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 60달러대로 곤두박질… 추가 감산에도 美 석유 재고에 中경기둔화 우려 커'세계의 공장' 中 디플레 불안 가중… 무디스의 국가신용등급 '부정적' 하향 전망이 불안 불지펴미국도 고용 냉각·부동산거래 급감 등 침체 조짐 확산… 경기선행 지표인 구릿값도 하락 전환내년 3월 이후 연준發 금리인하 기대감 지속 상승… 지정학적 리스크 등 변수에 중대 분기점될 듯
  • ▲ 경기 하향.ⓒ연합뉴스
    ▲ 경기 하향.ⓒ연합뉴스
    코로나19가 불러온 글로벌 인플레이션(지속적 물가상승)을 잡기 위한 고강도 긴축이 서서히 종착역을 향해 가는 가운데 이제는 세계 경제가 디플레이션(수요 부진으로 인한 경기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하는 모습이다. 중국의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효과가 미미한 상황에서 부동산 침체 등의 리스크가 사그라들지 않고 있고, 미국은 과열됐던 노동시장이 서서히 식어가며 경기침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확산하고 있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6일(현지시각) 뉴욕상업거래소에서 내년 1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배럴당 69.38달러로 전날보다 2.95달러 하락했다. 인도분 브렌트유도 전 거래일보다 2.90달러 내린 배럴당 74.30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두바이유는 77.53달러로 1.00달러 떨어졌다.

    지난주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非)OPEC 주요 산유국의 협의체인 'OPEC 플러스'(OPEC+)가 기존 감산 연장과 함께 내년 1분기 동안 하루 220만 배럴쯤을 추가 감산하기로 결정했음에도 국제유가가 떨어지고 있는 셈이다.

    미국의 석유 재고가 쌓이고 에너지 업계가 원유 생산량을 늘린 데다 중국의 경기둔화 우려까지 겹치면서 원유 수요가 감소한 게 국제유가를 끌어내렸다. 미 에너지정보청에 의하면 미국 내 휘발유 재고는 지난주 540만 배럴 증가했다. 이는 분석가들이 예상했던 100만 배럴 증가보다 5배를 웃도는 수준이다. 이에 미국 휘발유 선물은 2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미국 휘발유 가격은 11주 연속 내림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9월 중순 고점과 비교해 15%쯤 내렸다.

    세계의 공장인 중국의 경기둔화도 심상찮다. 중국 국가통계국은 지난 10월18일 중국의 3분기 국내총생산(GDP)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9%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2분기 성장률(6.3%)보다는 둔화했지만, 1분기(4.5%)에 비해서는 양호한 수준으로, 시장 전망치도 웃돌았다.

    하지만 세계 3대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지난 5일 중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1으로 유지했지만, 등급 전망은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내렸다. 무디스는 상상 이상의 부채를 진 중국 지방정부와 국영기업 문제, 부동산과 금융 위기, 경제 성장률 저하 등을 등급 전망 하향 조정의 이유로 꼽았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5일(현지시각) 국제통화기금(IMF)과 월스트리트 전문가를 인용해 중국에서 공식 통계에 안 잡히는 정부의 '숨겨진 부채'가 7조~11조 달러(한화 약 9100조~1경4400조 원)로 추산된다고 보도했다.

    중국 재정부는 무디스의 결정에 실망했다며 부동산 부문과 지방정부 위험을 통제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장에는 이미 불안감의 씨앗이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이다. 서방 자유진영은 중국이 각종 경제·안보 이슈로 미국 등과 갈등하고 대립하는 속에서 부동산·금융 시장 위기 장기화와 수출 부진 등으로 인해 성장동력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고 본다.

    무디스는 앞으로 중국의 고속성장을 기대하기도 어렵다고 분석했다. 무디스는 올해 중국의 연간 경제성장률이 정부 목표치인 5%를 달성할 것으로 봤다. 하지만 오는 2026~2030년에는 평균 3.8%로 성장속도가 크게 둔화할 거로 내다봤다. 지난달 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중국의 성장률을 올해 5.2%, 내년 4.7%로 각각 전망했다.

    중국의 디플레이션 우려는 지난 8월 무렵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다. WSJ은 지난 7월30일(현지시각) 중국 전역에 디플레 징후가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많은 경제전문가는 '세계의 공장'인 중국의 수출이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고 안으로는 부동산시장 거품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중국의 모멘텀(성장 추진력)이 약화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일각에선 이런 모습이 과거 장기 침체의 길을 걸었던 일본의 상황과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고 경고한다. 일본은 1990년대 주식과 부동산 시장의 버블(거품)이 붕괴하면서 기업과 가계가 빚을 갚기 위해 지출을 줄이고, 위축된 소비는 다시 생산과 고용을 악화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 ▲ 수출.ⓒ연합뉴스
    ▲ 수출.ⓒ연합뉴스
    올해 세계 경제의 통화 긴축을 이끌면서도 탄탄한 고용을 바탕으로 성장세를 보여준 미국도 내년은 성장이 둔화할 거로 예상된다. OECD가 예상한 미국의 내년도 성장률은 1.5%로 올해 2.4%보다 0.9%포인트(p) 낮다.

    미국의 고용시장이 냉각하는 가운데 긴축 장기화 여파로 주택 경기도 악화하고 있다. 미 부동산중개인협회(NAR) 통계를 보면 지난 10월 기준 미국 기존주택 매매지수는 71.4(2001년 100 기준)로 전달보다 1.5% 떨어졌다. 2001년 관련 통계 집계 후 최저 수준이다. 최근 모기지 금리가 연 7%를 넘어서면서 주택 거래량이 급감했다는 분석이다.

    경기 흐름을 정확히 예측한다고 하여 '닥터 코퍼'(구리 박사)라 불리는 구리 가격도 하락으로 돌아서 주목된다. 6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상품거래소에서 3월 인도분 구리 선물 가격은 파운드당 3.7345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구리 선물 가격은 지난 10월 초·중순 올 들어 최저 수준을 기록하다 지난달부터 꾸준히 올랐지만, 이달 들어 다시 하락 전환했다. 11월2일 3.6725달러였던 구릿값은 12월1일 3.9315달러까지 올랐다가 이후 반락했다. 지난달 구릿값이 오른 것은 파나마, 페루 등 주요 생산국의 구리 광산에서 파업이 진행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12월 들어 분위기가 달라진 셈이다. 구리는 스마트폰과 자동차는 물론 전력케이블, 주요 건설 자재 등 다양한 산업에 활용돼 세계 경기를 가늠하는 선행 지표로 불린다. 구릿값 내림세는 그만큼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낮게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OECD는 최근 경제 전망에서 내년 우리나라의 성장률 전망치를 2.3%로 종전 9월 전망치(2.1%)보다 0.2%p 상향 조정했다. 이를 두고 기획재정부는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이상인 회원국 중 2위에 해당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대외의존도가 높아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의 경우 세계경제가 디플레이션에 빠진다면 직격탄을 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수출 전선에 경기침체라는 먹구름이 짙게 드리울 수도 있는 것이다.

    경기 흐름의 향방은 내년 초쯤 중요한 분기점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조기 피벗(통화정책 방향 전환)에 대한 시장의 기대치가 고조되는 가운데 지정학적 위기에 따른 국제유가 변동 등 추가적인 대외 변수가 불거진다면 경기침체가 굳어질 수 있다.

    OECD는 내년 세계경제가 성장은 올해보다 소폭 둔화하지만, 내년 하반기부터 통화정책의 점진적 완화에 힘입어 경제 상황이 다소 개선될 것으로 내다본다. 시장의 기대는 좀 더 구체적이다. 지난 1일(현지시각) 비즈니스 인사이더에 따르면 ING 이코노믹스는 미국 경제가 침체 국면에 진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내년 2분기부터 최소 6차례 금리 인하에 나설 것으로 전망했다. ING 이코노믹스는 연준이 내년 2분기부터 매 회의마다 금리를 25bp(1bp=0.01%p)씩 낮춰 연말까지 150bp 금리를 낮출 것으로 예상했다.

    연방기금(FF) 금리 움직임을 예측하는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 프로그램에 따르면 최근 연준이 내년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부터 금리를 내릴 확률은 70%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