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규제 강화로 추진 쉬운 '리모델링' 주목발주규모 매년↑…재작년 1.3조-작년 9.1조-올 19조 예상분양 시장서도 흥행… 대선 앞두고 정치권도 관심 커져
  • ▲ 옛 호수아파트(우)를 2개층 수직증축한 '밤섬 쌍용예가 클래식'. ⓒ쌍용건설
    ▲ 옛 호수아파트(우)를 2개층 수직증축한 '밤섬 쌍용예가 클래식'. ⓒ쌍용건설
    서울 알짜 단지에서나 추진하던 리모델링이 수도권 1기 신도시와 주요 광역시를 중심으로 확산될 전망이다. 올해 아파트 리모델링시장 규모는 작년의 두배이상인 19조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추산된다.

    재건축 규제가 여전한 가운데 상대적으로 허가를 받기 쉬운 리모델링으로 관심이 쏠리면서다. 내달 대통령 선거와 맞물려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4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공사비 기준 올해 리모델링 발주 규모는 전국적으로 55개 단지, 19조원에 이를 것으로 집계됐다.

    2020년 1조3000억원에 머물던 발주 규모는 지난해 9조1000억원대로 불어났으며 올해는 이보다 두 배가량 급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시장 성장세는 공급이 부족한 서울 등 수도권이 이끌고 있다. 올해 시공사를 선정할 것으로 예상되는 서울내 추진 단지는 23곳, 1기 신도시 등 경기권은 27곳이다. 수도권 발주 규모는 16조원으로 전체 시장의 85%에 달한다.

    서울은 동부이촌동이 있는 용산구가 5곳으로 가장 많다. △강남 4곳 △서초 3곳 △송파 3곳 △강동 3곳 등 강남권에서 연내 시공사 선정이 활발할 것으로 예상됐다.

    '전통 부촌'으로 꼽히는 동부이촌동에서는 이촌 코오롱아파트와 강촌아파트, 건영한가람아파트 등이 최근 잇따라 조합설립인가를 받고 시공사 선정을 앞두고 있다. 이 지역은 5개 단지가 통합 리모델링을 추진하다가 무산돼 사업이 오랜 기간 지체됐다.

    업계에서는 강동구 암사동 선사 현대, 양천구 목동 우성, 동작구 사당 우성·극동·신동아 등에서 수주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수도권에서도 리모델링 열풍이 거세지고 있다. 특히 분당, 일산, 평촌, 산본, 중동 등 1기 신도시에서 열망이 강하다.

    1991년부터 입주를 시작한 1기 신도시가 재건축 가능 연한인 30년을 꽉 채운 데다 정비사업 규제로 인해 수도권 아파트 공급이 막혀있는 상황이다. 새집에 대한 선호가 높아질수록 사업의 수익도 커질 수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1기 신도시가 행정구역 안에 들어있는 5개 지역 시장이 모여 리모델링 활성화를 위한 공동 대응체계를 구축하기로 협의하고 정부의 지원을 촉구하기도 했다.

    구체적인 움직임은 분당이 가장 빠르다. 최근 수도권 주택가격 상승장에서 시세가 많이 올라 사업성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3월 한솔마을 5단지가 사업계획을 승인받았다. 1기 신도시 최초 사례였다. 4월에는 분당 무지개마을 4단지가 사업계획승인을 받았고, 올해는 매화마을 1단지와 느티마을 3·4단지 등이 사업계획 승인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군포 산본에서는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18개 단지가 힘을 합친다. 산본신도시 내 리모델링 주택조합이 설립된 4개 단지와 준비 단계의 14개 단지 등이 회원이다. 산본 소재 40개 아파트 가운데 절반가량이 리모델링에 나서는 셈이다.

    군포시에서도 이 같은 움직임을 지원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리모델링 지원팀을 신설했다. 올해는 리모델링 지원센터도 운영할 예정이다.

    일산에서도 리모델링 조합설립 동의율을 잇달아 확보하면서 본격적인 사업 추진에 나서고 있다. 일산 최초의 리모델링 조합은 최근 조합설립총회를 연 것으로 알려진 문촌마을 16단지 뉴삼익이다.

    리모델링 경험이 일천한 주요 광역시에서도 사업 추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부산에서는 남구 용호동에 있는 LG 메트로시티가 지난해 중순 리모델링 추진위원회를 출범했다. 80개동, 7374가구에 달하는 부산 최대 규모 단지다. 공사비만 3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돼 사업이 본격 추진되면 국내 최대 프로젝트가 될 전망이다.

    또한 해운대 신시가지 일대 아파트 단지 24곳의 리모델링 추진위원들은 '해운대 그린시티 리모델링 연합회'를 만들었다. 단지별로 조합설립을 위한 주민 동의를 받는 중이다. 준공 20년이 넘는 노후 아파트 374개동에 걸쳐 가구 수만 2만9150가구에 달한다.

    대구에도 리모델링 바람이 상륙했다. 대구 범어 우방청솔맨션은 지난해 12월 지방 단지 중 처음으로 효성중공업을 시공사로 선정했다.

    이 단지는 비수도권 최초로 리모델링 조합을 설립한 곳이다. 조합설립인가를 받은 지 7개월 만에 시공사 선정까지 일사천리로 내달렸다.

    대전에서는 국화아파트가 지역 최초로 리모델링에 도전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에는 5개 단지, 2910가구를 통합해 3300가구 규모로 증축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1월 중순 기준 동의율 40%에 이른 것으로 전해졌다.
  • ▲ 지난달 출범한 군포 '산본 공동주택 리모델링 연합회'. ⓒ연합뉴스
    ▲ 지난달 출범한 군포 '산본 공동주택 리모델링 연합회'. ⓒ연합뉴스
    지방자치단체들도 덩달아 움직임이 바빠지고 있다.

    대전광역시는 공동주택 리모델링 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용역 발주에 나섰다. 사용검사 후 15년 이상 지난 공동주택 610개 단지를 상대로 체계적인 관리에 들어가겠다는 목표다.

    부산광역시는 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용역업체 선정을 마쳤다. 올 하반기까지 계획 수립을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대구광역시는 올해 예산안에 리모델링 관련 기본계획을 수립하기 위한 연구용역비를 반영하기로 했다.

    리모델링은 재건축에 비해 사업 추진이 상대적으로 쉽다. 재건축의 경우 조합설립부터 입주까지 통상 10년 이상의 사업 기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리모델링은 속도를 내면 이론적으로 이 과정을 6~7년 안에 마칠 수 있다.

    재건축은 안전진단 D·E등급을 받아야 하지만, 리모델링은 B등급 이상만 만족하면 된다. 연한도 재건축은 준공한 지 30년이 지나야 추진할 수 있지만 리모델링은 15년 후부터 가능하다.

    분양가상한제 적용은 받지만 초과이익환수제 대상은 아니다. 지구단위구역이 아니라면 용적률 제한도 받지 않는다. 리모델링을 하면 평면이 이상해져 인기가 없다는 편견도 극복해 나가고 있다.

    최근 쌍용건설이 선보인 국내 첫 리모델링 일반분양은 흥행에 성공했다.

    1월 '송파 더플래티넘' 일반분양 29가구 모집에 7만5382건의 청약이 접수됐다. 14가구 공급이 이뤄진 전용 65㎡에는 3만3421건이 접수됐다. 15가구를 대상으로 한 전용 72㎡는 4만1961명이 몰렸다. 평균 경쟁률은 2599대 1이었다.

    전매 제한 등 각종 규제에서 자유롭다 보니 투자수요가 몰린 것이 한몫했지만 그 저변에는 '리모델링 아파트도 높은 시세를 받을 수 있다'는 시장 참여자 심리가 깔렸다는 평이다.

    대선, 지방선거 등을 앞두고 표심을 잡기 위한 정치권의 관심이 높아진 것도 긍정적이라는 평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지난달 '경기도 부동산 정책' 공약을 발표하고 수직증축 규제 완화 등을 통해 1기 신도시 아파트 단지의 리모델링을 활성화하겠다고 밝혔다.

    주먹구구식이던 법체계도 정비될 가능성이 커졌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재건축과 달리 리모델링은 주택법, 건축법 등 그때그때 필요한 법을 적용한다.

    김병욱 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발의한 '공동주택 리모델링에 관한 특별법'은 여러 법에 분산된 규정을 한데 모았다. 효율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정비하겠다는 것이다.

    지금은 신축에 준용하는 '사업계획승인'을 받아야 하지만, 이를 '허가'로 완화해 인허가에 걸리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도록 했다.

    이동훈 리모델링협회 정책법규위원장은 "여당에서 해당 특별법을 당 정책으로 공식 추진하겠다는 움직임이 있는 등 법 통과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