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투자 원천봉쇄 피해… 첨단 반도체 대상 5% 확장 가능추가 협상 여지 남겨둔 美… 반도체업계 "일단 최악은 피해"예상보다 나은 가드레일 조항에도 독소저항 가득 보조금 조건 "실익 없어"
  • ▲ 삼성전자 미국 테일러 공장 신설 부지 ⓒ삼성전자
    ▲ 삼성전자 미국 테일러 공장 신설 부지 ⓒ삼성전자
    미국 상무부가 반도체법(CHIPS Act)에 따른 투자 보조금을 받기 위해선 향후 10년 간 중국에서 투자를 금지한다는 내용을 담은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의 세부 사항을 21일(현지시간) 공개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운영하고 있는 중국 반도체 공장은 첨단 공정에 해당돼 향후 생산능력을 5%까지 늘릴 수 있는 여지가 생겨 한숨 돌렸지만 독소조항이 가득한 미국 보조금을 받는 것을 두고는 여전히 의견이 엇갈린다.

    미 상무부는 이번에 공개한 가드레일 조항을 통해 미국 정부의 투자 보조금을 받은 기업은 향후 10년 간 중국 내 첨단 반도체 생산 능력을 5% 이상 증설하거나 10만 달러(약 1억 3000만 원) 이상 거래를 금지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생산 확장 제한은 첨단 반도체에 적용되는 기준으로, 범용 반도체의 경우 10% 내에서 확장이 제한된다. 확장이라는 개념도 반도체 생산에 투입되는 웨이퍼 양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라 미세공정으로 집적도를 높여가면 큰 제한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게 업계의 해석이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 두고 있는 공장에서 128단 낸드플래시를 생산하고 있고 SK하이닉스는 우시 지역에서 10나노급 D램을 제조하고 있다. 일단은 미 정부가 제시하는 5% 생산 확대 제한에 걸리지만 향후 첨단 반도체와 범용 반도체에 대한 기준은 변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 이 부분에서도 추가적인 협상은 가능할 수 있다. 국내 반도체업계에서 우려했던 것보다 가드레일 조항이 당장 중국 생산에 발목을 잡는 수준은 아니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도 이처럼 사안마다 추가 협상이 가능한 구조가 제시됐기 때문이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우려했던 것보다는 온화한 수준에서 가드레일이 제시됐다고 보는데 실제로 중국에 투자가 시행되는 시점마다 그 절차나 과정이 더 피곤해지기는 했다"며 "사실상 중국 투자건마다 미국에 근거를 제시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 허락을 구해야 하는 일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 상무부는 중국 투자에 예외 조항을 두고 이를 인정받아 투자에 나서기 위해선 까다로운 절차를 밟도록 조치했다. 반도체 생산량의 85% 이상이 중국 내수시장에서 소비되는 기업은 10% 이상의 설비 투자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다만 이를 인정받으려면 미 상무부에 지속적으로 규정 준수 여부를 보고해야 하고 중국업체들과 공동 연구 등을 추진하면 안된다.

    당초 삼성과 SK가 계획하고 있던 중국 내 생산 계획에는 차질이 불가피하긴 하지만 완전히 생산이 막히는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는 점에 의의를 두는 분위기다. 가드레일 세부사항이 공개되기 전에는 최악의 경우 중국 내에서 반도체 생산길이 서서히 막히면서 결국엔 생산을 포기해야하는 수준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 바 있어 우려가 컸다. 양사 모두 중국에 전체 낸드나 D램 생산 절반 가까이를 의존하고 있어 당장의 제재는 타격이 크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의 반도체 보조금을 받기 위해선 한국 기업들이 치러야 할 대가가 크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보인다. 가드레일 조항이 최악의 변수로 지목됐던 상황은 면했지만 앞서 미 상무부가 발표한 보조금 지급 기준에는 독소조항이 가득하다. 미 반도체 생산기지에서 발생한 추가 이익을 환수하는 조치나 미국 정부 관련 주요 기관에 반도체 시설을 공개하거나 공동 연구, 시설 대여 등을 해야 하는 등의 조건은 반도체 기업들에겐 전부라고 할 수 있는 기밀을 공개해야 하는 민감한 사안이다. 

    이렇게 기밀까지 내주면서까지 국내 기업들이 받을 수 있는 보조금도 투자 규모에 비하면 턱 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전체 설비투자 규모의 5~15% 수준에서 보조금이 지급되는데, 삼성전자의 경우 테일러 신공장에 쏟아붓는 170억 달러 중 최대 25억 달러 정도만 받을 수 있는 셈이다.

    여기에 최근 원자재와 건축자재 가격이 치솟으면서 당초 예상보다 투자 규모가 10% 가량 더 늘어날 것이란 전망까지 더해져 삼성의 부담은 더 커졌다. 보조금을 받아도 사실상 늘어난 공사비를 충당하기에도 버거울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향후 미 정부 측의 무리한 요구에도 응해야할 리스크까지 감당해야할지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