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환경 불확실성 증대 및 시장 오해에 합병 철회키로”하이텍 주가 하락에 지주비율 낮췄지만 근본적 해결 못해오너일가 지배력 현상유지 그쳐… 경영권 분쟁 확전 불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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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B그룹이 DB메탈과 DB Inc.의 합병을 두 달 만에 철회키로 하면서 배경에 시선이 쏠린다. 다만 양사 합병이 무산되면서 지주회사 전환문제는 다시금 원점으로 돌아가게 됐다. 

    26일 재계에 따르면 DB그룹의 지주사격인 DB Inc.는 최근 이사회를 열어 DB메탈과의 합병을 철회하기로 결정했다. DB메탈은 고품질 페로망간과 실리콘망간을 취급하는 DB그룹 계열사로 합금철 분야 국내 1위, 정련합금철 분야 세계 2위의 합금철 전문 기업이다. 

    DB Inc.는 “양사의 사업역량과 자원을 결합해 시너지를 높이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하기 위해 합병을 추진했으나 경제환경의 불확실성 증대, 합병 목적에 대한 시장의 오해와 일부 주주들의 우려 등을 감안해 합병을 철회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양사는 합병계약을 해제하고 우회상장 예비 심사 등 향후 예정된 모든 합병에 대한 사항을 취소한다는 방침이다. 

    DB메탈과 DB Inc.의 합병을 결정한 지 2개월 여 만이다. 지난 8월 17일 DB Inc.는 이사회를 열어 DB메탈을 흡수합병하기로 결의한 바 있다. 양사가 보유한 해외 네트워크를 결합, IT·무역·합금철·건설·브랜드 등 5개 사업 영역을 갖춘 기업으로 새롭게 출발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당시 DB 측은 “시너지효과를 통한 경쟁력 강화 및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병의 목적을 설명했다. 이어 “탄소중립·녹색성장 분야의 연구개발과 투자를 통해 새로운 사업기회의 발굴 등 성장 동력을 확보해 지속성장 가능한 비즈니스 환경을 구축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해당 결정이 알려지자마자 시장에서는 공정거래법상 지주사 강제전환을 회피하려는 것 아니냔 의구심이 제기됐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총자산이 5000억원을 넘고, 자회사의 지분 가치가 전체 자산의 50% 이상인 기업은 지주사로 강제 전환된다. 이때 지주사는 상장 자회사 지분의 30% 이상을 의무적으로 보유해야 한다.

    당시 DB Inc.는 시가총액이 2조원 넘는 자회사인 DB하이텍 주가가 오름세를 보이면서 지주사 강제 전환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DB가 보유한 DB하이텍 지분은 12.42%에 불과한데, 지주사로 강제 전환될 경우 보유 지분 30% 선을 맞추기 위해선 수천억원대 추가 자금이 필요해진 것. 

    이에 따라 DB Inc.가 DB메탈을 흡수합병, 총자산을 늘리는 방식으로 자회사 지분 가치 비율을 낮추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합병으로 DB메탈의 5000억원 규모의 자산을 흡수하면 자회사의 지분 가치 비율을 더 낮출 수 있어 지주회사로 강제 변환될 확률이 낮아진다.

    지난 16일 국정감사에서도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문덕식 DB Inc. 대표이사를 증인으로 불러 DB Inc.가 자회사 주식가액의 합계액을 줄이고 모회사의 자산총액을 늘리는 방법으로 지주회사 전환 요건을 회피한 것 아니냐고 지적하기도 했다. 

    합병이 없었던 일이 되면서 DB Inc.의 지주사 강제 전환문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됐다. 전날 종가 기준 DB하이텍의 보통주는 주당 5만1700원이다. 반도체 경기가 둔화하면서 시장도 영향을 받은 탓이다. 

    이에 따라 지주비율이 낮아지면서 지주사 전환 의무가 사라졌지만 주식가가 상승하는 경우 언제든 다시 동일한 숙제를 안게 될 가능성이 있다. 늘 회사 자산규모와 자회사 지분가치를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또한 김남호 회장 등 오너일가 지배력이 현상유지에 그치면서 KCGI 등과의 경영권 분쟁이 지속될 불씨를 남기게 됐다. 

    DB Inc.는 최대주주 김남호 회장을 필두로 김준기 창업주·김주원 부회장 등 오너 일가와 특수관계인 11명이 함께 지배한다. 구체적으로 보면 김 회장(16.83%)과 김 창업주(15.91%), 김 부회장(9.87%)의 지분율 합계가 42.61%에 달한다. 이 가운데 김 회장만이 피합병법인이었던 DB메탈의 지분을 가진 유일하게 보유하고 있었다. 만약 합병이 성사됐다면 기존 DB메탈 주식이 DB아이엔씨 신주로 바뀌며 김 회장 지분율이 소폭 늘어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다. 

    아울러 DB메탈의 주주였던 DB하이텍, DB인베스트, DB스탁인베스트 등은 물론 계열회사 임원들이 DB Inc.씨 대주주로 이름을 올리게 되면서 DB그룹의 DB Inc. 지배력을 강화하는 효과도 발생할 것으로 예상됐다. 

    업계 관계자는 “합병시 기업결합 수리가 필요하고, 해당 과정에서 시세조종에 대한 조사 요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합병이)무산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DB메탈이 수백억원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과 국내외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시황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점 등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