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투자유치 전쟁 중…2014~2021년 美 유턴기업 6839개한국은 총 137개 복귀… 14.4%는 복귀 철회·대기업 단 3곳뿐정부, 취득·재산세 감면 등 당근… 미·중 갈등에 유인 여건도 좋아상반기 외투 실적 역대 최대… 尹 정상외교에 기댄 측면 커전문가 "기업규제 풀어야"… 법인세 부담 낮춘 '자본 리쇼어링' 좋은 예
  • ▲ 미국 텍사스주에 생긴 '삼성 고속도로'.ⓒ연합뉴스
    ▲ 미국 텍사스주에 생긴 '삼성 고속도로'.ⓒ연합뉴스
    미국에 잇따라 한국 기업의 이름을 딴 도로가 생겨나고 있다. 지난 7월 미국 조지아주 잭슨카운티의 커머스시는 SK배터리아메리카(SKBA) 부지 인근에 있는 도로 '스티브 레이놀즈 인더스트리얼 파크웨이' 이름을 'SK 대로'로 바꿨다. SKBA 조지아 공장에서 열린 현판식에는 클라크 힐 커머스 시장이 참석했다.

    앞서 텍사스주 윌리엄슨카운티는 지난해 12월 테일러시에 있는 삼성전자 신공장 부지와 기존 고속도로를 잇는 새 도로 이름을 '삼성 고속도로'로 정했다고 발표했다. 올 초에는 경계현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장(사장)이 현장을 방문했을 때 도로 표지판을 선물해 눈길을 끌었다.

    세계는 한 푼이라도 더 투자를 유치하려고 경쟁하고 있다. 리쇼어링(해외진출 기업의 생산시설 국내 이전)은 물론 외국기업의 생산기지를 국내로 옮겨오게 유도하는 온쇼어링이 본격화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으로 각국 기업의 생산시설 투자를 유도하는 미국이 대표적이다. 앞선 두 사례도 기업 유치에 공을 들이는 현지 주정부의 노력을 잘 보여준다.

    한국경제연구원 등에서 내놓은 자료를 보면 미국의 유턴기업은 지난 2014년 340개에서 2021년 1844개로 5배 이상 늘었다. 누적으로는 총 6839개 미국 기업이 자국으로 돌아갔다. 반면 우리나라는 지난해 24개, 올 상반기 13개 등 해외진출기업복귀법이 제정된 2014년 이후 총 137개 기업이 복귀했을 뿐이다. 2021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실적은 미국의 1.6%에 불과하다.

    문제는 친(親)기업을 표방한 윤석열 정부 들어서도 리쇼어링 실적이 눈에 띄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2015년 2개로 쪼그라들었던 리쇼어링 실적은 2019년(14개)부터 다시 늘기 시작했으나 2020년 23개, 2021년 26개, 지난해 24개 등으로 사실상 정체를 보인다. 기업 활동하기 좋은 여건을 만들겠다던 윤석열 정부의 리쇼어링 실적은 올 상반기까지 37개 기업에 그친다.

    우리나라 리쇼어링 실적을 보면 미흡한 부분이 적잖다. 먼저 복귀기업의 복귀 철회가 눈에 띈다. 산업통상자원부 설명으로는 지금까지 23개 기업이 국내 복귀를 '없던 일'로 했다. 애초 복귀를 약속했던 160개 기업의 14.4%에 해당한다. 이들 복귀 철회 기업이 국내 투자를 약속한 규모는 1970억 원이 넘는다.

    일자리 파급효과와 투자금액이 상대적으로 큰 대기업이 극소수라는 점도 국내 리쇼어링의 한계다. 복귀법 시행 이후 국내로 생산시설을 옮긴 대기업은 단 3곳뿐이다. 전체 복귀기업의 2.2%에 그친다. 반(反)기업 성향의 문재인 정부 5년간 국내 유턴 대기업은 현대모비스가 유일하다. 그나마 친기업을 내세운 윤석열 정부 들어 화학업종, 전기·전자업종 각 1곳이 복귀를 결정해 체면을 살렸다.

    복귀기업의 투자실적이 기대만큼 높지 않다는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현재까지 유턴기업이 밝힌 국내 투자계획은 3조8922억 원 규모다. 이 중 투자가 이뤄져 국내 공장시설이 가동 중인 것은 54개 기업·8400억 원쯤이다. 애초 정부가 밝힌 규모의 21.6% 수준에 그친다. 유턴기업의 39.4%만 투자 약속을 이행한 셈이다.
  •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제17차 비상경제민생회의 겸 반도체 국가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연합뉴스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제17차 비상경제민생회의 겸 반도체 국가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연합뉴스
    다행히 정부가 국가첨단·전략산업 생태계 강화를 외치며 해외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를 장려하고, 미국·중국 간 갈등으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국내 복귀를 타진하는 기업이 늘어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없잖다. 지난달 10일 산업부로부터 국내복귀 지원대상으로 선정된 중소기업 ㈜케이엔제이의 경우 중국 제조시설을 60% 수준으로 줄이는 대신 오는 2026년 상반기까지 본사가 있는 충남 아산의 스마트밸리 일반산업단지에 6000㎡ 규모의 생산시설을 증축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케이엔제이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3D 낸드플래시의 필수 소모품인 CVD-SiC(실리콘카바이드) 포커스링을 공급한다. 국내 투자 규모는 애초 중국 공장에 투자하려던 것의 2배가 됐지만, 정부 보조금과 세금 감면 혜택을 고려할 때 160억 원쯤의 비용절감 효과가 기대된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세법개정안에서 복귀기업에 대한 소득세·법인세 감면 기간을 현행 7년에서 10년으로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행정안전부도 지난달 제2차 지방세발전위원회를 열고 리쇼어링 기업에 대해 취득세 50%, 재산세는 5년간 75%를 각각 감면한다고 밝혔다. 취득세는 지방자치단체 조례에 따라 50%포인트(p)까지 추가 감면이 이뤄지도록 했다. 이 경우 취득세도 전액 감면이 가능하다. 정부는 지원책이 본격 시행되는 내년부터 더 많은 기업이 국내로 유턴할 것으로 기대한다.
  • ▲ 규제 개혁.ⓒ연합뉴스
    ▲ 규제 개혁.ⓒ연합뉴스
    우리나라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FDI)도 수치상으로는 나쁘지 않다. 산업부가 밝힌 올 상반기 FDI 규모는 170억9000만 달러(22조3500억 원)다. 이는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62년 이래 최대 금액이자 분기별로는 지난해 3분기 이후 4분기 연속으로 역대 최대 규모를 경신한 수치다. 다만 여기엔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을 자처한 윤 대통령의 정상외교 성과가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다. 윤 대통령이 해외 순방에서 유치한 31억4000만 달러가 전체 신고금액의 18%를 차지한다.

    '주고받기'가 기본인 정상외교에 기대지 말고 규제 개혁 등 투자환경을 개선해 외투 자금이 자연스럽게 국내로 유입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리쇼어링과 외투 확대는) 몇 가지 인센티브 확대만으로는 역부족"이라며 "법인세 인상 등 세금 이슈, 경영진이 형사법에 쉽게 노출되는 문제, 각종 기업규제가 개선되지 않으면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의 규제 완화가 경제 활성화의 물꼬를 트는 사례는 최근 늘고 있는 자본 리쇼어링만 봐도 알 수 있다. 올 상반기 삼성전자 해외법인(자회사)의 본사 배당액은 21조8457억 원 규모로, 지난해 상반기(1378억 원)의 158배에 달한다. 삼성은 배당금 형태로 들여온 해외법인의 이익잉여금을 국내 반도체 생산시설 증설과 연구·개발(R&D) 투자에 쓸 방침이다.

    현대차그룹도 주요 계열사 해외법인의 올해 본사 배당액을 대폭 늘려 총 7조8000억 원을 국내 전기차 생태계 강화에 쓰기로 했다. LG전자도 올 1분기 인도, 태국 등의 해외법인 배당금 수익 6095억 원을 국내로 들여왔다고 공시했다. 지난해 1분기(1567억 원)의 4배쯤에 해당한다.

    기업의 잇따른 자본 리쇼어링 확대는 법인세와 관련이 깊다. 기존에는 해외 자회사로부터 배당금을 받으면 현지국과 국내 양쪽에서 세금을 뗀 뒤 일부에 대해서만 세액 공제가 이뤄졌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개정된 법인세법에 따라 해외에서 먼저 과세한 배당금에 대해선 금액의 5%만 국내에서 세금을 부과한다.
    이런 대규모 배당금의 국내 유입은 경상수지 개선에도 이바지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경상수지는 44억6000만 달러 적자였으나 여기에 포함되는 배당소득수지는 113억3000만 달러 흑자였다. 배당소득수지 증가가 경상수지 적자 폭을 줄이는 데 일조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