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4월 33.9조 덜 걷혀… 정부, 개소세율 3.5%→5% 환원추경호 "올해 법인세 인하·상속세 개편 추진 안해"…稅개편 '멈칫'政, 세수부족·여소야대 등 셈법 복잡…국회는 포퓰리즘 법안 '봇물'
  • 세수결손 규모가 커지는 데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법안이 쏟아지면서 상속세와 법인세 세제개편 등 정부의 조세개혁이 뒷걸음질 치는 분위기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8일 관훈클럽 초청토론회에서 상속세의 유산취득세 전환과 법인세 최고세율 추가 인하에 대해 "올해 (상속세 개편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법인세 개편안도) 최소 한 해 정도는 숨고르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5월 출범 초기만 하더라도,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3%포인트(p) 인하하는 세제개편을 의욕적으로 추진했다. 상속세를 유산취득세로 개편하는 안도 집권 2년차인 올해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정부 출범 1년 만에 태도 변화가 감지된다.

    정부 입장이 바뀐 것은 예상보다 큰 세수부족 사태가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올 들어 4월까지 세수는 전년동기 대비 33조9000억 원이 덜 걷혔다. 기업들의 실적하락이 컸다.

    4월까지 법인세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조8000억 원이나 감소했다. 이런 상황에서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를 재추진하기에는 동력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법인세율을 1%p 밖에 내리지 못한 최대 원인인 '여소야대' 상황도 그대로다. 전략적으로 따져도 올해 법인세 인하를 재추진하기에는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 ▲ 자동차 개소세 인하 종료 ⓒ연합뉴스
    ▲ 자동차 개소세 인하 종료 ⓒ연합뉴스
    국회 169석을 장악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은 정부 운신의 폭을 좁히는 최대 걸림돌이다. 현 정부 출범 초기 내세웠던 '민간 주도 경제성장'을 위한 조세개혁이나 세제지원 등을 추진하는 데 브레이크가 걸리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가운데 세수 부족마저 정부의 발목을 잡는 형국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전날 발표한 자동차 개별소비세 30% 한시 인하 종료다.

    자동차 개소세 한시 인하 조치는 지난 2018년 7월부터 시행돼 5년간 연장을 반복해왔다. 개소세율은 원래 5.0%였지만, 수년간 3.5%로 인하된 세율을 적용받다보니 대부분은 개소세율이 원래 3.5%라고 오해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기재부 발표 하루 전인 지난 7일 국세청은 다음 달부터 국산차 과세표준 경감 특례 제도가 시행돼 국산차 구매 시 세 부담이 줄어든다고 발표했다. 공장 출고가격 4200만 원인 현대자동차 그랜저의 경우 54만 원의 세금이 줄어들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달 말로 개소세율 한시 인하가 종료돼 세율이 5.0%로 환원되면 세 부담은 되레 36만 원이 늘어나게 된다. 세 부담이 줄어든다는 정부의 발표가 하루 만에 뒤집힌 것으로, 국민을 기망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일각에선 사정이 이런데도 기재부가 개소세 인하를 종료한 데에는 그만큼 세수 부족이 심상찮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상속세제 개편도 비슷한 맥락이다. 상속세를 유산취득세로 전환하는 것은 세 부담을 낮춰주고 세제를 합리화한다는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의 과도한 상속세는 종종 사회적 이슈가 돼왔다. 특히 기업 오너의 입장에선 경영권 방어와 직결되는 문제다. 삼성가가 상속세 납부를 위해 총 4조 원대의 주식담보대출을 받으면서 상속세 개편에 대한 공감대는 확산했다. 최근에는 상속세 부담에 현물을 받은 기재부가 넥슨 지주사인 NXC의 2대 주주로 이름을 올리면서 논란이 일었다. 그런데도 정부가 상속세 개편을 미루는 모습은 세수 펑크와 여소야대 한계 등이 얽혀있기 때문이다.

    추 부총리는 관훈클럽 초청토론회에서 "상속세 개편 작업 등에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소요돼 올해 상속세 개편을 추진하기 어렵다"고 밝혔지만, 세수 부족과 총선을 앞두고 정부의 복잡한 셈법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런 가운데 내년 총선을 앞두고 쏟아지는 각종 포퓰리즘 법안도 조세개혁에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지적이다. 국회는 2030 청년층에 대한 교통비 지원, 대학생 1000원의 아침밥 확대, 취업 후 학자금 상환 관련 대출이자 면제 특별법 등 내년 총선을 겨냥한 법안을 쏟아내고 있다.

    세수 부족과 1000조 원을 넘어선 국가부채에도 재정건전성을 지켜야 하는 기재부로선 법인세나 상속세 개편 등의 '감세' 개편안을 꺼내 들기가 녹록잖은 상황이다. 정치권이 "정부는 하는데 우리는 왜 못하냐"는 논리로 포퓰리즘 법안 통과를 밀어붙이면 정부로선 이를 막아낼 뾰족한 명분이 없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현 정부는 기업 활동을 지원해 민간 주도로 경제를 살리고 이를 세수로 연결시키겠다는 기조"라며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법인세와 상속세를 개편하겠다고 했는데, 집권 초반인데도 이를 하지 않겠다는 것은 이른 감이 있다"고 꼬집었다. 홍 교수는 "세제개편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세수에 도움이 될 지 모르나, 2~3년이 지나면 세수를 더 어렵게 할 수 있다"면서 "정부에서 내년 총선(상황)을 머릿 속에 두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개소세 인하 종료와 관련해선 "세수가 어렵다고 하지만, 경기도 어렵다"면서 "개소세 인하 종료를 하겠다는 것은 산업과 내수진작에 장애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