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부, 에너지공기업·요금 관련 회의 잇달아 취소당정, 추가 여론수렴 밝히고도 회의 취소에 궁금증 증폭"여론 눈치보는 여당… 눈치없이 여당 심기 건드린 산업부"
  • ▲ 지난달 31일 국회에서 열린 당정협의회 ⓒ연합뉴스
    ▲ 지난달 31일 국회에서 열린 당정협의회 ⓒ연합뉴스
    산업통상자원부가 올 2분기 전기·가스요금 조정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려고 마련한 회의를 잇달아 취소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산업부는 지난 2일 오후 2시 서울 한전아트센터에서 '에너지공기업 경영현황 긴급 점검회의'를 개최할 예정이었지만, 회의 시작 1시간 전에 돌연 취소했다. 3일에도 오후 4시로 예정된 '에너지요금 관련 에너지위원회 민간위원 간담회'를 취소했다.

    앞서 정부·여당은 지난달 31일 당정협의회를 열고 전기·가스요금 인상 결정을 보류하면서 "전문가 좌담회 등 여론 수렴을 좀 더 해서 결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산업부의 연이은 회의 취소가 궁금증을 증폭시키는 이유다.

    정부·여당은 전기·가스요금 인상의 필요성에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2분기에 요금을 동결하기에는 에너지 공기업의 적자가 더 이상 방치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도 당정협의회를 마치고 "전기와 가스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재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하루라도 빨리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검토한 뒤 여당과 다시 협의를 진행해야 하는 산업부가 돌연 회의를 취소해버린 것이다. 이에 대해 산업부는 "공기업 재무상황 재점검, 국제연료비 변동추이, 공기업 자구노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점검 등이 필요하다"는 공식입장을 냈다.

    산업부 해명에도 일각에선 당정 간 미묘한 엇박자를 지적한다. 지난해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산업부와 에너지 공기업들은 1년 가까이 수십차례 회의를 통해 재무개선 계획을 수립하고 이행계획 등을 점검해왔기에 재무상황 점검 등을 이유로 회의를 돌연 취소한다는 게 쉽게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에너지 공기업들은 지난해 정부와의 협의를 통해 6조4000억 원의 재무개선 성과를 냈으며, 올해는 5조3000억 원의 목표를 세우고 이를 이행 중이다. 이런 와중에 자구노력에 대한 종합적인 점검이 필요하다는 산업부의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일각에선 산업부가 전날 회의 전에 배포한 보도자료가 여당의 심기를 건드린 것 아니냐는 의견이 제기된다. 산업부가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전기·가스요금 인상이 지연될 경우 한전은 사채 발행 한도를 초과해 전력산업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으며, 가스공사는 미수금이 올해 12조9000억 원까지 누적될 것으로 전망됐다.

    보도자료는 한전의 원가회수율은 70%, 가스공사는 62.4%쯤에 불과하다고 부연했다. 또한 코로나19 이후 중국 경제 회복(리오프닝)에 따른 액화천연가스(LNG) 수요증가, 유럽국가들과의 비축용 LNG 도입 경쟁 등이 맞물리면서 가스공사의 재정여건 악화가 LNG 물량확보 협상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아울러 산업부는 "서민생활 안정, 국제 에너지가격 추이, 물가 등 경제에 미치는 영향, 채권시장 영향, 공기업 재무상황 등을 면밀히 검토해 조속한 시일 내에 전기·가스요금 조정방안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마음이 급한 산업부로선 전기·가스요금 인상 결정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는 표현이지만, 자칫 여당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당은 최근 근로시간제 개편과 저출산 대책, 한·일 정상회담 후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 하락 등으로 여론의 눈치를 살피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산업부가 "한전과 가스공사의 재정상황이 심각하니 조속한 시일 내에 요금조정안을 발표할 것"이라고 보도자료를 배포하자 여당이 적잖이 당황했을 것이란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이와 관련해 산업부 관계자는 "회의 취소 이유는 공식입장과 같다. 여러가지를 좀 더 살펴보고 하자는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