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보조금 개편안 발표, 해상운송 탄소배출계수 유지장거리 수송 국산 전기차 불리, 현지 시설투자 불가피대응시간 부족, EU 전체 자국우선주의 확대 우려
  • ▲ 지난해 프랑스 전기차 보조금을 수령한 주력 차종으로 현대차 코나 일렉트릭과 기아 니로 EV의 모습 ⓒ현대자동차그룹
    ▲ 지난해 프랑스 전기차 보조금을 수령한 주력 차종으로 현대차 코나 일렉트릭과 기아 니로 EV의 모습 ⓒ현대자동차그룹
    프랑스 정부가 중국산 전기차 수입을 제한하기 위해 보조금 정책을 수정하는 가운데 국산 전기차가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프랑스 정부는 지난 20일 전기차 보조금 개편 최종안을 발표했다. 생산부터 운송과정까지 전 과정에서 탄소배출량을 따져 보조금 지급 대상을 선정한다는 골자다.

    프랑스 당국이 게재한 전기차 보조금 개편 시행규칙에 따르면 원재료와 배터리, 조립과 운송 등 6개 부문 탄소배출량을 합산해 보조금 점수를 산정한다. 80점 만점에 60점 이상인 전기차에만 정부 보조금을 지급한다.

    개편안에 차별적 요소로 지적받아온 해상운송 탄소배출 계수가 유지되면서 논란이 됐다. 해상운송을 통해 자국에서 생산한 전기차를 수출하는 경우 보조금 산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권은경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 조사연구실장은 “프랑스와 EU 역내 생산 차량에 대한 우대 조치로 해상운송 마일리지 등 환경계수가 반영돼 해상운송 거리가 먼 동북아 생산 차량의 보조금 수령이 불리해졌다”며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이하 IRA)처럼 역내 생산시설 투자를 강화하려는 취지로 보이며 개편안이 시행되면 수출할 때 불리한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조치를 중국산 전기차의 시장 지배력을 낮추려는 의도로 분석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최근 자국 생산 전기차의 판매 증가율은 줄어드는 반면, 중국 상하이자동차 산하 MG그룹 차종 등 저가형 전기차 점유율이 높아지고 있다. 프랑스 전기차 중 5월 기준 판매량 1897대로 4위에 오른 다치아 스프링은 르노그룹 전기차지만, 중국에서 생산분을 수입하는 형태다.

    개편안은 북미에서 앞서 실시한 IRA와 비교되며 ‘프랑스판 IRA’로 불리고 있다. 미국 IRA에 따르면 본토에서 생산한 배터리와 조립요건을 충족하지 않은 차량을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한 바 있다. 중국과 전기차 패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함과 동시에 자국 우선주의가 반영된 결과다.

    하지만 현대차·기아는 올해 상반기 북미 전기차 시장에서 10위권 모델에 아이오닉 5와 EV6가 포함되면서 우려를 불식시켰다. 리스와 렌트를 활용한 상업용 판매와 라인업 강화 등 판매회복을 위한 노력을 통해 일정부분 극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와 다르게 프랑스의 보조금 정책은 탄소배출량에 기반해 기준을 세웠다. 중국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되지만, 한국과 일본 등 수출을 위해 해상운송을 이용하는 동아시아 국가들에 영향을 주는 상황이다. 개편안대로 시행된다면 프랑스에 수출하는 국산 전기차는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높다.

    주행거리에 기반한 성능, 탑재 기능에 따라 차등을 두는 국산 보조금 산정방식과 달리 탄소배출량을 충족하지 못하면 보조금을 완전히 박탈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아직 개편안이 확정된 단계는 아니며 구체적인 안이 나와봐야 안다”며 “현재로서는 충족하지 못하면 보조금을 받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취지로 이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내 자동차 업계에서는 프랑스 전기차 보조금 개편안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가격경쟁력 약화가 판매량에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되면서 정부도 업계 의견을 수렴해 입장을 전달하고 나선 상황이다. 프랑스를 시작으로 탄소배출량 기준 보조금 정책이 EU로 확대될 가능성도 주시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는 “유럽에 비해 상대적으로 화석연료 에너지 사용 비중이 큰데다 장거리 수송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이 반영돼 국산 전기차는 보조금 산정에 불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해상운송 탄소배출계수는 개편안에서 기존 수치와 비교해 10배 이상 높은 인상폭이 적용됐다는 전언이다.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 시장은 북미와 내수에 이어 현대차그룹의 세번째로 큰 시장이다. 지난해 현대차·기아는 프랑스에 1만6570대 전기차를 판매해 시장점유율 5위를 차지했다. 이 중 1만48대는 수출 물량으로, 68.4%가 보조금 혜택을 받았다.

    보조금 대상 차종은 현대차 코나 일렉트릭과 기아 니로 EV·쏘울 EV가 있으며, 현대차 아이오닉 5와 기아 EV6는 현지 보조금 상한선 4만7000유로(약 6700만원)을 넘어 보조금 대상이 아니다. 보조금 개편안은 내년 1월 1일 시행을 앞두고 있고, 6개월의 유예기간이 적용된다. 2024년 7월부터 역내 생산을 하지 않고서는 보조금을 수령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현대차는 체코와 튀르키예, 기아는 슬로바키아에 생산시설을 갖추고 있다. 앞서 현대차 코나 EV는 체코 현지 생산을 시작했고, 기아는 2025년을 목표로 전동화 생산시설을 마련하고 있다.

    기아 EV 차종은 내년 7월부터 생산이 본격화되는 2025년까지 최소 6개월 간의 공백이 예고된 셈이다. 업계에서는 “내년 하반기부터 실제 타격이 예상되며, 그 구간을 어떻게 넘길수 있느냐에 따라 보조금 미지급에 따른 영향이 판별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정부는 개편안에 대한 업계 의견을 수렴해 지난달 25일 프랑스 정부에 의견서를 제출했다. 의견서에는 해상운송 탄소배출계수 조항 삭제를 요청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조항 삭제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최종안에 한국 정부 의견이 일부 반영됐다는 설명이다.

    해상운송 탄소배출 계수를 포함해 부문별로 계수 산정에 이의를 표명하면, 해당 업체가 이의 제기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는 점에서다. 이의 제기 시 프랑스 정부가 2개월 내 검토하고 결정하는 내용도 반영됐다. 산업부는 이번 최종안을 놓고 세부 내용과 한국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프랑스 측과 실무·고위급 협의를 이어갈 방침이다.

    프랑스 전기차 보조금 개편안에 대해 전문가들은 무역협정에 어긋날뿐더러 탄소배출량 산정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을 들어 문제가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탄소배출량 기준은 전 과정 평가 자체가 추상적이며 검증하기 쉽지 않다는 점, 한-EU FTA 최혜국 대우에 위배될 수 있다는 점에서 법적으로 취약한 부분이 있다”며 “다만 프랑스가 발의한 법 시행 경과에 따라 다른 EU 국가들에 영향을 주며 자국 우선주의가 확산할 수 있다는 건 우려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한편, 프랑스 정부는 보조금 기준에 적합한 것으로 판단되는 차종 명단을 12월 중순에 공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