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하이닉스 수십년 몸 담은 임원 출신, 中에 설계 빼돌리다 덜미반도체업계 만연해진 기술 유출 유혹... 임원 출신 앞장서 '충격'산업기술보호법 있지만 처벌 '미미'... 양형기준 재조정 필요성 커져
  • ▲ 삼성전자 중국 시안 반도체 공장 전경 ⓒ삼성전자
    ▲ 삼성전자 중국 시안 반도체 공장 전경 ⓒ삼성전자
    삼성전자가 연달아 발생한 반도체 관련 기술 유출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대부분 삼성 반도체(DS) 부문 내에서 근무했던 전직자들이고 이 중 더 높은 도덕성을 요구 받는 전직 임원들까지 중국 등에 반도체 핵심 기술이나 정보를 넘기는 일이 허다해지면서 대응책 마련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2일 수원지검 방위산업·산업기술범죄수사부(박진성 부장검사)는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전 삼성전자 상무 A씨(65)를 구속기소했다.A씨와 함께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설계 도면 등을 빼돌린 삼성전자 협력업체 직원 1명을 비롯해 A씨가 운영하는 중국 반도체 제조 컨설팅 회사 직원 5명도 불구속 기소됐다.

    반도체업계에선 A씨가 삼성전자에서 18년 근무해 임원 자리까지 오른데 이어 SK하이닉스에서도 10여년 간 근무한 부사장 출신이라는 점에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그는 특히 과거 삼성전자가 메모리 반도체 제조에 있어 공정 미세화 기술을 선제적으로 도입할 수 있도록 이끈 장본인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업계에서 입지가 있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게다가 SK하이닉스(당시 하이닉스반도체)로 넘어간 이후에도 이 같은 능력을 인정받아 승승장구해 최고기술책임자(CTO)에 오르고 사장 후보에까지 올랐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라는 반응이다. SK하이닉스에서 퇴사한 이후 A씨는 국내 태양광업체로 이직해 일하다가 중국으로 넘어가 반도체 제조 컨설팅업체를 차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업체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출신 인력들도 200여명 가량을 고용하고 있다.

    A씨와 함께 반도체업계에 몸 담던 많은 인물들이 이번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설계 정보 유출에 동참했다는 사실도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이다. 특히 A씨의 하이닉스 시절 동료들이 A씨 회사의 최고운영책임자와 최고기술책임자 역할을 맡아 A씨를 직간접적으로 도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반도체업계 고위 임원 상당수가 기술 유출에 사실상 가담한 셈이다.

    앞서 삼성전자의 또 다른 직원도 경쟁사인 미국 인텔로 이직을 준비하면서 파운드리 3나노 공정 관련 기밀을 유출한 사례도 있었다. 파운드리 시장 핵심 기술인 3나노 미세공정이 삼성 뒤를 바짝 쫓는 인텔로 넘어갈 뻔한 아찔한 상황이었다. 다행히 기술이 넘어가기 전 해당 직원은 붙잡혔지만 반도체 기술 유출로 인한 삼성의 리스크는 그 범위가 점차 확대되는 분위기다.

    특히 한국 반도체 기술을 호시탐탐 노리는 중국 기업과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의 많은 반도체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이직을 제안하거나 사례금을 제시하는 방법으로 산업 스파이를 양성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이나 SK에서도 이런 상황에 대비해 내부 보안에 강도를 높이고 있는 추세지만 작정하고 기술 유출을 감행하는 이들에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막대한 사례금이나 인센티브를 제시하며 한국 반도체 기술 유출을 노리는 다수의 경우 중에는 설사 기술 유출 시도가 발각되더라도 그 처벌 수위가 높지 않다는 점을 앞세워 범법 행위를 부추기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만 유출에 성공해도 막대한 돈을 벌 수 있고 걸려도 약간의 처벌만 감수하면 된다는 식의 설득이 일부 한국 반도체 종사자들에게 통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에선 기술 보호를 위한 법률로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을 핵심으로 두고 있다. 이 법에 따라 국가핵심기술의 경우 해외로 기술을 유출하게 되면 3년 이상의 징역과 15억 원 이하의 벌금이 병과돼고 나머지 산업 기술은 15년 이하 징역이나 15억 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유명무실하다는 게 문제다. 지난 2021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으로 진행된 형사공판 사건(제 1심 기준) 중에서 무죄가 60%를 넘었다. 집행유예도 27.2%였다. 실제 재산형이나 실형을 선고받은 경우는 6%에 불과했다.

    해외는 기술 유출에 대한 처벌 수위가 우리보다 훨씬 높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반도체 산업이 발전돼있고 관련 기술 개발이 많은 대만은 5년 이상 12년 이하 유기징역에 더불어 최대 약 42억 원 규모의 벌금을 내야할 수도 있다.

    처벌 수위가 높은 미국은 범죄 사실을 보다 세분화해 기술 유출건은 최대 18개월까지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선 최대 405개월(33년 9개월)까지 징역도 가능하다.

    잇딴 반도체 기술 유출 문제로 기업들은 처벌 강화가 우선적이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도 기술 유출 범죄의 양형기준을 높이는 방안에 대해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다고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