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는 수두룩, 시간은 태부족…주택시장 안정화 발등의 불"시장에 안정적 신호줘야…서울시와 유기적 정책협력 중요"국무조정실 거쳐 조율능력 탁월…LH·국토부 개혁방안 주목
  • ▲ 아파트단지.ⓒ연합뉴스
    ▲ 아파트단지.ⓒ연합뉴스
    부동산 비전문가인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이 14일 문재인 정부의 3번째 국토부 수장으로 임명됐다. 노 장관 앞에는 주택공급을 비롯해 시급한 과제들이 쌓여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노 장관의 재임기간이 길지 않은 만큼 새로운 정책을 만들려는 시도보다 기존에 발표한 정책을 차질없이 추진하는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견해다. 또한 시장에 안정적인 신호를 주는게 중요하다며 서울시와의 업무 협력에 공을 들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전 김부겸 국무총리와 노 장관,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의 임명안을 재가했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노 장관은 국회 인사청문 과정에서 위장전입, 세종시 아파트 특별공급 재테크, 배우자 절도, 차남의 실업급여 부정수급 등의 의혹이 불거졌고, 야당은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을 거부했다. 하지만 야당이 낙마 1순위로 찍은 임혜숙 장관이나 자진 사퇴한 박준영 해수부 차관보다는 상대적으로 공격의 강도가 약했던 만큼 어느 정도 사정권을 벗어났다는 의견이 적잖았다.

    노 장관은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국토부 장관으로서 남은 기간 새로운 부동산정책을 내놓기보다 기존 정책을 차질없이 진행하는데 업무의 초점이 맞춰질 전망이다. 먼저 성난 부동산 민심을 달래려고 내놓은 2·4 주택공급 대책의 차질 없는 추진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대표적인 공공 디벨로퍼인 변창흠 전 장관이 기초작업한 2·4 대책은 앞으로 각종 규제로 집을 사기 어려울 거라는 불안감에서 촉발된 '패닉바잉'(공황구매)을 멈추게 하려고 공공이 도심지역 고밀도 개발을 주도해 주택을 공급하는 대책이다. 노 장관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집단 땅투기로 바닥에 떨어진 공공의 신뢰를 되찾고 주택 공급을 차질없이 추진해 집값을 안정화하는 막중한 과제를 떠안은 셈이다.

    노 장관도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는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직후 "국민이 걱정하는 바가 무엇인지 잘 안다"며 "엄중한 시기 후보자로 지명돼 무거운 책임감과 소명감이 앞선다. 주거안정과 부동산 투기 근절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노 장관은 인사청문회에서도 이런 기조를 분명히 했다. 그는 "기존 정책 틀을 유지하면서 매매와 전·월세 시장의 안정세가 확고해지도록 정책 역량을 집중하겠다"며 "2·4대책 등 그간 발표한 공급대책 후속조치를 신속하게 이행해 국민의 내 집 마련에 대한 불안감을 덜어드리겠다"고 했다.
  • ▲ 노형욱 국토부 장관 취임식.ⓒ연합뉴스
    ▲ 노형욱 국토부 장관 취임식.ⓒ연합뉴스
    다만 노 장관이 재정당국 출신의 부동산 비전문가라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라는 지적도 있다. 부동산업계 한 전문가는 "현 시장 상황에선 전문가가 필요하지만, 노 장관은 전문적인 지식이 없기 때문에 기존의 정책을 추진하고 정부와 여당의 정책 기조를 잘 따르는 역할만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노 장관은 인사청문회에서도 부동산 관련 질의를 받으면 사업의 의의에 대해 설명하는 등 원론적인 수준의 답변만 내놓는 데 그쳤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취임 4주년 기자회견에서 장관 후보자 임명과 관련된 질문을 받고 "주택공급 정책을 차질없이 집행해야 할 국토부가 불신의 대상이 된 만큼 외부에서 능력을 갖춘 후보자를 고심해서 찾았다"고 노 장관 발탁 배경을 직접 설명했다. 전문적인 지식보다는 LH와 국토부의 고강도 개혁을 통해 실추된 부동산 정책의 신뢰도를 높이는 게 남은 임기 동안 최우선 과제라는 문제 인식과 함께 노 장관에게 그런 역할을 기대한다는 설명인 셈이다. 노 장관이 LH 개혁안을 어떻게 다듬어 내놓을지 귀추가 주목되는 대목이다.

    노 장관이 주택공급과 관련해 서울시와 정책 조율을 어떻게 풀어갈지도 주목된다. 오세훈 시장이 민간 재건축 규제 완화 카드를 꺼내 들면서 서울 주택시장은 재건축 시장을 중심으로 다시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주택공급 정책은 인허가 등이 얽혀 있어 국토부나 서울시 독단으로 추진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일각에선 노 장관이 국무조정실을 거치며 협의와 조율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을 받는 만큼 서울시와의 협력을 모색하는 데 적임자일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 ▲ 노형욱 국토부 장관.ⓒ연합뉴스
    ▲ 노형욱 국토부 장관.ⓒ연합뉴스
    부동산 전문가들은 시장에 안정적인 신호를 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의견이다. 이를 위해 서울시와의 업무 협조에도 공을 들여야 한다는 목소리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신임 장관은) 새로운 부동산 정책을 만들지 말고 지금까지 정부가 내놓은 것들을 차질없이 추진해 잘 추스르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심 교수는 "그동안 잘못된 부동산 정책을 바로잡는 게 필요하지만,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면서 "그동안 서민을 위한다면서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서민을 더 어렵게 하고 있다.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우선 대출 규제로 피해를 보는 사람, 종합부동산세 납부로 억울한 사람, 임대사업자 중에서 억울하게 피해를 보는 사람을 (남은 기간에) 구제해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도 "(문재인 정부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면서 "정책에 변화를 줄 여지가 없는 만큼 (신임 장관에게) 큰 기대감은 없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 책임연구원은 "다음 정부가 들어서면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계승할 가능성은 작다. 3기 신도시 정도만 계승할 거로 보인다"면서 "기존의 틀을 바꾸는 새로운 시도보다는 그동안 발표한 내용을 충실히 이행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지금은 주택공급 속도를 올려서 시장의 불안을 잠재우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박 수석전문위원은 국토부와 서울시의 정책 협력과 관련해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유기적인 협력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라며 "최근에는 (정부 태도가) 시장의 목소리에 귀를 여는 분위기로 돌아서고 있다. 시장에서 시너지 효과가 나타날 수 있게 시장에 일관된 목소리를 내줘야 한다"고 역설했다.

    정수연 제주대 경제학과 교수는 뜨거운 감자인 공시가격에 대해 "공시제도의 신뢰성 회복 문제는 단순히 세금을 깎아준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면서 "공시가격의 정확성이 의심받는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모든 문제를 투명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투명성이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주장하는 공정성은 신뢰받을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일각에서 공시가격 동결을 제안한 이유는 세금 증가를 멈추게 하려는 게 아니다"면서 "부정확한 공시가격으로 복지 대상에서 탈락하거나 세금을 더 내야 할 사람은 덜 내고 덜 내야 할 사람은 더 내는 불공정한 상황을 멈추기 위함이라는 것을 (신임 장관은) 명심해야 한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