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13년5개월 만에 1370원 돌파…원화약세 지속, 1400원 넘봐OPEC+, 경기침체 우려 내달 하루 10만배럴 감산…8월수준 회귀강력 태풍 '힌남노' 국내 상륙…농산물 피해시 밥상물가 자극
  • ▲ 고환율 지속.ⓒ연합뉴스
    ▲ 고환율 지속.ⓒ연합뉴스
    정부가 올 3분기 소비자물가가 정점을 찍고 내림세를 보일 거로 예상했지만 쉽잖아 보인다. 환율 쇼크에 주요 산유국의 감산, 태풍 '힌남노'의 피해, 전기·도시가스료 인상 등이 겹치면서 10월이후에도 인플레이션(물가상승) 압력이 커질 전망이다.

    지난 5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8.8원 오른 1371.4원에 마감했다. 금융위기때인 2009년 4월1일(고가 기준 1392.0원) 이후 13년5개월만에 1370원대를 돌파하며 4거래일 연속 연고점을 경신했다.

    이날 오전 재정·통화·금융수장들이 모여 비상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고 "내외국인 자본흐름 등 외환수급 여건 전반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정책 방안도 지속해서 모색하겠다"고 밝혔지만, 원화 가치 급락을 막지 못했다. 유로화 약세, 중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도시 봉쇄, 유럽의 천연가스 공급 차질 등 강달러 재료가 겹쳤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내 매파 발언(긴축 선호)이 여전히 강해 긴축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면서 달러 강세는 당분간 이어질 공산이 크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달 잭슨홀 미팅 연설에서 "인플레이션이 통제되고 있다고 자신할 때까지 금리를 계속 올리겠다"고 했다.

    고환율은 수입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며 시차를 두고 국내 소비자물가에 반영돼 인플레이션 압력을 가중하게 된다.
  • ▲ OPEC 로고.ⓒ연합뉴스
    ▲ OPEC 로고.ⓒ연합뉴스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에 한풀 꺾였던 국제유가도 다시 반등할 기미를 보인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非)OPEC 주요 산유국의 협의체인 'OPEC 플러스'(OPEC+)는 5일(현지시각) 월례 회의를 하고 다음 달 하루 원유 생산량을 이달보다 10만 배럴 줄이기로 합의했다. OPEC+는 지난번 회의에서 9월 10만 배럴 증산에 합의했었는데 이번 감산 결정으로 하루 원유 생산량이 다시 8월 수준(4385만 배럴)으로 되돌아가게 됐다. 경기침체 우려로 원유 수요가 위축되자 발 빠르게 가격 방어에 나선 것이다.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5일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10월물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전 거래일 대비 2.3% 오른 배럴당 88.85달러에 장을 마감했다. 장중 한때 90달러를 돌파하기도 했다. 영국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11월물 브렌트유는 2.92% 오른 배럴당 95.74달러를 기록했다.

    국제유가는 최근 인플레이션을 견인하는 주요 요인이다. 지난달 국내 소비자물가는 1년 전과 비교해 5.7% 올랐다. 전달보다 0.1% 떨어졌다. 물가 상승률이 전달보다 낮아진 것은 올 1월 이후 7개월 만에 처음이다. 국제유가 하락에 석유류가 19.7% 떨어진 게 컸다. 전달과 비교하면 10.0%나 떨어졌다. 1998년 3월(-15.1%) 이후 최대 낙폭이다.

    OPEC+는 다음 달 5일 정례회의에서 11월 생산량을 결정할 예정이다. 난방수요가 늘어나는 겨울철이 다가오고 있지만, OPEC+가 공급 과잉 우려를 이유로 다음번 회의에서도 감산을 결정한다면 에너지가격 변동성이 커지면서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
  • ▲ 태풍 '힌남노' 상륙에 따른 낙과 피해.ⓒ연합뉴스
    ▲ 태풍 '힌남노' 상륙에 따른 낙과 피해.ⓒ연합뉴스
    설상가상 6일 오전 국내에 상륙한 뒤 울산 앞바다로 빠져나간 제11호 태풍 '힌남노'로 말미암아 수확을 앞둔 농산물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정부는 정부비축물량과 농협 계약재배 물량 등을 활용해 주요 성수품(20개)에 대한 공급을 평시의 1.4배 수준으로 확대하고, 태풍에 대비해 조기 수확 등의 조처에 나섰다지만, 태풍으로 말미암은 작황·공급 상황을 점검해봐야 한다는 의견이 적잖다.

    지난달 밥상물가와 밀접한 농산물 가격은 10.4%나 올랐다. 채소류가 껑충 뛰면서 지난해 6월(11.9%) 이후 최고 수준을 보였다. 상승폭은 전달(8.5%)보다 컸다. 불볕더위와 장마로 생육이 좋지 않아 공급량이 달리기 때문으로 태풍 피해 상황에 따라 추석을 앞두고 식탁물가가 소비자물가를 밀어 올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러 악재가 겹치면서 3분기 소비자물가 정점설도 흔들리는 모습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1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들을 만나 "추석이 지나며 물가 오름세가 주춤해지고 9월, 늦어도 10월에는 정점을 찍고 서서히 하락세로 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은행은 다소 신중한 태도다. 이환석 한은 부총재보는 지난 2일 '물가 상황 점검회의'에서 "향후 물가 전망경로는 우크라이나 사태, 국제유가, 기상 여건 등과 관련해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이라며 "(앞으로도) 소비자물가는 상당 기간 5~6%대 높은 오름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계절 요인이나 일시적인 충격에 따른 물가변동분을 제외하고 장기적인 추세를 파악하려고 작성하는 근원물가(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지수)가 지난달에도 4.4% 증가하며 4개월 연속으로 4%대 상승률을 보인 것도 인플레이션에 대해 안심할 수 없는 대목이다. 8월 근원물가 상승폭은 1년 전과 비교하면 7월(4.5%)보다 소폭 둔화했으나 전달 대비 상승폭은 0.2% 오른 상태다.

    10월에 전기료와 도시가스료가 동시에 오를 예정인 것도 물가 불안을 부추기는 요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