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진 월북' 부합 안 하는 정보 의도적 제외"… 안보실이 방침 내려"해경 수사에도 문제… 확인 안 된 증거 사용, 무관한 사생활 공개"중간 감사결과 발표… 5개 기관 총 20명에 직무유기 등 혐의 적용
  • ▲ 왼쪽부터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서욱 전 국방부 장관.ⓒ연합뉴스
    ▲ 왼쪽부터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서욱 전 국방부 장관.ⓒ연합뉴스
    감사원이 13일 2년 전 서해 어업지도선에서 실종된 뒤 북한 해역에서 죽임을 당한 해수부 소속 공무원 고(故) 이대준씨 피격 사건과 관련,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서욱 전 국방부 장관 등 문재인 정부 핵심 안보라인에 대해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감사원은 이들이 이씨 피격 사건을 은폐·왜곡했다고 보고 직무유기와 직권남용, 허위공문서 작성 등의 혐의를 적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감사원은 이날 57일간 진행한 감사 중간결과를 발표했다. 감사원은 보도자료에서 "월북을 단정할 수 없는 월북 의사 표명 첩보와 부정확한 사실을 근거로 자진 월북을 속단했다"고 강조했다.

    감사원은 사건이 있던 지난 2020년 9월22일 이씨가 북한 해역에서 발견된 것을 파악하고도 위기관리 매뉴얼에 따른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안보라인의 초동 조치가 부실하게 이뤄지는 바람에 이씨가 북한군의 총에 맞아 죽임을 당했다는 게 감사원의 결론이다.

    특히 감사원은 당시 안보라인이 관련 사실을 은폐하고, 자진 월북으로 밀어붙인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씨의 자진 월북과 시신 소각 여부에 대해 문재인 정부 안보라인의 의도적이고 자의적인 판단이 개입됐다는 판단이다.

    감사원은 자진 월북 여부와 관련해 당국이 이씨가 스스로 월북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는 정보는 의도적으로 분석하지 않거나 검토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국방부가 이씨 실종이 파악된 2020년 9월21일 오후 3시25분 합참으로부터 조류 방향(북→남)과 어선 조업 시기 등을 이유로 월북 가능성이 작다는 보고를 받았으나 이후 무시됐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당시 안보실이 다른 기관에 자진 월북으로 대응 방침을 내린 사실이 감사 결과 드러났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감사원은 안보실이 이씨 시신의 소각과 관련해서도 국방부 견해가 바뀌도록 개입했다고 했다. 애초 국방부가 이씨의 시신이 북한군에 의해 소각됐다고 인정했으나, 안보실 방침에 따라 소각 여부가 불확실하다거나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는 식으로 답변 태도가 변경됐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해경 수사 과정에도 문제가 발견됐다고 했다. 해경이 기존 증거는 은폐하고 확인되지 않은 증거를 사용한 것은 물론 실험 결과를 왜곡하고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생활을 공개함으로써 이씨의 자진 월북으로 몰아가는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했다는 것이다.
  • ▲ 2020년 당시 해경 브리핑.ⓒ연합뉴스
    ▲ 2020년 당시 해경 브리핑.ⓒ연합뉴스
    2020년 9월29일 해경이 수사상황을 중간 브리핑했을 때부터 이씨의 자진 월북 여부를 두고 논란이 제기됐었다. 브리핑에 앞서 25일 북한이 통일전선부 이름으로 보내온 공식 통지문의 내용과 해경의 브리핑 내용이 많은 차이를 보였기 때문이다.

    당시 해경은 이씨가 북측 해상에서 발견됐을 때 월북 의사를 표현한 정황을 국방부 자료를 통해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북측이 이씨가 설명하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개인 신상정보를 소상히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북측은 전통문에서 이씨를 특정하지 않고 '정체불명 침입자' '아무개'라고 지칭했다.

    또한 해경은 이씨가 발견 당시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다고 했으나 북측 전통문에는 이씨가 부유물을 타고 침입했다고만 돼 있을 뿐 구명조끼에 관한 언급은 없었다. 해경 설명대로 이씨가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다면 북한군의 총에 맞았더라도 바닷물에 떠 있어야 한다. 하지만 북측은 이씨를 쏜 후 10여m까지 접근해 수색했는데도 이씨를 찾을 수 없었다고 밝혀 석연찮은 대목으로 지적됐다.

    이씨가 자진해 월북한 거라면 조류 방향과 맞지 않은 날을 골라 실행에 옮긴 것도 미스터리였다. 이씨는 10여년간 어업지도선을 타면서 물때와 조류 등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고 해경은 설명했다.

    이 때문에 당시에도 군과 해경이 여러 첩보를 꿰맞추는 과정에서 '추정'에 불과한 정황을 단정해서 섣불리 발표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었다.

    감사원은 "이른 시일 내에 감사위원회 의결 등을 거쳐 관련 공무원에 대해 엄중 문책 등의 조처를 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번 감사는 새 정부 출범 이후인 지난 6월16일 국방부와 해경이 이씨의 월북을 인정할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며 사실상 기존 수사결과 발표를 뒤집으면서 시작됐다. 특별조사국 인력 등 18명을 투입해 9개 기관을 대상으로 감사를 벌였다.

    해경의 기존 수사 결과 번복은 이번 국정감사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로 부상해 여야가 사활을 걸고 공방을 벌이고 있다.
  • ▲ 감사원.ⓒ연합뉴스
    ▲ 감사원.ⓒ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