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국 사장 "통복터널 단전사고로 130억 피해"… 코레일 부실보수가 원인"독자 차량정비 확대, 불합리한 코레일 위탁계약 전면 재검토 등 추진"통합논란 일단락 후 자력갱생 의지로 해석… 국유재산법 정비 땐 '날개'
  • ▲ SRT.ⓒ㈜SR
    ▲ SRT.ⓒ㈜SR
    수서고속철을 운영하는 ㈜에스알(SR)이 달라졌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를 상대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철도 수평통합 논란이 윤석열 정부 들어 사실상 고속철 경쟁체제 유지로 일단락나면서 더는 코레일 눈치(?)를 보지 않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이종국 SR 사장은 5일 수서역 고객접견실에서 '평택 통복터널 전차선 단전 관련 SRT 운행 차질에 대한 입장문'을 발표했다.

    지난해 12월30일 오후 5시쯤 SRT 상행선 통복터널(천안아산역~평택 지제역 구간)에서 전차선이 차단돼 전기 공급이 끊어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 때문에 열차 운행이 지연되고, 일부 SRT 열차에 고장이 잇따르는 등 피해가 발생했다. 알려진 바로는 통복터널의 천장 방수하자 공사에 쓰인 부직포가 선로로 떨어지면서 전기 공급에 문제를 일으켰고, SRT 열차에도 부직포 조간이 빨려 들어가면서 차량 고장을 일으킨 것으로 추정된다. 터널 하자 공사는 코레일이 했다.

    이 사장은 이날 입장문에서 "이번 단전사고로 SRT 32편성 중 25편성에서 67개 주전력변환장치(모터블록)이 훼손됐다"며 "차량 복구에 91억원, 비상차량 임차료 25억원 등 발생한 피해액이 총 130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 사장은 "이번 사고는 부실한 자재 사용과 공사과정에 대한 허술한 관리가 원인"이라며 "건설과 관리가 분리된 현재의 유지·보수 체제로는 철도안전을 확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SR은 이번 사고를 계기로 △독자 차량정비·차량부품 공급 확대 △코레일 위탁계약 전면 재검토 △독자 예약·발매시스템 구축 △코레일 자회사 위탁업무 재정비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 사장은 "독자적 운영이 어렵고 힘든 여정이지만, 철도산업발전을 선도하는 효율적인 사례를 만들어 그 성과를 국민께 돌려드리겠다"고 말했다.
  • ▲ 이종국 SR 사장.ⓒ연합뉴스
    ▲ 이종국 SR 사장.ⓒ연합뉴스
    이날 이 사장의 발언은 사실상 SR이 더는 코레일 눈치를 보지 않고 의존적 경쟁 관계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겠다는 일종의 독립선언과도 같다. 여기에는 최근 국토교통부가 고속철도 수평 통합 논란에 대해 사실상 현 경쟁체제를 유지하겠다고 SR 손을 들어준 게 기폭제가 됐다. 지난해 12월19일 코레일·SR 통합 논쟁과 관련해 구성된 '거버넌스 분과위원회(이하 분과위)'는 통합 여부에 대한 찬반 의견이 첨예하고 분석에 필요한 분리 운영 관련 자료마저 부족하다며 최종 판단을 유보한다는 종합의견을 국토부에 냈다. 국토부는 분과위 의견을 수용한다며 현재의 경쟁체제를 유지하기로 했다. 사실상 SR 손을 들어준 셈이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나라별 사회·문화적 여건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해외에서도 독점에서 경쟁으로의 전환이 철도발전의 기본방향"이라며 "국민이동을 책임지는 철도가 더 발전할 수 있게 건강한 철도경쟁을 유도하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대전조차장역 인근에서 탈선사고가 났던 SRT 203호(편성번호) 열차가 지난달 28일 정비를 마치고 영업선로에 복귀한 것도 이번 SR 독립선언에 힘을 보탰다. SRT 203호 열차 정비는 원래대로라면 코레일이 정비해야 했지만, 지난해 초 국토부가 KTX-산천 탈선사고를 계기로 마련한 '고속열차 안전관리·신속대응 방안'을 근거로 차량 제작사인 현대로템에 정비를 맡겼다. 이 과정에서 SR로선 코레일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었고, 코레일 동의를 얻어야만 했지만,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해당 열차는 앞선 유사한 사례보다 정비 기간을 1년이나 단축하며 영업선로에 복귀했다. 차량 조기 복귀로 말미암아 SR이 간접적으로 보게 된 수익은 무려 130억원에 이른다. 아이러니하게도 SR과 현대로템의 민관 협업으로 얻은 간접 수익 130억원은 이번 단전사고로 허공에 연기처럼 사라지게 됐다.

    SR로선 국토부가 국유재산법 정비에 착수했다는 점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철도공사법에 따라 설립한 코레일은 철도운영 관련 사업을 효율적으로 경영할 수 있게 국유재산 무상사용 등의 혜택을 본다. 반면 애초 상법에 근거해 설립한 SR은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미약하다. 철도 공공성이 강조되면서 신분은 주식회사에서 코레일과 같은 공기업이 됐지만, 법적인 지원과 관련해선 여전히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는 셈이다. 이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지난달 20일 분과위 평가결과 발표 당시 "국유재산법 정비에 이미 착수했다"고 답했다.

    SR은 오래전부터 호남 광주송정 차량정비기지에 눈독을 들여왔다. 광주 차량기지에서 정비하는 고속철도 차량의 90%는 SRT다. 광주 차량기지는 국토부에 소유권이 있다. 코레일이 장만한 검수설비가 일부 있지만, 대부분이 정부 소유의 미출자 자산이다. 차량기지를 넘겨받는 데 서류상으로는 코레일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는 설명이다.

    걸림돌은 국유재산법이었다. SR이 철도공기업이 된 지 오래됐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국유재산의 무상사용이나 현물출자 같은 혜택을 볼 수 있는 법률 정비는 이뤄지지 않았었다. SR이 광주 차량기지를 인수한다면 현대로템 등 관련 기술력을 보유한 기업체에 정비업무를 맡길 수 있다. 철도업계 한 관계자는 "민간에 정비업무를 위탁하면 현재 코레일에 주는 비용의 70% 수준으로 비용 지출 규모가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