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대규모 조사했지만 내년엔 '글쎄' 국가 예방접종 효과판별 위한 근거… 국가감시체계로 편입신종 감염병 창궐에 앞서 조사체계 형성 잊힌 '디프테리아' 국내 유입시 위험성, 심층조사 필수
  • ▲ 천병철 차기 한국역학회장(고대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고대의료원
    ▲ 천병철 차기 한국역학회장(고대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고대의료원
    "견고한 혈청역학조사가 저변에 깔려야만 감염병 대응이 가능해진다. 각종 백신의 효과성을 검증할 수 있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그 중요성이 입증됐는데도 다시 연구자만의 몫으로, 제도권 밖으로 밀려나는 경향이 관측돼 우려된다." 

    2일 본보와 만난 천병철 차기 한국역학회장(고대의대 예방의학교실)의 고민이 깊어졌다. 전임 김동현 회장(한림의대)에 이어 현 지선하 회장(연대 보건대학원)까지 혈청역학조사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오는 2025년부터 그가 본격적으로 제도권 진입의 숙제를 풀어야 하는데 상황이 녹록지 않다.

    천 차기 회장은 "코로나19 유행 초기에 역학회 차원서 혈청역학조사 계획서를 방역당국에 제출했지만 차일피일 미루다 늦게 시행됐었다. 다른 나라들은 코로나19 유행 중 항체 양성률이 어떻게 바뀌는지 확인이 가능했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선진국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주기적으로 혈청역학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그 근거를 쌓아 활용한다. 과학적 접근을 위한 심층적 분석이 감염병 대응의 기본이라는 것을 명확히 인식한 것이다. 우리는 내년에 이 조사를 시행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했다. 

    혈청역학조사는 신종 감염병 발생과 동시에 숨겨진 무증상 감염자 파악을 위해 필요하고 또 백신 접종 이후 얼마나 항체가 형성됐는지를 확인하는 근거 등으로 작용한다. 국내에서는 작년 9월 말 "국민 97%가 항체를 가졌다"는 늦은 결론만 도출했다. 

    보통 겨울에서 초봄까지 유행하는 인플루엔자(독감) 유행이 연중 내내 지속되는 상황이라 예방접종의 효율성을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혈청을 분석하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다. 아직 국내에선 대규모 조사가 시행되지 않고 있다. 

    천 차기 회장은 "비단 코로나19뿐 아니라 예방접종을 시행하는 모든 감염병에 조사가 시작돼야 한다. 정부는 엄청난 예산을 들여 국가예방접종(NIP)을 시행 중인데도 이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거나 모니터링할 체계가 없다. 혈청역학조사가 국가감시체계로 편입돼 대응해야 할 절체절명의 시기다"라고 강조했다. 

    ◆ 잊힌 감염병 '디프테리아' 점검 필요한 시기 

    다양한 감염병 중 그가 유독 관심을 보이고 있는 질환은 '디프테리아'다. 디프테리아는 호흡기 점막이 약한 어린이들에게 주로 발생하는 급성 감염병으로 사람 간 전파가 가능하고 감염자의 비말을 통해 호흡기로 감염되는 경우가 많다.

    디프테리아균에 감염되면 코와 인후, 피부 등에 염증이 나타나며 혈류를 통해 독소가 퍼지면 장기와 신경계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치사율이 5∼10%에 이를 정도다.

    디프테리아는 에볼라 등과 같은 1급 감염병으로 분류된다. 국내에서는 과거형 질병으로 잊힌 상태이지만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와 아프리카 국가에서 유행이 퍼지고 있어 국내 유입에 대한 우려가 존재한다. 

    영유아 기초예방접종에 4가, 5가 DTP(디프테리아·파상풍·백일해) 혼합백신이 국가접종에 포함된 상태지만 얼마나 항체가 존재하는지 파악이 불가능하다. 시간이 흐르면 백신으로 얻은 면역이 떨어지는데 이에 대한 견고한 대책이 결여된 실정이다. 

    천 차기 회장은 "만약 디프테리아가 국내에 유입된다면 항체 확보율에 근거가 없어 대응이 어려워질 것"이라며 "사전에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혈청역학조사의 기반이 만들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 램피스킨의 시사점… 조류 인플루엔자의 위험성 

    혈청역학조사가 체계적으로 시행돼야 하는 이유는 앞으로 또 창궐할 신종 감염병에 한발 빠른 대응을 하기 위해서다.

    천 차기 회장은 "현재 가장 우려되는 신종감염병은 조류 인플루엔자다. H5N1, H7N9 등 인체감염 사례가 지속되며 바이러스의 유전적 변이가 빠르게 진행되는 경향이 있어 코로나19 이후 팬데믹을 만들 것으로 관측된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도 조류 인플루엔자는 발생 중이며 만약 사람간 전파가 가능해지는 변이가 나타나면 문제는 심각해질 것"이라며 "이를 대응하기 위한 조사체계를 미리 형성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강조했다. 

    이 밖에 '니파바이러스'도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박쥐에서 유래한 질환이지만 확산이 재발이 반복되고 있다. 

    그는 "아프리카 풍토병에서 중동과 유럽으로, 2020년 이후 아시아권으로 확산해 올해 국내에서도 발생한 럼피스킨은 당장 인체감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라면서도 "인수공통 감염병의 확산은 추후 어떤 변이가 나타날지 모른다는 점이 우려된다"고 짚었다. 

    코로나19 대비 더 심각한 신종 감염병 발생이라는 두려움이 존재하는 시기다. 결국 백신, 치료제 개발에 앞서 혈청역학조사의 기반이 형성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라는 진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