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대출 '조이기' 본격화변동금리 싸지자 '스트레스 DSR' 예고"정책 돌려막기 이제 그만"
  • [편집자주] 은행은 친절하지 않습니다. 활짝 웃는 광고 모델이 창구 곳곳에 붙어있지만, 통장에 찍히는 숫자는 칼 같습니다. 은행은 꼼꼼하지 않습니다. 깨알같이 적힌 약관에 숨겨진 진짜 의미를 설명해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은행 문턱은 언제나 높습니다. 그러나 얼마든지 낮출 수 있습니다. 친절하고 꼼꼼하게 지금 은행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전해드리겠습니다.

    가계대출 증가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특히 주택담보대출이 쑥쑥 늘고 있습니다. 부동산 경기 연착륙을 위해 대출에 비교적 완화적이었던 금융당국이 긴장할 정도입니다.

    올들어 은행권 주담대는 35조원 늘었습니다. 작년 같은 기간 증가분 14조7000억원을 두 배 이상 상회하는 수준입니다. 현재 가계 주담대 잔액은 833조8547억원인데요. 이런 식으로 가다간 이번 정부가 끝나기 전에 주담대 1000조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그래서 당국이 칼을 빼들었습니다. 불필요한 대출을 내지 말라는게 기본 취집니다. 가계부채 실태를 낱낱이 들여다보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매주 금요일마다 5대 은행 담당자들을 불러 회의를 열고, 필요하다면 추가 규제도 내놓을 수 있다며 으름장도 놨죠.

    사실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증가를 언급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달 초에도 50년 만기 주담대 같은 꼼수로 가계부채를 더 이상 늘리지 말라고 경고했었죠. 그런데 지난달 50년 만기 주담대는 4조2000억원이나 팔려나갔습니다. 정부가 틀어막으려 하자 막차를 타려는 수요가 오히려 몰린 것입니다.

    말빨이 잘 안먹히는 걸 깨달은 당국은 이번에는 원론적인 방법을 들고 왔습니다. '대출금리를 올려라'죠. 대출금리가 오르면 은행들의 이자수익은 늘어날텐데요. 은행 이자마진을 잡겠다는 정권 초 정책방향과는 역행하는 아이러니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그만큼 주담대 증가세가 심상치 않거든요.

    은행들은 표정관리를 하면서도 속속 대출금리를 올리고 있습니다. 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은 이미 올렸고, 신한은행과 하나은행도 곧 올릴 겁니다. 현재 5대 시중은행의 고정형(혼합) 주담대 금리는 연 4.428~7.09% 인데요. 상당수 차주가 적용받는 금리 하단은 당분간 더 오를 가능성이 큽니다.
  • ▲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11일 국회에서 열린 금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이종현 사진기자
    ▲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11일 국회에서 열린 금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이종현 사진기자
    가을 이사철을 맞아 집을 알아보던 예비 차주들에게는 날벼락 같은 소식인데요. 고민은 이 뿐만이 아닙니다. 은행이 갑자기 금리를 올리면서 고정금리와 변동금리가 뒤죽박죽 돼 버린 겁니다. 가뜩이나 금리가 올라 고민이 많은데 고정과 변동금리를 선택해야 하는 고민까지 더해진거죠.

    그동안은 대체로 고정금리 상품을 선택하는게 유리했습니다. 금리가 언제까지 오를지 알 수 없는데다 금융당국이 고정금리를 싸게 팔라고 압박했거든요. 금융 불확실성이 커지더라도 가계 건전성은 유지하기 위한 방안입니다. 미국의 경우 대부분 주택 모기지론이 고정금리 상품으로 팔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 주담대 변동금리 비중은 59%로 고정금리(41%)보다 여전히 높습니다.

    그런데 당국의 스텝이 꼬이면서 변동금리가 더 싼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신한은행의 경우 신규코픽스를 적용하는 주담대 변동금리는 연 4.52~5.83%로 5년 고정금리 상품(연 4.92~6.22%)보다 상하단이 낮습니다. 국민은행은 변동과 고정 상품 금리가 연 4.44~5.84% 똑같습니다. 하나·우리은행은 아직 고정금리 상품이 더 싼 편이지만, 한 푼이라도 이자를 아끼려는 차주에게 변동금리 상품이 대안으로 떠오른 건 분명해 보입니다.

    금융당국도 이런 낌새를 눈치채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 연말까지 변동금리 상품에는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을 적용하겠다고 예고했습니다. 스트레스 DSR을 적용하면 같은 금리로 대출을 받더라도 1%p 가량의 금리가산이 적용돼 총대출금액이 줄어들게 됩니다.

    문제는 이런 천편일률적인 처방이 시장만 자극할 수 있다는 겁니다. 50년 주담대를 옥죄니 대출수요가 오히려 몰렸던 것처럼요. 사실 스트레스 DSR은 지난 2021년부터 논의됐던 제도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도입이 미뤄진 재활용 성격이 짙습니다. 문제해결을 위한 근본적 처방은 아니라는 얘기죠.

    최근 기자가 만난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권 초 관치는 없다는 외침이 최근에는 많이 퇴색된 느낌"이라고 했습니다. "금융정책이 자꾸 왔다갔다 한다"는 하소연도 하더군요. 오락가락 하는 정책은 금융혼란을 가중시키고 소비자 피해만 키울 수 있습니다. 금융당국의 소신있는 정책발굴에 기대를 걸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