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 경사노위 불참 선언 후 열려 분위기 냉랭금속노련 간부 강경진압 규탄·석방 탄원 요청도1만2000원 vs 동결… 휘발성 강해 夏鬪 뇌관 될 수도
  • 8일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3차 전원회의에서 노동자위원인 류기섭 한국노총 사무총장(오른쪽)과 위원들이 지난달 31일 전남 광양제철소 앞에서 농성 중이던 김준영 한국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 상임부위원장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과잉 진압을 규탄하는 손팻말을 붙이고 있다.ⓒ연합뉴스
    ▲ 8일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3차 전원회의에서 노동자위원인 류기섭 한국노총 사무총장(오른쪽)과 위원들이 지난달 31일 전남 광양제철소 앞에서 농성 중이던 김준영 한국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 상임부위원장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과잉 진압을 규탄하는 손팻말을 붙이고 있다.ⓒ연합뉴스
    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하기 위한 최저임금위원회 제3차 전원회의가 8일 살얼음판 속에서 치러졌다. 점차 격화하는 노·정 갈등 여파로 이날 회의는 시작부터 분위기가 냉랭했다. 노동계는 최저임금위를 정부 성토의 장으로 삼았다. 정부가 노동계를 탄압한다며 대립각을 세웠다.

    정작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한 논의는 노사 간 시각차가 커 사실상 공회전했다. 주요 의제인 '차등적용'을 두고도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최저임금위는 이날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3차 전원회의를 열었다. 회의에는 총 27명의 위원 중 노동자위원 1명과 공익위원 1명을 제외한 25명이 참석했다. 최저임금위는 사용자위원 9명, 노동자위원 9명, 정부가 임명하는 공익위원 9명으로 구성한다. 빠진 노동자위원은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의 김준영 금속노련 사무처장이다. 김 사무처장은 지난달 31일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 하청업체 탄압 중단을 요구하며 고공 농성을 벌이다 체포됐다. 체포 과정에서 정글도와 쇠파이프 등 흉기를 휘두르며 경찰 진압을 방해한 혐의로 지난 2일 구속된 상태다.

    이날 김 위원 자리에는 '경찰 폭력 진압에 의해 구속된 김준영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 석방하라'는 피켓이 걸렸다. 다른 노동자위원들도 '노동탄압 분쇄', '경찰청장 사퇴하라', '노동자 폭력진압 규탄' 등의 내용을 쓴 피켓을 내걸었다.

    노동계 안팎에선 이 사건이 노·정 갈등이 폭발하는 도화선이 될 수도 있다는 의견이다. 전날 한국노총은 김 사무처장이 경찰로부터 과잉 진압을 당했다고 주장하며 대통령 직속 노·사·정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의 전면 참여 중단을 선언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1999년 노사정위를 탈퇴한 이후로 줄곧 사회적 대화에 불참해왔던 터다. 이로써 경사노위에 노동계 측 대표자는 아무도 없게 돼 소통 단절의 우려가 제기됐다.

    최저임금위에 참석한 한국노총 측은 당장 김 사무처장의 구속 건을 언급했다. 류기섭 한국노총 사무총장은 "최저임금위 노동자위원으로 참여했던 김 사무처장이 경찰의 폭력 진압에 의해 연행되고 구속됐다"며 "누구보다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했던 김 사무처장에게 경찰이 무차별적으로 퍼부은 곤봉 세례가 과연 정당한 진압방식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노동자위원이 부족한 상태에서 최저임금 심의를 진행하는 건 불합리한 부분이 있다. 위원장이 규정과 범위 내에서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요청했다. 또 "노·사·공 위원들이 소속을 떠나 같은 최저임금위 위원으로서 김 사무처장의 석방을 위한 탄원서 제출에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양대노총 중 하나인 민주노총도 입을 보탰다. 박희은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노동자위원 1명의 자리가 비었다. 그것도 정부의 탄압으로 부당하게 구속됐다"며 "최저임금위가 제대로 운영될 수 있도록 노동자위원을 석방하라.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최저임금위에서 그 어떤 표결의 방식이 있어서도 안 된다"고 목청을 높였다. 박 부위원장은 정부가 김 사무처장을 석방하도록 최저임금위가 보증을 서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양대노총은 최저임금위 노동자위원 명의로 '최저임금 노동자의 권리를 몽둥이로 막을 수 없다'는 성명서를 내고 김 사무처장의 석방을 촉구했다.

    이에 대해 사용자위원인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전무와 이명로 중소기업중앙회 인력정책본부장은 각자 모두발언을 통해 김 사무처장의 상황이 안타깝다는 의사를 표했다. 다만 근로자위원들의 요구에 대한 입장을 내놓지는 않았다.
  • 8일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3차 전원회의에서 사용자위원인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왼쪽)와 근로자위원인 류기섭 한국노총 사무총장이 물을 마시기 위해 생수통을 잡고 있다.ⓒ연합뉴스
    ▲ 8일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3차 전원회의에서 사용자위원인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왼쪽)와 근로자위원인 류기섭 한국노총 사무총장이 물을 마시기 위해 생수통을 잡고 있다.ⓒ연합뉴스
    한국노총의 경사노위 불참 선언 이후 열린 이날 최저임금위는 예상을 깨고 노동계가 참석키로 하면서 주목을 끌었다. 노정 관계가 급랭한 가운데 노동계가 어떤 강경 발언을 쏟아낼지 이목이 집중됐다. 최저임금위 파행을 우려하는 목소리와 함께 향후 노동계의 대정부 투쟁 향방을 짐작할 수 있는 가늠자로 여겨졌다.

    더욱이 그동안 노동계는 공익위원 간사를 맡고 있는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가 정부의 노동개혁에 앞장서고 있다는 이유로 사퇴를 요구하던 터여서 발언 수위에 관심이 쏠렸다. 다행히(?) 노동자위원 측은 지난 1·2차 회의와 달리 권 교수를 별다른 타격점으로 삼지는 않았다. 그동안 노동계로부터 십자포화를 맞았던 권 교수도 말을 아꼈다. 권 교수는 "다음 주부터 매회 2회씩 집중 심의하겠다. 주어진 기간 내 심의가 이뤄지도록 노력하겠다"고 짧게 발언을 마쳤다.

    노동계는 김 사무처장의 석방과 정부의 노동계 탄압을 부각하는 데 치중했다.

    일각에선 노동계가 최저임금위를 본격적인 하투(夏鬪)를 위한 예열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최저임금 법정처리시한은 이달 29일이다. 경기침체와 고물가·고금리로 어느 때보다 최저임금 결정이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최저임금은 노동계를 결속해 대정부 투쟁의 동력으로 삼을 만한 휘발성 강한 이슈이다. 특히 김 사무처장이 빠진 상태에서 이번에도 공익위원이 제시한 타협안을 두고 표결이 이뤄질 경우 노동계는 공익위원과 정부를 싸잡아 '불공정' 프레임을 걸고 정부를 몰아세울 가능성이 적잖다.

    노동계는 이미 강도 높은 대정부 투쟁을 예고한 상태다. 한국노총은 전원회의에 앞서 오전 10시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윤석열 정권 심판 투쟁 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조직 차원의 투쟁 의지를 다졌다. 한국노총은 기자회견문에서 "(김 사무청장의 구속으로) 윤 정부는 사회적 대화에 대한 개념도 의지도 없음을 분명히 보여줬다"며 "경사노위의 참여 전면 중단은 그 시작에 불과하다. 정부의 권력 놀음을 끝장내기 위한 심판 투쟁에 전 조직이 하나돼 싸울 것"이라고 발표했다.
  • 경사노위 참여 중단 선언한 한국노총이 8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국노총은 '윤석열 정권 심판'을 위한 전면 투쟁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연합뉴스
    ▲ 경사노위 참여 중단 선언한 한국노총이 8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국노총은 '윤석열 정권 심판'을 위한 전면 투쟁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연합뉴스
    한편 이날 전원회의의 주요 의제는 최저임금의 차등적용 여부였다. 경영계는 업종별 임금지불 능력을 고려해 영세·소상공인 등에는 보다 낮은 최저임금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노동계는 차등적용은 최저임금의 취지를 살리지 못한다고 반대한다. 내년도 최저임금으로 노동계는 올해보다 24.7% 오른 시간당 1만 2000원을, 경영계는 9620원 동결을 각각 주장한다.

    회의에서는 노사 양측의 견해차만 거듭 확인했다. 노동자위원인 류 사무총장은 "국제노동기구(ILO) 발표 자료에 따르면 법정 최저임금제가 있는 회원국 중 과반이 넘는 국가에서 단일 최저임금을 적용한다. 또 G7 같은 주요 선진국은 기존 최저임금보다 높은 상향식 차등적용이지 하향식은 없다"며 "우리나라는 복잡한 산업구조 특성상 이들보다 업종별 차등적용을 하기가 쉽지 않다. 더는 최저임금 본래 취지와 목적을 훼손하는 논의는 그만둬야 할 것"이라고 발언했다.

    이에 맞서 사용자위원 측은 정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류 전무는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중 19개국이 업종별 구분 외에도 여러 구분을 (최저임금에) 적용하고 있다. G7 국가에서는 나이·지역 등 2개 이상으로 나눠 구분 적용한다"며 "그동안 업종별 구분 적용이 여러 통계 미비 등을 근거로 못한다고 말해 왔지만, 이번에 정부 용역대로 정확히 검토하고 반영해서 실현될 수 있도록 위원들이 노력해 달라"고 요청했다.

    사용자위원인 이 인력정책본부장도 "정부 예산을 투입해 논의한 만큼 결론을 내야 하는 시점이다. 기업경영 논리에 따라 (차등적용에 대한) 설득력은 충분하다"며 "근로자 임금 수준은 경영계의 경업이익 등 창출 정도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 지급 여력이 부족한 업종은 인건비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인상률을 차등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여당인 국민의힘은 최저임금의 '지역별' 차등적용 개정안을 발의하며 차등적용의 실현 쪽에 힘을 싣는 모습이다. 개정안은 지방자치단체장이 관할 지역에 차등적용을 요청하면 고용노동부 장관이 승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차등적용하는 근로자 임금 수준은 지자체가 일정 수준 보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