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중대재해법 '노사 자율'로 개편
  • 정부가 중대재해처벌법을 사후 처벌 위주에서 예방 역량을 키우는 방식으로 변경하는 내용의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발표한 가운데, 경영계가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기업 규제 강화를 우려했다.

    고용노동부는 30일 처벌 중심에서 자기규율에 의한 예방에 중점을 두는 방향을 골자로 하는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밝혔다.

    이에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영자총협회, 전국경제인연합회, 중소기업중앙회 등 경제단체가 입장문을 발표했다.

    강석구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안전책임주체인 노사 책임에 기반한 자기규율과 예방역량 향상 지원이라는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의 기본원칙에 공감한다"고 했으나 "재해발생에 대해 처벌중심에서 예방감독으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산업안전감독관의 전문성 제고와 인원확충이 무엇보다 필요한데 이에 대한 대책이 로드맵에 담겨 있지 않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특히, 그간 경제계가 호소해 온 중대재해처벌법의 불확실성과 과잉처벌 문제에 대한 개선방향이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았다"며 "오히려 경제적 제재까지 검토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그간 지속되어온 처벌중심의 감독이 이어질 것"을 우려했다. 

    이어 "내년 1월 27일부터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되는바, 정부가 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시행령 개정 등 보완입법에 적극 나서줄 것"을 촉구했다.

    경총은 "방향설정에 대해서는 경영계도 공감하지만, 세부과제를 살펴보면 자율은 명목뿐이고, 오히려 처벌·감독 등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는 자기규율 예방체계로 패러다임을 전환한다고 하면서도, 현재 대표적 타율적 규제이며 과도한 처벌수준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구체적 개선 대책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며 "오히려 '상습·반복, 다수 사망사고 등에 대한 형사처벌 확행','핵심 안전수칙 위반시 무관용 원칙을 적용한 엄정 조치','중대재해 발생 시 산재보험료 할증 등' 사업주 처벌 및 제재 강화 내용을 다수 포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특히 아직까지도 중대재해처벌법 이행을 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중소규모 사업장에 대해, 위험성평가 실시 강제,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의무설치 대상 확대 등의 규제를 더욱 강화하는 것은 관련기업에 상당한 부담을 줄 뿐"이라고 덧붙였다.

    또 "경영계는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이 기업 자율의 안전관리 구축이라는 새정부 국정과제의 취지에 부합하도록 재정비되어야 하며, 로드맵 이행을 위한 후속 조치 논의과정에서 산업계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는 등 자율예방체계의 조기 정착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다양한 방안들이 적극 모색되기를 요청한다"고 밝혔다.

    전경련은 추광호 경제본부장 명의의 입장문을 내고 "중대재해처벌법이 법령에 의한 규제·처벌 위주의 행정에서 벗어나 '자기규율 예방체계'로 전환하고, 현장 근로자의 책임과 참여를 강화하겠다는 정책방향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다만 "현행 법체계에 대한 합리적인 개선 없이 위험성 평가 의무화 등이 도입될 경우, 기업에 대한 옥상옥(屋上屋) 규제 강화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경련은 "현행 중대재해처벌법은 세계적 유례가 없을 뿐만 아니라, 적용대상과 범위가 모호하고 처벌수준도 지나치게 높아 현장의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며 "동법 시행 이후에도 중대재해는 줄지 않고 있어 그 실효성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밝혔다. 또 "향후 입법과정에서 로드맵의 취지가 잘 반영되도록 중대재해처벌법의 개선 등 기업 현장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전 세계 유례를 찾기 어려운 중대재해법과 산안법의 강한 처벌 규정을 그대로 둔 채 위험성 평가 의무화를 통한 새로운 처벌 규정을 마련하는 것은 오히려 노동 규제를 강화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위험성 평가 의무화는 중대재해법의 처벌 수준을 완화하거나 중대재해법과 산안법의 일원화 등 법률 체계 정비와 함께 점진적이고 신중히 추진돼야 한다"면서 "산업안전보건위원회의 의무설치 대상을 기존 100인 이상에서 30인 이상으로 확대하는 것은 가뜩이나 자금·인력난에 시달리는 영세 중소기업들의 행정 부담을 가중할 우려가 커 재고해달라"고 촉구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중대재해감축 로드맵'에 따르면 산업안전감독당국의 정기감독을 노·사가 자율적으로 실시하는 '위험성평가'로 의무화하고,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시정명령 또는 벌칙을 주는 근거조항이 신설된다. 위험성평가' 의무를 지키지 않거나, 부적정하게 실시한 사업장에 대해서는 시정명령 또는 벌칙이 부과된다.

    정부는 내년부터 근로자 '300인 이상'인 대기업부터 위험성평가를 의무화하고, '300인 미만' 중소기업의 경우 업종·규모에 따라 2024년부터 연차적으로 적용을 확대해 가기로 했다. 2024년 '50~299인', 2025년 '5~49인'으로 확대·적용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