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속' 잼버리 사태 불똥 SOC사업으로 번져… 관련 예산만 11兆새만금 신공항, 예타면제에 8077억… 항공업계 "중복투자" 논란文정부, 예타면제 남발 120兆 규모… MB·朴정부 합친 것보다 많아세금낭비 지적에도… 여야, 내년 총선 앞두고 SOC 공약 봇물
  • ▲ 지난 9일 전북 부안군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장의 천막이 철거되고 있다. ⓒ연합뉴스
    ▲ 지난 9일 전북 부안군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장의 천막이 철거되고 있다. ⓒ연합뉴스
    졸속으로 치러진 '2023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대회'는 끝났지만, 후폭풍은 계속되고 있다. 그 많은 예산을 어디에다 썼느냐는 논란부터 경제효과는 제쳐둔 채 지역 숙원 사업이라는 명목으로 중앙정부 예산을 끌어다쓰면서 잼버리가 정치 수단으로 전락해버렸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1일부터 12일까지 진행한 잼버리는 전 세계 158개국 4만3000여 명의 청소년이 참가한 축제로, 지난 2017년 새만금이 개최 지역으로 선정됐다. 이 사업에는 국비 303억 원, 전라북도 예산 419억 원, 스카우트 자부담 399억 원 등 총 1171억 원의 재원이 투입됐다.

    이 중 잼버리 조직위가 870억 원, 전북도가 265억 원, 부안군이 36억 원의 예산을 사용했다. 준비기간도 길었던 데다 예산도 1000억 원이 넘게 투입한 만큼 행사 준비가 충분히 이뤄졌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마주한 현실은 처참했다. 화장실과 샤워실이 부족하다 못해 위생문제가 구설에 오르며 영국과 미국 참가자들이 조기퇴영했다.

    자연스럽게 "그 예산가지고 그동안 무얼 했느냐"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돼 버렸다.

    일각에서는 전북도가 새만금 국제공항 등 새만금 지역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추진을 위해 잼버리를 무리하게 유치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15일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지난 1991년 치러진 강원 고성 잼버리에 들어간 SOC 예산은 26억 원으로 물가 상승에 따른 화폐가치를 고려하면 현재 기준으로 71억 원이 소요됐다.

    새만금 잼버리의 경우 새만금 일대 SOC 사업비로만 11조 원에 달하는 예산이 투입됐다. 잼버리장 진입도로 포장비에 19억5000만 원, 해양 활동장 정비에 6억7000만 원이 들어갔다. 새만금 국제공항에는 8077억 원의 예산이 소요됐으며, 예비타당성 조사(예타) 면제까지 받았다. 이 밖에도 새만금~전주 고속도로 1조9200억 원, 내부동서도로·내부남북도로 7886억 원, 새만금 신항만 3조2000억 원 등의 예산이 투입됐다. 모두 잼버리 행사에 맞춰 공항과 도로 등을 개통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행사가 끝난 지금까지 착공도 못하거나 공사 중인 사업이 대부분이다.
  • ▲ 김관영 전북도지사가 지난 14일 전북도청 브리핑룸에서 열린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파행과 관련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 김관영 전북도지사가 지난 14일 전북도청 브리핑룸에서 열린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파행과 관련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부 시민단체는 새만금 국제공항을 백지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새만금신공항 백지화공동행동'은 지난 11일 새만금 국제공항 건설업체 선정 입찰에 절차상 하자가 있다며 사업 중단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런 논란이 일자 김관영 전북도지사는 14일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잼버리보다 SOC 구축에 혈안이었다는 의혹에 대해 "전북인의 자존심에 심한 상처를 주고, 명예를 실추시키는 행위에 대해서는 더 이상 묵과하지 않겠다"며 "새만금 사업은 잼버리가 유치되기 훨씬 이전부터 이미 국가사업으로 추진해 왔다"고 주장했다.

    대형 SOC 국책사업은 많은 혈세가 투입되기 때문에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지난 1999년 DJ(김대중) 정부에서 예타를 도입한 이유다. 예타는 정부 재정이 투입되는 사업의 경제성을 평가하는 제도다. 총 사업비가 500억 원 이상이면서 국가 예산이 300억 원 넘게 투입되는 사업에 대해 비용 대비 편익 등을 계산해 사업성 여부를 타진한다.

    그러나 그동안 선거철만 되면 표심을 의식한 각종 SOC 사업이 남발됐고 예타 면제 카드를 정략적으로 악용하는 사례도 늘어났다. 특히 문재인 정부 시절 예타 면제를 받은 사업은 149개로 사업비 규모만 120조1000억 원에 이른다. 이는 박근혜 정부 25조 원(94개), 이명박 정부 61조1000억 원(90개)을 합친 것보다도 많은 규모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이라는 지적에도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라는 이유로 대규모 선심성 토목사업을 강행했다. 그동안 경제성이 부족해 사업추진이 좌절됐던 각 지역의 숙원사업을 신청받은 뒤 선심 쓰듯 예타를 면제해버렸다. 이 시기 새만금 국제공항도 예타 면제 대상 사업에 이름을 올렸다.

    새만금 신공항은 전북도가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수요 예측을 뻥튀기했다는 논란이 제기되기도 하는 등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사업이다. 항공업계에선 지금도 지방공항들이 만성 적자에 허덕이는 상황에서 새만금 국제공항까지 건설하면 중복 투자로 제 살 깎아 먹기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공항공사 설명으로는 전국 15개 공항 중 인천·제주·김해·김포공항을 제외한 11개 지방공항은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경북 예천공항은 폐업했고, 전남 무안공항은 연 매출이 20억 원에 불과하지만, 운영비는 이보다 10배나 많은 220억 원이 소요된다.

    이런 상황에서 새만금 국제공항이 제대로 운영될 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예타 면제 남발은 결국 재정 고갈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그 피해는 결국 국민이 떠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14일 강원 원주시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열린 강원 현장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14일 강원 원주시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열린 강원 현장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예타 면제 기준을 더욱 꼼꼼히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하지만 내년 총선을 앞둔 정치권은 여야 할 것 없이 이를 귀담아듣지 않고 있다. 오히려 예타 면제 기준을 사업비 500억 원에서 1000억 원으로 완화하는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상정했다. 이미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위원회를 통과해 전체회의에 안건으로 올라가 있다.

    재정건전성 확보를 위한 재정준칙 법제화 법안이 기재위 소위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과 대조적이다.

    이 와중에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날 강원도에서 현장최고위원회를 열고 SOC 사업을 언급하며 예외없이 예타 면제 레토릭을 구사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강원도는 무엇보다 SOC 사업이 가장 중요한 현안이기도 하고 예타 통과는 말할 것도 없고 때로는 예타의 면제를 통해 정책적 반영을 해야 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은 광주와 대구를 잇는 소위 '달빛고속철도'의 예타 면제를 위한 특별법에도 정쟁없이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별법 발의에는 국민의힘 109명, 더불어민주당 145명, 정의당 1명, 무소속 2명 등이 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