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매 완화에도 '실거주의무' 폐지 안 돼 '반쪽짜리 대책' 그쳐실거주의무 유지 따라 매매·전세 모두 난항…수분양자 '혼란'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완화안도 답보…시장 공급 확대 저해조합원들 부담에 정비사업 공급 멈출 수도…서울시장도 호소"시장 혼란 줄이고, 정책 효과 보려면 총선 이전에 처리해야"
  • ▲ 서울 목동4단지를 비롯한 목동신시가지 아파트 전경. 230528 ⓒ연합뉴스
    ▲ 서울 목동4단지를 비롯한 목동신시가지 아파트 전경. 230528 ⓒ연합뉴스
    정부가 '부동산시장의 정상화'를 위해 추진해온 실거주의무 폐지, 재건축초과이익환수법 개정 등 부동산 민생법안이 수개월째 표류하면서 시장의 혼란을 가중하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사태, 서울양평고속도로 논란에 이어 이번에는 '메가 서울'에 묻혀 민생법안이 또다시 밀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제기된다.

    법안 통과의 첫 관문인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가 이달 중순부터 순차적으로 세 차례 예정됐다. 이번에 소위 문턱을 넘으면 연내 최종 법안 통과가 가능하다. 하지만 처리가 불발되면 이후 총선 정국 돌입으로 이번 국회 임기나 통과가 사실상 무산돼 법안이 자동 폐기된다.

    정부를 믿고 기존 집 전세계약을 연장했던 사람들은 입주시점이 다 되도록 실거주의무가 안 없어지면서 전세계약을 중도에 해지해야 할 처지가 됐다. 새집의 전세금으로 아파트 분양대금을 치르려던 사람들도 자금조달에 비상이 걸렸다.

    5일 직방에 따르면 서울에서 이달부터 내년 6월까지 전매제한이 해제되는 단지는 모두 12곳에 달한다.

    가장 먼저 중랑구 중화동 '리버센 SK뷰 롯데캐슬(1055가구)'을 시작으로 12월 △성북구 장위동 '장위 자이 레디언트(2840가구)' △강동구 둔촌동 '올림픽파크 포레온(1만2032가구)' △강동구 길동 '강동 헤리티지 자이(1299가구)' 등이 전매제한이 풀린다. 지난해 말 분양한 단지가 수혜 대상이다.

    앞서 정부는 4월 '주택법 시행령 개정안'을 통해 아파트 분양권 전매제한을 완화하면서 최대 10년에 달했던 수도권 전매제한은 공공택지·규제지역 3년, 과밀억제권역 1년, 그 외 지역은 6개월로 완화했다. 비수도권은 공공택지·규제지역 1년, 광역 도시지역은 6개월로 완화했고, 그 외 지역은 폐지됐다.

    하지만 전매제한과 패키지 법안인 실거주의무 폐지가 지지부진하면서 사실상 무용지물이 됐다. 수도권 분양가상한제 주택과 공공재개발 일반분양주택에 2~5년 적용되는 실거주의무 기간을 없애는 게 골자다. 하지만 관련 내용이 담긴 주택법 일부개정 법률안이 2월 발의된 이후 9개월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야당의 반대 때문이다. 1월 정부가 폐지 방침을 밝혔을 때만 하더라도 더불어민주당은 공식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상반기 '전세사기'가 잇따르자 실거주의무가 사라지면 갭투자가 성행하면서 전세사기를 부추길 수 있다는 논리로 반대하고 있다.

    전매제한 해제로 아파트를 팔 수는 있어도 실거주의무 기간을 못 채우면 현행법 위반이다. 실거주의무를 위반하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분양가 수준으로 아파트를 되팔아야 하고,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도 처해진다.

    특히 정부의 전방위적 규제 완화 수혜단지로 꼽히는 12월 전매제한 단지들은 사실상 매매도 안 되고 전세를 줄 수도 없는 상황이다. '올림픽파크 포레온'과 '장위 자이'의 경우 실거주의무 기간이 2년, '강동 자이'는 3년이다.

    여기에 내년 상반기에 전매제한이 해제되는 단지는 모두 7곳에 달한다.

    △강동구 고덕동 '고덕강일 제일풍경채(780가구)' △영등포구 양평동1가 '영등포 자이 디그니티(707가구)' △은평구 역촌동 '센트레빌 아스테리움 시그니처(752가구)' △강북구 미아동 '엘리프 미아역 1단지(78가구)' △강북구 미아동 '엘리프 미아역 2단지(182가구)' △은평구 신사동 '새절역 두산위브 트레지움(424가구)' △서대문구 남가좌동 'DMC 가재울 아이파크(283가구)' 등이다.

    이들 단지 역시 전매제한이 풀리지만, 실거주의무가 폐지되지 않으면 매매는 물론, 전세로 돌릴 수도 없다.

    특히나 청약당첨자들은 큰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당장 입주가 여의치 않으면 기존 전셋집 만기가 도래하면 갱신여부를 결정할 수가 없다.

    자금조달도 문제다. 자금력이 부족한 당첨자들은 입주할 아파트를 전세로 주고, 그 전세금으로 잔금을 치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거주를 하게 되면 은행대출 등 자금계획을 다시 세워야 한다.

    '올림픽파크 포레온' 입주 예정자 A(41)씨는 "기존 전셋집을 중도 해지하려면 새로운 세입자를 직접 구해야 하고, 집주인의 중개수수료도 부담해야 한다"며 "그나마 구해지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보증금도 못 돌려받고 나와야 할 판"이라고 토로했다.
  • ▲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토법안심사소위원회. 230522 ⓒ연합뉴스
    ▲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토법안심사소위원회. 230522 ⓒ연합뉴스
    실거주의무와 함께 재건축초과이익환수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재초환법)도 시장 공급 확대를 저해하는 규제로 꼽힌다.

    재초환은 재건축사업으로 상승한 집값 등 개발이익의 일부를 정부가 환수하는 제도다. 환수한 개발이익은 서민주거복지에 활용된다. 재건축 종료시점의 집값에서 개발비용과 평균 집값 상승분을 뺀 초과이익이 조합원 1인당 3000만원이 넘을 경우 최대 50%까지 부담해야 한다.

    정부 여당안은 재건축부담금을 줄이기 위해 부담금이 면제되는 초과이익 기준을 조합원 1인당 3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상향하고, 부과율 구간도 2000만원에서 7000만원 단위로 확대하는 게 핵심이다. 장기보유 1주택자의 경우 주택 준공시점부터 역산해 보유기간에 따라 부담금을 추가 감면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하지만 야당은 면제기준과 부과율 구간 금액을 정부 안보다 낮춰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후 국토교통부가 면제금액 1억원은 그대로 유지하되 부담금 부과구간을 부과요율에 따라 7000만원부터 4000만원까지 차등 적용하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여전히 답보 상태다.

    재초환도 통과가 시급하다. 분담금으로 재건축 조합들이 정비사업을 미루면 공급에 차질을 빚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인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8월 말 기준 서울에서 재건축부담금 예정액이 통보된 단지는 모두 40곳으로, 전체 예정 부담금은 2조5811억원에 이른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 28개 단지, 1조5022억원이던 것과 비교하면 1년여 만에 12개 단지, 1조800억원가량 늘어난 셈이다.

    용산구 한 아파트의 경우 조합원 1인당 부담금 예정액이 7억77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으며 성동구의 한 아파트도 4억6300만원에 달했다.

    시장에서는 공사비 급증에 이어 재건축 분담금, 재초환까지 부담이 가중되면서 정비사업 추진이 어려워지는 곳도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서울시도 나서서 재초환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앞서 국토위 국정감사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은 재초환법 개정을 호소하면서 "서울시민들의 부담이 줄길 바란다. 법 개정을 위해 시가 적극 요청한 바 있고, 현재 상임위에서 논의 중인 것으로 아는데 (법 개정을 위해) 도와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밖에 1기신도시 등이 재정비할 때 용적률 혜택 등을 주는 노후계획도시특별법안도 계류돼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11월 중순~12월 초 소위가 마지막 기회인 만큼 사활을 걸어야 한다"며 "국토위 소속 여야 의원들이 합의로 법안을 처리하는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법안 통과의 키를 쥐고 잇는 야당 의원들은 일단 소위에서 더 논의해보겠다는 입장이다. 한 야당 의원실 관계자는 "재초환 완화는 정부에서도 수정안을 내놓았고, 많이 합의돼서 통과 가능성도 있다"면서도 "다만 실거주의무 폐지는 여전히 이견이 있고 쟁점이 있어 두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소위에서 처리되지 못하면 연말까지 사실상 상임위에서 법안이 논의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더군다나 김포 서울 편입 제안으로 쏘아 올린 '메가 서울' 논란이 내년 총선과 정치권 최대 이슈로 떠오르면서 부동산 민생법안이 묻히고 있다는 지적이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시장 혼란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국회에서 개정 법안이 다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선거라는 특수성을 고려하면 민생법안이 시급히 처리되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선거 이슈에 민생법안이 묻히기 전에 규제 완화를 통한 시장정상화를 멈춤 없이 지속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지해 부동산R114 리서치팀장은 "연말까지 해결되면 좋겠지만, 안 될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며 "연내 해결하지 못하면 결과적으로 내년에는 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본격적으로 정치의 계절로 가는데 총선을 앞두고 임기가 얼마 안 남은 국회의원들이 의견이 상충하는 현안들을 놓고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전향적으로 나서기는 힘들 것"이라고 부연했다.

    일각에서는 법안 통과 지연으로 시장 혼란이 가중되면서 정부 정책의 효과도 떨어지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서진형 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는 "당정이 정책을 내놨지만, 야당을 설득하지 못하면서 법안 처리가 늦어지고 있다"며 "그럴수록 정부의 정책 신뢰도는 낮아지고 시장 혼란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