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임위, 주2회 집중 논의에도 노·사 견해차 평행선법정처리시한 '2주 앞'… '일괄적용' 유지될 공산 커작년 최저임금 못받은 근로자 276만명… 업종·규모별 편차 커노조회계 공시·노란봉투법 등 노·정 갈등↑… 법정시한 넘길듯
  • ▲ 15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제5차 전원회의에서 사용자위원인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왼쪽)와 근로자위원인 박희은 민주노총 부위원장이 자리하고 있다.ⓒ연합뉴스
    ▲ 15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제5차 전원회의에서 사용자위원인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왼쪽)와 근로자위원인 박희은 민주노총 부위원장이 자리하고 있다.ⓒ연합뉴스
    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매해 주요 의제로 다뤄지는 '업종별 차등적용' 안건이 또 무산될 가능성이 커보인다. 최임위는 지난주 2차례 전원회의를 소집하고 집중적인 논의에 돌입했지만, 노·사 간 견해차가 극심해 아무 소득을 거두지 못했다.

    최임위는 다음 회의에서도 차등적용 여부에 대해 논의를 이어간다는 방침이지만, 불과 2주 앞으로 다가온 법정처리시한으로 인해 논의를 길게 끌고갈 수 없는 처지다. 노·사 간 견해차가 좁혀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만큼 기존의 '일괄적용'에 무게가 실리는 상황이다. 사용자 측은 지급능력 차이를 고려하지 않았다며 크게 반발할 것으로 보인다.

    최저위는 지난 13일과 15일 각각 제4차·제5차 전원회의를 열고 최저임금의 업종별 차등적용에 대한 논의를 이어갔다. 2차례 회의 모두 사용자위원 9명, 노동자위원 7명, 공익위원 9명 등 총 25명이 배석했다.

    차등적용 여부는 매년 최임위의 주요 의제로 다뤄지며 노·사가 충돌해온 사안이다. 경영계는 영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등의 상대적으로 부족한 임금지급 능력을 고려할 때 업종별 차등적용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노동계는 차등적용 자체가 저임금 업종에 낙인을 찍을 우려가 있고 '사회 양극화 해소'라는 최저임금 제도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맞선다.

    노사는 2차례 전원회의에서 이런 주장을 반복했고 견해차를 좁히지 못했다. 

    제4차 회의에서 노동자위원인 정문주 한국노동자조합총연맹(한국노총) 사무처장은 "전문가들이 (차등적용의) 타당성을 찾기 어렵고 저임금 업종의 낙인 효과가 있을 거란 결론을 냈다. 소모적인 논의는 가급적 삼가자"면서 논의 자체에 거부감을 드러냈다. 사용자위원인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전무는 제5차 회의에서 "시장 현실을 외면한 채 업종 구분 없이 일률적으로 (최저임금을) 인상해 온 관행을 이제는 좀 바꾸자"고 호소했다.
  • ▲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전북지부가 14일 오전 전북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저임금 인상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연합뉴스
    ▲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전북지부가 14일 오전 전북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저임금 인상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연합뉴스
    문제는 노동계의 주장과 달리 최저임금 지급 현장에서는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적잖다는 점이다. 경총은 '최저임금 미만율' 통계를 통해 최저임금의 인상 폭과 속도가 빨라 현실에 제대로 안착하지 못한다고 주장해 왔다. 지난 4월 경총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최저임금을 받지 못한 근로자 수는 275만 6000명, 최저임금을 받지 못한 비율을 뜻하는 미만율은 12.7%로 나타났다. 미만율은 2019년(16.5%) 이후로 감소하는 추세지만, 여전히 적잖은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미만율은 업종별·규모별로 극심한 차이를 보인다. 지난해 기준 농림어업(36.6%)과 숙박·음식점업(31.2%) 등의 업종에서는 미만율이 높았다. 이에 비해 전문·과학 및 기술서비스업에서는 2.8%에 불과했다. 규모별로 살펴보면 5인 미만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근로자 375만 명 중 29.6%(110만 9000명)가 최저임금 미만 근로자였다. 반면 300인 이상 사업장의 미만율은 2.3%에 그쳤다. 최저임금 일괄적용 제도가 현실과 괴리가 크다는 반증이다.

    최저임금의 법정처리시한은 이달 29일로 불과 2주 앞으로 다가온 상태다. 최임위는 20일 열릴 에정인 제6차 회의에서 업종별 차등적용 여부에 대해 추가로 논의한다는 태도지만, 노·사 양측에 내년도 최저임금 수준 결정을 위한 최초 제시안도 제출해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최초 제시안에는 양측이 줄곧 주장해온 대로, 노동계는 1만 2000원 인상, 경영계는 9620원 동결 내용이 담길 것으로 점쳐진다.

    최임위 안팎에선 얼마 남지 않은 법정처리시한과 집중 논의에도 의제가 공전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올해도 사실상 차등적용은 물 건너 갈 공산이 크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몇 차례 남지 않은 회의에서 노동계가 기존 입장에서 물러서는 극적 반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만큼 기존 방식대로 일괄적용이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일각에선 최임위가 최초 요구안 제출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 이를 방증한다는 분석이다.

    게다가 노·정 간 갈등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는 점도 최임위 분위기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윤석열 정부는 '노동개혁'을 국정과제로 추진하며 노조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기류다. 이에 노조는 대정부 투쟁에 총력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정부는 지난 15일 노조가 회계결산 결과를 공시하지 않으면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하지 않는 내용의 '노조법·소득세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같은날 한국노총은 입장문을 내고 "개정안의 목적은 '지원'이 아닌 '협박'이며, 조합원의 '알권리 보호'가 아닌 '노조 망신 주기'"라고 정부에 날을 세웠다.

    설상가상 대법원은 15일 대기업이 노조 조합원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조합원의 손해배상책임을 제한하는 판결을 내놨다. 노조의 불법 쟁의행위에 따른 배상책임을 조합원 개인에게 물을 때 신중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는 더불어민주당이 법 개정을 밀어붙이고 대통령 거부권(재의요구원)이 거론되는 일명 '노란봉투법'과 맥을 같이 하는 내용이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민주노총은 성명서를 통해 "판결의 의미를 존중해 국회는 노조법 제2·3조 개정(노란봉투법)에 속도를 내라"고 촉구했다. 이에 국민의힘은 논평을 내고 "이날은 대한민국 사법부가 망한 날로, 역사상 씻을 수 없는 치욕의 날로 기억될 것"이라며 판결에 크게 반발했다. 고용노동부도 "(노란봉투법의) 연대책임을 부인하는 내용과는 명백히 다르다"고 일축했다.

    한편 최임위는 지난해 가까스로 법정처리시한을 지켰다. 올해 최임위가 어느 해보다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기간 내 합의를 마치지 못한다면 2년 만에 다시 법정시한을 어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