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MSC, HMM 선원 빼가기 시동급여 2배 이상-짧은 계약기간-HMM 선박매입 등 솔깃 조건 제시노조측 "10년전 해운불황 때 벌어진 현대상선 죽이기 재현"장기화된 임금협상에 육상노조 IT 인력도 흔들
  • ▲ 문재인 대통령이 부산신항에서 열린 HMM 한울호 출항식에서 발언하고 있다ⓒ자료사진
    ▲ 문재인 대통령이 부산신항에서 열린 HMM 한울호 출항식에서 발언하고 있다ⓒ자료사진
    임금인상폭을 두고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HMM 노사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대주주인 산업은행과 정부가 손놓은 가운데 세계 최대 해운사가 노골적인 HMM 죽이기에 나섰기 때문이다.

    18일 HMM 등 관련업계에 따르면 세계 2위 지중해해운(MSC)은 지난달부터 한국에서 대형 컨테이너선 경력을 가진 선원을 대상으로 채용공고를 진행 중이다. 국내 선사 중 대형 컨테이너선을 운영하는 회사는 HMM이 유일하다. 정확히 HMM 인력을 조준한 인력 빼가기로 보인다.

    채용조건은 파격적이다. 일항사, 일기사 기준 월 1만3000달러에서 1만4000달러(1644만원)까지다. HMM 선원들이 받는 급여의 배가 넘는다. 4개월 계약 조건은 더 매력적이다. 현재 HMM 선원들은 평균 10개월을 승선하는데 계약 기간이 짧아질수록 승선기간도 줄어든다. MSC 측은 HMM 현직 뿐 아니라 과거 경력이 있는 사람과 이미 승선 중인 선원들에게까지 접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 관계자는 "승선 중인 선원에게 접촉해 MSC 입사지원서를 나눠주고 있다"고 했다.

    스위스 국적선사인 MSC는 선복량 408만TEU를 자랑하는 세계 2위 해운사다. 1위인 머스크와 함께 지난해부터 꾸준히 선복량을 늘려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있다. 더 큰 컨테이너선을 도입해 더 많은 물량을 실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HMM 선박도 사들이겠다는 MSC 선복량은 조만간 500만TEU까지 늘어 머스크를 제치고 1위 해운사에 오를 전망이다.
  • ▲ 문재인 대통령이 부산신항에서 열린 HMM 한울호 출항식에서 발언하고 있다ⓒ자료사진
    MSC의 HMM 죽이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0여년전 글로벌 금융위기로 해운 불황이 덮쳤을때도 초대형 선박을 앞세운 저렴한 운임료로 한국 해운사를 공격했다. 당시 공룡해운사들의 공격으로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이 몰락의 길을 걸었고, 현대상선은 HMM으로 겨우 살아났다. 해원노조 관계자는 "이전에 선복량으로 HMM 죽이기에 나섰다면, 이번에는 노골적인 인력유출로 고사시키려는 전략"이라고 했다.

    선원들은 당연히 흔들리고 있다. 노사는 이날 해상노조의 중앙노동위원회의 조정회의를 진행하는데 여기서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면 파업절차에 돌입할 예정이다. 육상노조(사무직)도 19일 3차 조정회의를 진행한다. 하지만 사측이 제시하는 급여 5.5% 인상, 격려금 100%는 노조의 급여 25% 인상 및 1200% 성과금과 괴리가 커 접점을 찾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파업 가능성도 높다. 2.8% 인상에 그친 지난해 임금협상에서 노조가 진행한 파업 찬반투표 찬성률은 97.3%였다. 사상 최대 실적을 이어가는 올해 사측이 한자릿수 인상을 고수한다면 파업은 기정사실로 여겨진다. 파업이 시작되면 수출대란은 물론 어렵게 가입한 해운동맹 디 얼라이언스 퇴출도 우려된다. 세계 1,2위 해운선사들은 최근 부산항 입항을 늘리며 HMM 기항지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파업보다 이직을 선택하겠다는 목소리도 늘고 있다. 제약이 많은 선원법상의 쟁의행위를 하느니 임금 많이 주고 조건 좋은 해외 선사로 옮겨가겠다는 것이다. 선원 뿐 아니라 육상노조도 흔들리는건 마찬가지다. AI를 도입한 자율운항 등 최첨단 기술을 선박에 적용하는 고급 인력들이다. 이들 역시 반도체 호황, IT 기업들의 연이은 대박을 바라보며 쓰린 속을 달래고 있다.

    전정근 해상노조 위원장은 입장문을 통해 "기본 권리를 박탈당한채 인력착취만 당하고 있으니 파업에 초점을 맞출게 아니라 다 버리고 MSC로 떠날 채비를 할 수 밖에 없다"며 "산업은행과 정부는 여기에 맞서 줄다리기 할 힘도 없는 가장들을 떠밀고 있다"고 밝혔다. 전 위원장은 "중노위도 특별히 조정안을 내주기 어려울 것으로 보여 무난히 쟁의권을 확보할 것"이라며 "조정중지 이후 선원 이탈이 본격화되면 선원이 없어서 배가 서는 일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