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처 "올 실질부가가치 -0.5%"… 향후 5년간 증가율도 -0.3%p 전망세계 경쟁력지수도 3→4위 하락 후 답보… 수출 부진·외투 감소 등 악재공급망 재편 등 불확실성 확대… "리쇼어링 인센티브·반도체 신시장 경쟁우위 관건"
  • ▲ 산업생산.ⓒ연합뉴스
    ▲ 산업생산.ⓒ연합뉴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우리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했던 제조업이 흔들리고 있다. 글로벌 경기둔화와 대국들의 패권 경쟁 등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져가는 가운데 다시 한번 우리 경제의 불씨가 돼야 할 제조업의 실질부가가치가 하락할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등 전망이 어둡다.

    지난 5일 국회 예산정책처는 '2024년 중기 경제전망' 보고서를 통해 올해 우리 제조업 실질부가가치가 전년(1.5%) 대비 0.5% 역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상반기에 수출이 큰 폭으로 감소함에 따라 2.0% 감소하고, 하반기에 수출이 차츰 개선되며 1.0% 증가하겠으나 연간으로 볼 때 마이너스(-) 성장이 불가피하다고 예측했다. 내년도에는 2.2% 성장하지만, 고물가로 인한 세계경기 침체와 대(對)중국 수출 회복 지연 등 하방요인이 산재해 녹록잖을 것으로 내다봤다.

    예정처는 올해 포함 앞으로 5년간(2023~2027년) 제조업의 부가가치는 지난 5년(2018~2022년)에 비해 둔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5년간 제조업의 부가가치는 연평균 2.3% 증가했다. 앞으로 5년간은 이보다 0.3%포인트(p) 낮은 2.0%의 증가율을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저성장 요인으로는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갈수록 확대하는 점을 꼽았다.

    제조업의 수출 부진은 지난해부터 지속하고 있다. 특히 제조업 최대 수출 품목인 반도체의 하락세가 거세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올해 3분기(7~9월) 반도체 평균 수출액은 86억 달러로 집계됐다. 지난해 3분기(116억 달러)보다 30억 달러(25.8%) 감소했다. 반도체 평균 수출은 매 분기 하락 곡선을 그렸다. 지난해 3분기 116억 달러에서 4분기(10~12월) 89억 달러, 올 1분기(1~3월) 69억 달러까지 연이어 줄어들었다.

    반도체 수출은 올 2분기(4~6월)와 3분기를 거치며 소폭 반등했다. 2분기 평균 수출액은 75억 달러로 회복했고, 3분기 들어 86억 달러로 2개 분기만에 다시 80억 달러대로 진입했다. 1분기에 저점을 찍은 후 회복 국면에 들어섰다는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아직 낙관할 순 없는 상황이다. 반도체 수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메모리 반도체의 가격이 지속 하락하고 있어 수출액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9월 기준 D램 가격은 지난해 2.85달러에서 올해 1.30달러, 낸드 가격은 4.30달러에서 3.82달러로 각각 54%와 11% 떨어졌다.
  • ▲ 반도체 수출액과 메모리 반도체 공급초과율.ⓒ산업통상자원부
    ▲ 반도체 수출액과 메모리 반도체 공급초과율.ⓒ산업통상자원부
    제조업에 대한 외국인투자도 크게 줄었다. 산업부의 '외국인직접투자 동향'을 보면 2018년 외국인직접투자는 신고금액 기준 100억5000만 달러로 집계됐다. 외국인직접투자는 외국인이 우리 기업의 경영에 참여하거나 지속적인 경제 관계를 맺기 위해 기업의 주식·지분을 취득하는 것을 말한다. 외국인직접투자 신고금액은 2018년 100억5000만 달러에서 △2019년 82억2000만 달러 △2020년 59억7000만 달러 △2021년 50억 달러 등으로 매해 하락했다. 2018년과 2021년을 비교하면 절반 수준으로 크게 줄었다. 코로나19 사태도 있었지만, 문재인 정부의 반기업·반시장 정책도 한몫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외국인직접투자는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지난해에 124억8000만 달러로 반등했다. 다만 이는 윤 대통령이 순방외교를 통해 대규모 투자 유치를 이끌어내면서 금액이 늘어난 부분이 적잖다. 투자 신고건수는 여전히 저조한 실적을 유지 중이다. 지난해 제조업 외국인직접투자 신고건수는 402건으로 2018년(521건)의 77% 수준에 머물렀다.

    세계 시장에서의 우리 제조업 위상도 추락한 상황이다. 유엔산업개발기구(UNIDO)가 발표한 한국의 제조업경쟁력지수(CIP)는 2021년 기준 4위로, 2020년 평가에서 제자리걸음했다. CIP는 세계 국가의 총체적인 제조업 경쟁력을 보여주는 지표로 UNIDO가 2년마다 발표한다. 한국은 2018년 발표 당시 3위를 기록했지만, 아일랜드에 밀려 4위로 밀려났다. 

    한국의 CIP는 1990년 17위를 기록한 이후 매해 단계적으로 상승했다. 1994년 13위에서 2002년 11위로 올라섰고, 2006년에는 5위를 기록하며 한 자릿수 등수로 진입했다. 2018년에는 미국(4위)과 일본(5위)를 제치고 세계 3위로 올라섰다. 역대 부동의 1위는 독일이 차지했다. 한국은 3위를 차지한지 2년만에 등수가 밀리며 뒷걸음질 쳤다.

    제조업은 코로나19 펜데믹으로 인한 세계경제의 위기 속에서 한국 경제를 성공적으로 방어한 바 있다. 산업연구원(KIET) 설명으로는 2020년 펜데믹 당시 세계경제 성장률은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인 -3.3%를 기록했지만, 한국의 성장률은 -1.0%로 상대적으로 낮은 하락 폭을 보였다.

    산업연구원은 이런 방어력에 대해 반도체 등 첨단 제조업의 높은 경쟁력을 바탕으로 디지털·비대면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수출이 빠르게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연구원의 관련 보고서를 보면 한국은 세계 주요 28개국 중에서 제조업의 국내총생산(GDP) 비중이 두 번째로 높았다. 이를 동력 삼아 한국은 펜데믹 이전(2019년)에 비해 2020년 성장률 감소 폭이 28개국 중 네 번째로 낮았다. 실업률 증가 폭도 여섯 번째에 그쳤다. 미국·독일·일본 등 주요 7개국(G7)과 비교하면 한국의 성장률 감소 폭과 실업률 증가 폭은 각각 G7 평균치의 39%, 15% 수준이었다.
  • ▲ 미중 갈등.ⓒ연합뉴스
    ▲ 미중 갈등.ⓒ연합뉴스
    문제는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지속해서 확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중 간 패권 경쟁과 중국의 부동산 위기, 주요 산유국의 감산 기조에 따른 원자재 가격과 국제유가 불안 등 위기요인이 산재해 있다. 이에 세계 각국은 자국우선주의 무역과 새로운 공급망 확보에 주력하는 추세다. 통상 전문가들은 세계 국가들이 경제 불확실성에 대비해 무역과 국가 안보를 연계하는 추세가 심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무역은 자국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고, 공급망은 경쟁국을 배제한 채 우호국 간 동맹을 중심으로 재편하는 식이다.

    이런 세계적인 하방요인들이 거셀수록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제조업의 생산은 제약적일 수밖에 없는 처지다. 올 3분기 들어 침체했던 반도체 수출 등의 지표가 살아나는 것은 희망적이지만, 각종 하방요인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우세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세계적인 공급망 재편 흐름에 따라 제조업의 국내 생산보다 해외 생산이 갈수록 더 늘어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세계 무역의 자국우선주의 기조에 맞춰 한국 역시 피해를 줄이기 위한 방어태세를 갖춰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수동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주요국의 경우 자국 기업에 막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면서 (제조업 생산기반을) 본국으로 불러들이려 하고 있다"면서 "한국은 그런 정책들에 있어 그동안 미흡했던 부분이 많다. 무역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우리도 앞으로는 우리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를 강화하는 등 비슷한 기조로 나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제조업의 부진한 현황에 대해서는 반도체의 회복이 위기 극복을 위한 관건이며, 반도체 시장을 더 확대하기 위한 전략적인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은미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10년여 동안 고도화를 이뤄온 반도체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더욱 회복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앞으로 세계 각국들과의 치열해진 경쟁을 뚫고 새 시장 개발에 성공하는 것"이라면서 "우리 정부와 기업이 중국·아세안 등의 추격을 제치고 시장 개발에 얼마나 빨리 성과를 내는지에 반도체의 실적이 달려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