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보사 사태' 등 좌절의 연속대기업, 바이오 주력사업 내세워위험부담 안고도 '글로벌 신약' 도전
  • 일동제약이 지난 5월 구조조정을 통한 경영쇄신에 들어갔다. 임직원 평균 근속연수가 11년 6개월로 업계에서도 안정적인 기업으로 꼽혔던 일동제약이 임직원 20% 이상 감원에 들어간 것이다. 이유는 R&D 투자비용의 지속적인 증가에 따른 적자확대다. 

    일동제약은 전통제약사임에도 주요 파이프라인이 항암, NASH(비알콜성 지방간염), 황반변성, 파킨슨 등으로 바이오신약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사실상 케미칼(합성의약품) 위주의 전통제약사와 바이오기업을 구분짓던 시대는 까마득해진지 오래다. 

    어느새 K바이오는 바이오벤처부터 전통제약사, 대기업까지 빠른 속도로 생태계를 확장했지만 여전히 글로벌 신약은 요원하다. K바이오의 자긍심에 가려진 그림자는 냉혹하다. 

    '인보사 사태'는 K바이오의 민낯이 드러난 대표적 사례다. 

    인보사 사태란 지난 2017년 7월 코오롱생명과학의 골관절염 세포유전자치료제 '인보사'의 주성분이 연골유래세포가 아닌 신장유래세포인 것으로 드러난 사건이다. 의약품의 주성분이 허가 당시와 다른 것으로 판명난 사상 초유의 사태로 바이오업계 전반의 신뢰도에 영향을 미쳤다. 인보사는 2019년 3월 품목허가가 취소된 후 자회사 티슈진이 미국에서 임상을 이어가고 있지만 아직까지 진전은 없다.

    한때 시가총액 2위 기업에 올라서며 바이오신화로 자리매김했던 신라젠의 사례는 어떤가. 신라젠의 '펙사벡'은 간암 신약으로 기대감을 높였지만 2019년 8월 미국 데이터모니터링위원회(DMC)의 임상 중단 권고와 함께 주가가 1만원대로 급락했다. 이후 경영진의 횡령까지 드러나며 상장폐지 위기까지 몰렸다.

    횡령은 차치하더라도 임상중단, 이로 인한 기업가치 하락은 바이오산업의 숙명이나 다름없다. 비단 기업의 잘못이라고만 치부할 수 없는 것이 바이오는 대표적인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산업이다. 막대한 자금과 개발기간, 전문인력이 필요하지만 성공확률은 희박하다. 

    일반적으로 신약개발 과정은 약 10년에서 15년 정도 소요된다. 바이오산업을 단순한 제조업으로 볼 수 없는 이유다. 하나의 신약을 개발하는데만 통산 1조원이 투입된다. 

    냉혹한 실패를 딛고 이제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글로벌 CDMO(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 기업 반열에 오르자 롯데, CJ 등 대기업들이 바이오를 주력사업으로 내세우기 시작했다. 대기업이 움직이자 정부도 함께 나섰다.

    정부는 한국형 보스턴 클러스터 육성에 나서기로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월 미국 국빈방문 때 찾았던 보스턴 클러스터를 언급하며 첨단 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다. 그 중심에는 바이오가 있다. 보스턴은 바이오USA가 개최될 만큼 세계적인 바이오기업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K바이오도 산학연이 어우러지는 클러스터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바이오벤처, 전통제약사가 뿌린 씨앗을 더 일찍 열매를 맺기 위한 플랫폼 개발도 다양화되고 있다. AI(인공지능)를 활용한 신약개발은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의 핵심으로 자리잡았다.

    AI를 활용하는 경우 신약개발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줄이는 동시에 성공률은 높일 수 있다. 통상 전임상시험에 들어가기에 앞서 후보물질을 발굴할 때 평균 5~6년이 소요되지만 빠르고 정확하게 최적의 물질을 제시할 확률이 높아져 5분의 1 수준인 1년으로 단축할 수 있다.

    다만 AI 신약개발은 미국, 유럽 등 바이오 선진국가와 비교하면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뗀 수준이다. 규모의 싸움인 CDMO는 대기업의 자금력이 받쳐줘야 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K바이오의 내일을 더 기대하는 이유는 SK바이오팜, HLB와 같은 기업들이 내고 있는 성과들을 보면서다. 두 회사는 위험부담을 감수하고도 직접 개발을 통한 글로벌 신약의 가능성을 만들어가고 있다. SK바이오팜은 뇌전증 치료제 '세노바메이트'를 신약후보물질 발굴부터 임상 개발, 판매 허가 신청(NDA)까지 전 과정을 독자적으로 진행해 FDA의 승인을 받았다. 아직까지 유일무이한 성과다.

    HLB는 간암 신약 '리보세라닙'에 대한 첫 글로벌 임상을 시작했던 2011년 이후 약 12년 만에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신약허가신청서(NDA)를 제출했다. 미국 허가가 승인된다면 리보세라닙은 국내 바이오기업이 자체적으로 임상과정을 모두 마치고 허가받는 항암 신약이 된다.

    한미약품은 전통제약사도 바이오 신약 개발에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해내기도 했다. 한미약품은 호중구감소증 치료 바이오신약 '롤론티스'의 미국 상업화에 성공했다. 한미약품이 개발한 신약 중 처음이며, 항암 분야 신약으로도 국내 최초 사례다.  

    한국의 바이오 산업이 세계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 내외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3%의 혁신을 글로벌 시장에 선보일 미래가 가까워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