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하루 100만배럴 비축유 방출키로…OPEC+는 '찔끔' 증산3월 소비자물가 4% 전망…수입물가↑·가스료↑ '악재뿐'인수위 "유류세 30%↓·추경 새정부서"… 물가잡기에 우선순위
  • ▲ 고유가.ⓒ뉴데일리DB
    ▲ 고유가.ⓒ뉴데일리DB
    인플레이션(지속적 물가상승) 압력과 소상공인 손실보상·경기회복 뒷받침을 위한 수십조원대 돈풀기 사이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딜레마가 깊어지고 있다. 다만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제2차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윤석열정부 출범이후로 미루면서 우선 '인플레 파이터'로 방향을 설정한 것 아니냐는 견해가 나온다.

    ◇美, 역대급 비축유 방출…국제유가 일단 진정

    미국은 31일(현지시간) 역대급 비축유 방출 계획을 발표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간 평화협상에 대한 전망이 낙관론과 회의론 사이를 오가는 사이에도 고물가 상황은 이어지고 있어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대국민 연설을 통해 "(블라디미르) 푸틴이 전쟁을 선택하며 시장에 공급되는 기름이 줄어 기름값을 올리고 있다"면서 "단기적인 유가 안정을 위해 앞으로 6개월간 하루 100만 배럴의 비축유를 추가로 방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는 사상 최대 규모의 비축유 방출이다. 백악관은 이번 결정이 연말에 원유 생산이 확대될 때까지 가교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바이든 행정부는 석유 시추용 공공부지를 임대해 생산허가를 받고도 원유를 생산하지 않는 업체에 과태료를 물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같은날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5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전날보다 배럴당 7.54달러(7%) 내린 100.28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종가 기준으로 지난 16일 이후 보름 만에 가장 낮은 가격이다.

    다만 일각에선 이번 조처가 미봉책에 그칠 가능성도 제기한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非)OPEC 주요 산유국의 협의체인 'OPEC 플러스'(OPEC+)는 서방의 대폭적인 증산 요구에도 다음 달 하루 43만 배럴 증산에 합의했을뿐이다. 기존 40만 배럴에서 '찔끔' 늘리는데 그쳤다.
  • ▲ 전기계량기.ⓒ뉴데일리DB
    ▲ 전기계량기.ⓒ뉴데일리DB
    ◇고물가 악화일로…서민부담↑·물류업계도 비상

    국내 물가상황도 악화일로다. 지난달 31일 국내 액화석유가스(LPG) 수입업체 E1과 SK가스는 이달 국내 LPG 공급가격을 ㎏당 140원 올리기로 했다. 지난달 60원 인상에 이어 오름폭이 2배이상 커졌다. LPG가격 상승은 국제유가 상승 때문이다. LPG는 천연가스, 유전에서 분리 추출하거나 원유 정제 과정에서 생산되기 때문에 보통 국제유가를 따라 움직인다.

    LPG는 '서민 연료'라 불린다. 도시가스가 공급되지 않는 농어촌과 주택난방용으로 사용되거나 식당·노점상 등 영세업종의 취사용 연료, 택시 연료 등으로 사용된다. LPG값 상승으로 서민경제 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전망된다.

    경윳값 상승에 화물·물류업계도 비상이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지난달 넷째주(20~24일) 전국 주유소의 경윳값은 전주보다 15.6원 오른 ℓ당 1918.1원이었다. 2008년 7월 넷째 주(1932원) 이후 14년여 만에 최고가다. 일부 주유소에서는 경윳값이 휘발윳값을 뛰어넘는 역전 현상도 나타났다. 화물·물류업계는 치솟는 기름값에 화물차 운행을 멈춰야할 판이라며 어려움을 호소하고 나섰다.

    이런 가운데 3월 소비자물가가 4%에 육박할 거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2월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해 3.7% 올랐다.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10월(3.2%) 이후 5개월째 3%대 고공행진 중이다. 소비자물가가 5개월 이상 3%대 상승률을 기록한 것은 2010년 9월부터 2012년 2월까지 18개월 연속 이후 근 10년 만이다.

    앞으로 상황도 녹록지 않다. 지난달 15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수출입물가지수'에 따르면 2월 수입물가지수(137.34)는 국제유가 상승으로 말미암아 한달새 3.5% 올랐다. 1년 전과 비교하면 29.4%나 상승했다. 전년 동월 기준으로 12개월 연속 증가세다. 수입물가 상승세는 시차를 두고 국내 물가에 반영돼 인플레이션 압박을 키울 수밖에 없다.

    민간 요금인상을 자극할 수 있는 공공요금도 오른다. 당장 이달부터 주택용 도시가스료가 메가줄(MJ)당 14.65원으로 0.43원(3%) 인상된다. 음식점 등에 적용되는 일반용 요금은 0.17원 오른다. 도시가스료는 다음 달에 또 오를 예정이다. 정부와 한국가스공사는 지난해 말 '2022년 민수용(가정용) 원료비 정산단가 조정안'을 의결하면서 가스요금 정산단가를 5·7·10월 3차례에 걸쳐 올린다고 발표했다. 시기별 정산단가는 5월 1.23원, 7월 1.9원, 10월 2.3원이 된다.

    전기료도 오른다. 한국전력공사는 지난달 29일 올 2분기 연료비 조정단가를 동결키로 했다. 하지만 전기료를 구성하는 기준연료비(전략량 요금)와 기후환경요금의 인상이 이미 결정된 상태다. 앞서 정부는 이달과 오는 10월 2회에 걸쳐 기준연료비를 kWh당 4.9원씩 총 9.8원을 올리기로 했다. 기후환경요금도 이달부터 2원 오른다.
  • ▲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워크숍에서 인사말하는 윤석열 당선인.ⓒ연합뉴스
    ▲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워크숍에서 인사말하는 윤석열 당선인.ⓒ연합뉴스
    ◇추경 '뭉칫돈' 풀기, 인플레 부작용 우려

    인수위는 고물가 상황을 잡기 위해 지난달 31일 정부에 유류세 인하 폭을 30%까지 추가로 확대해달라고 공식 요청했다. 최상목 인수위 경제1분과 간사는 "국제유가 상승으로 국내 휘발윳값이 1ℓ에 2000원을 넘는 등 서민 부담이 증가했다"며 "현정부도 유류세 추가 인하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만큼 4월 시행령 개정 등의 조치를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유류세 인하폭 확대 여부를 오는 5일 확정하기로 했다. 3월 소비자물가 상황을 지켜본후 결정한다는 태도다. 정부는 작년 11월 역대 최대폭(20%)으로 유류세를 내렸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자 정부는 이달 종료 예정인 유류세 인하 조치를 오는 7월 말까지 3개월 연장한다고 밝힌 상태다. 법적으로는 최대 30%까지 인하할 수 있다. 인하율을 30%로 확대하면 휘발유 1ℓ당 세금은 574원으로 내려간다. 인하율 20%를 적용할때보다 82원이 추가로 줄어든다. 다만 세수감소는 커진다. 앞서 정부는 6개월간 20% 유류세 인하로 세수가 총 2조5000억원쯤 줄어들 것으로 추산했다. 유류세 인하폭을 30%로 해 3개월 더 연장하면 추가 세수 감소는 2조1000억원쯤이 될 전망이다.

    윤 당선인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대선공약으로 제시한 '50조원 추경'이 고물가 상황을 더 부채질할 수 있어서다. 2차 추경이 소상공인의 온전한 손실보상에 초점을 맞추더라도 단기간에 수십조원의 뭉칫돈이 추가로 풀리면 물가상승 압박이 더 커질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인수위는 지난달말 추경관련 브리핑을 통해 "2차 추경의 (국회) 제출은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고서 하겠다"고 발표했다. 일단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자신의 임기내 추가 추경 편성에 반대하며 실무협의가 지지부진한게 원인으로 꼽힌다. 다만 일각에선 추경 편성을 서두르는 과정에서 적자국채 발행 등이 국채시장이나 인플레 상황을 악화할 수 있다는 판단도 인수위의 추경 '마이웨이'에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사실상 윤 당선인과 인수위가 돈 풀기보다 '인플레 파이터'로 정책방향의 우선순위를 정한 것 아니냐는 견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