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정부, 최근 '인플레 감축법(IRA)' 시행주요국가, 보조금 정책 전략적으로 활용"우리나라도 제도 손질해 실익 높여야"
  • ▲ 조 바이든 대통령이 최근 IRA에 서명하면서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모델들이 미국에서 보조금을 받을 수 없게 됐다. ⓒ연합뉴스
    ▲ 조 바이든 대통령이 최근 IRA에 서명하면서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모델들이 미국에서 보조금을 받을 수 없게 됐다. ⓒ연합뉴스
    미국 정부가 북미에서 조립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는 내용을 담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과시켰다.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도 국내 전기차 산업을 보호할 수 있도록 보조금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최근 IRA에 서명했다. 법안의 내용을 살펴보면 구매자 당 보조금 한도 7500 달러(약 1000만원)는 유지되지만 배터리 부품과 원재로 규정에 따라 각각 3750 달러(약 500만원)씩 나뉜다. 

    법안 발효 후 핵심 광물의 40% 이상은 미국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는 나라에서 채굴 또는 가공돼야 세액 공제를 받을 수 있다. 배터리 주요 부품의 50%가 북미에서 제조돼야 세액 공제 혜택을 받게 된다. 결국 미국 전기차 산업을 보호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번 법안으로 인해 현대자동차, 기아, 제네시스의 전기차 모델들은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된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조지아주에 전기차 전용공장을 설립해 2025년 상반기부터 양산에 돌입할 예정이었지만 IRA에 대응하기 위해 2024년 하반기로 단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를 위해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지난 23일 미국 출장길에 떠났다. 구체적인 일정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뉴욕, 워싱턴DC 등에서 미국 정·재계 인사들을 만나 IRA 관련 논의를 할 것으로 예측된다. 

  • ▲ 베이징 모터쇼에서 중국 전기차들이 전시된 모습. ⓒ연합뉴스
    ▲ 베이징 모터쇼에서 중국 전기차들이 전시된 모습. ⓒ연합뉴스
    미국 외에 주요 국가들도 자국 전기차 산업을 보호·육성하기 위해 전기차 보조금 정책을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중국은 자국에서 생산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한다. 2020년부터 차량 가격 30만 위안(약 5800만원) 이상인 전기차는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했는데, 이는 당시 중국 시장에서 높은 인기를 모았던 테슬라 ‘모델3’를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중국 정부가 장려하는 배터리 교환 서비스(Baas) 기술이 적용된 전기차에는 차량 가격 기준의 예외를 적용했다. 또한 주행거리연장자동차(EREV)를 전기차 보조금 대상에 포함시켰다. 중국 전기차 스타트업 리오토(Li Auto) 등 자국 기업이 EREV를 생산하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독일은 자국 기업이 내연기관 기술에 강점이 있다는 점을 감안해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에 상대적으로 높은 액수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아울러 폭스바겐 전기차 ID. 시리즈가 출시된 2020년부터 전기차 1대당 보조금을 최대 9000 유로(약 1200만원)로 증액하며, 자국 전기차 산업 육성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은 재난 발생 시 전기차가 비상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는 점에 근거해 외부 급전(給戰) 기능이 탑재된 전기차에 대해 보조금을 추가 지급하면서 자국산 전기차를 우대하고 있다. 

    대부분의 일본산 전기차 및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에는 외부 급전 기능이 장착되어 있어 해당 기능이 없는 외산 전기차에 비해 차량 1대당 보조금 상한액이 20만 엔(약 200만원)이 높게 책정됐다. 
  • ▲ 정만기 KAIA 회장이 25일 입장문을 통해 국내 전기차 보조금 개편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중계화면 캡쳐
    ▲ 정만기 KAIA 회장이 25일 입장문을 통해 국내 전기차 보조금 개편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중계화면 캡쳐
    이호중 한국자동차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주요 국가들이 전기차 보조금 지급 시 특정 기술 우대, 가격 기준 설정 등으로 교묘하게 자국의 실익을 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도 보조금 정책을 손질해 국내 전기차 산업을 보호하는 등 실익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현재 국내 전기차 보조금 제도를 보면 국비 기준 승용차(SUV 및 초소형 전기차 포함)는 최대 700만원을 지원 받는다. 소형 화물차는 1400만원, 대형 승합차는 7000만원이 상한이다. 하지만 국산차와 수입차의 구분은 없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우리나라가 미국이나 중국처럼 대놓고 차별하는 보조금 정책을 수립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서도 “WTO나 FTA에 위배되지 않는 선에서 국내 전기차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영석 차지인 대표도 “우리나라도 전략적으로 전기차 보조금 제도를 개편할 필요가 있다”면서 “예를 들어 국내 배터리에서는 가능하지만 외산 브랜드에서는 불가능한 부분들을 찾아 기준으로 삼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자동차산업연합회(KAIA)는 25일 IRA 발효에 대한 입장문을 발표했다. KAIA는 “IRA는 WTO 보조금 규정 위반, 한미 FTA의 내국인 대우 원칙에 위배됐다”면서 “FTA 체결국이며, 경제안보 동맹국인 한국에서 생산되는 전기차에 대해 북미산 전기차와 동등한 세제 혜택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만기 KAIA 회장은 “전기버스 보조금 중 절반 가까이가 중국산 버스에 제공되고 있다”면서 “이같은 현실을 감안해 국내 전기차 보조금 제도 개선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