정건전성과 관련해 "재정당국이 국가채무를 설명할 때 보조지표로 정부·지방자치단체 부채(D1)에 비영리 공공기관을 추가한 일반정부 부채(D2)를 사용하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IMF가 1986년 제정한 구식방식을 고집해왔다"면서 "숨은 부채라 할 수 있는 공공부문 부채(D3)와 연금충당부채를 모두 더한 수치(D4)로 비교하면 이미 100%를 넘는다는 견해가 많다. 보통 90%를 넘으면 부채 위기가 시작한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다"고 설명했다.

    특히 김 교수는 한은이 발행하는 통화안정증권(통안채)을 국가부채 규모를 판단할 때 복병으로 꼽았다. 그는 "한때 300조원까지 갔던 통안채 잔고가 아직 180조원 가까이 될 것"이라며 "통안채를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하는 나라는 한국뿐으로,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통계에서 빠지곤 하는데 이는 국가채무가 맞다"면서 "이것까지 합하면 우리나라의 채무 수준은 레드존은 아니어도 이미 옐로우존에는 들어왔다. 몇년 안에 재정 위기가 닥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신평사들이 국가신용등급을 낮출 때 매우 신중하다. 당장 올해 조정에 들어가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성 교수도 "우리나라의 재정 악화 자체는 앞으로 조정요인이 될만하다"면서 "금융시장 등 다른 요인과 결합한다면 (강등) 우려가 있다. 만약 미국의 시장금리가 오르거나 그럴 움직임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신용등급 이슈도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은행 한 관계자는 "이번 연례협의 때 (무디스 측에서) 특별히 이상한 걸 물어보진 않은 것으로 안다"면서 "일각에서 부채 증가를 우려하는데 지난해 한국은 상대적으로 코로나19 방역을 잘한 편에 속하는 데다 부채 규모를 늘릴 수 있을 정도로 정책 여력이 높아 재정을 확장적으로 운용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IMF 등 국제기구의 경제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의 가계·기업부채 증가를 우려하고 있다"면서 관리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보였다. IMF는 지난달 내놓은 '2021년 한국정부와의 연례협의 결과보고서'에서 "가계 익스포저(위험노출액)에 대한 분야별 완충자본 도입에 동의한다"면서 "가계 신용 증가가 급격히 증가할 경우 건전성 조치를 강화할 수 있게 준비하고, 부동산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관찰해야 한다"고 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