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콘 재팬 2023' 참가 기업 확대… 반도체 부활 관심리파더스, '2나노' 첫 삽… 양산 2027년, 韓기업 경쟁 불가피'마이크론', 'TSMC'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 너도나도 日 투자파운드리 경쟁 심화 예고… "경쟁력, 생태계 확대 등 적극 대응 나서야"
  • ▲ IBM·일본 반도체 기업 '라피더스', 2나노 반도체 기술 제휴 ⓒ연합뉴스
    ▲ IBM·일본 반도체 기업 '라피더스', 2나노 반도체 기술 제휴 ⓒ연합뉴스
    지난달 13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세미콘 재팬 2023'에 글로벌 반도체 업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매년 열리는 행사이지만 유독 올해 행사에 관심을 끈 이유는 일본이 반도체 부활을 천명하고 열렸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하듯 참가 기업수와 관람객도 크게 늘었다. 출전 기업 수는 지난해와 비교해 40% 증가한 약 1000개의 기업과 단체가 참가해 일본 국내의 반도체 산업에 대한 관심이 고조됐음을 보여줬다. 또한 일본의 반도체 관련 비즈니스 기회 확산으로 해외에서의 참가 역시 크게 늘었다. 

    국가별로 보면 개최국인 일본 774개 사·단체에 이어 중국 출전자 수가 38개 사·단체(작년 3개 사·단체)로 급증했고 한국 30개 사·단체(작년 13개 사·단체), 대만 21개 사·단체(작년 9개 사·단체)가 그 뒤를 이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영상 메시지를 전하며 자국 반도체 산업을 위해 힘을 보탰다. 

    기시다 총리는 비디오 메시지를 통해 제조 장치나 부재료를 비롯한 일본의 반도체 공급망의 역할을 지적하면서 "저임금 저성장의 코스트 컷형 경제에서 성장형 경제로의 변혁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그 견인차는 반도체이며 임금 인상 등 이미 경제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라고 강조해 최첨단 반도체 양산에 도전하는 라피더스 프로젝트와 양산 체제 구축을 위한 움직임에 대한 지원을 약속했다. 

    일본이 반도체 부활에 사활을 걸고 있다. 정부는 수십조 원을 투자하며 반도체 시장의 잃어버린 30년을 되찾겠다는 각오다. 일본은 1980~1990년대 소니 등을 중심으로 세계 반도체 시장을 주름잡았지만 경기침체와 선제적인 투자에 실패하며 자취를 감췄다. 

    실제로 일본 반도체 산업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1988년 50.3%에서 2021년 6% 수준까지 떨어지며 영향력은 미미한 수준을 보이고 있다. 일본 반도체 기업들은 1990년대만 해도 메모리 시장에서 10위권에 상당수를 차지하며 영향력을 과시했다. 그러나 지금은 일본 기업들의 명단을 찾기 힘든 상황이다. 

    일본의 반도체 추락은 시장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것이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1980년대까지 일본 기업들은 무려 20년 넘게 사용가능한 고품질 D램을 제조했지만 세계 IT 시장이 PC로 급변하는 과정에서 투자와 한 발 느린 대응으로 경쟁력을 빼앗겼다. 

    그런 일본이 공격적으로 나선 이유는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공급망 재편이라는 지정학적 호재를 맞이하면서 반도체 부활에 자신감을 얻은 상황이다. 미국은 중국과의 반도체 패권 경쟁 격화로 동맹을 강화하고 있는데 일본까지 포섭하면서 기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일본은 2030년까지 반도체 산업 매출액을 2020년보다 3배 많은 15조엔(한화 약 136조 원)으로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 일환으로 ▲자국 내 반도체 제조 거점 확보 ▲설계 기술 개발 ▲양자컴퓨터 등 미래 기술 연구를 핵심 과제로 선정하고 각 분야 최고 기업 유치 및 기술 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반도체 부활을 이끄는 상징적인 존재가 라피더스(Rapidus)다. 라피더스는 파운드리 시장 진입을 위해 2022년 8월 소니, 도요타자동차, 덴소, 키옥시아, NTT, NEC, 소프트뱅크, 미쓰비시 UFJ 은행 등 일본 국내 대기업 8개사가 출자해 반도체 전문가 집단이 설립한 회사다. 

    일본 정부도 설립 초기 700억엔 규모의 개발비를 지원했는데 올해 4월에는 2600억엔 추가 지원을 결정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라피더스는 국내외 소재 산업과 장치 산업과 협력 체제를 구축해 일본에서 2나노 최첨단 LSI 파운드리 제조 실현을 달성한다는 구상이다. 

    라피더스의 히가시 회장은 세미콘 재팬 기조 토론에서, "최첨단 로직 반도체(연산 처리에 사용)를 꼭 성공시켜 일본의 새로운 미래를 만들 것"이라며 강력한 의지를 보인 바 있다.

    라피더스는 지난 9월 홋카이도 치토세서 1공장 기공식 열고 2나노 공정 양산을 위한 첫걸음을 뗐다. 라피더스는 2025년 시험 생산에 돌입하고 2027년부터 양산한다는 목표다. 삼성전자와 대만 반도체 업체 TSMC는 2나노 반도체의 양산 목표 시점을 2025년으로 잡았는데, 단숨에 이들과 격차를 좁히겠다는 야심을 나타낸 것이다.

    이와 함께 일본은 적극적인 지원 정책을 통해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적극적인 투자도 이끌어내고 있다.

    글로벌 세계 1위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의 TSMC는 현재 구마모토현 기쿠요마치에 2024년 말 가동을 목표로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총투자액은 86억 달러(11조1567억 원)이며 일본 정부는 4760억엔(약 4조3349억원)을 지원했다.

    미국의 마이크론은 2025년까지 일본에 5000억 엔(약 4조5555억원)을 투자해 히로시마 공장을 증설하기로 했다. 이곳에서 초미세 반도체 공정에 필수적인 네덜란드 ASML의 최첨단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도입해 차세대 메모리칩을 생산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일본 정부는 2000억 엔(약 1조8222억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2025년 가동을 목표로 요코하마에 400억엔(약 3600억원)을 투입해 3D 반도체 시제품 라인 등 R&D 시설을 만들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이곳에서 반도체 고성능화에 필요한 ‘패키징’ 기술의 연구개발을 실시할 계획이다. 일본 정부는 삼성전자 투자액의 절반인 200억엔(1800억원)을 보조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참전으로 향후 파운드리 시장에서 경쟁도 한층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TSMC를 추격하고 있는 국내 기업 입장에서는 강력한 경쟁자가 추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 미세 공정의 첨단 반도체와 차량용 반도체까지 반도체 생태계를 넓히고 있는 만큼 국내 기업에 또 다른 위협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시각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당초 기존 반도체의 소재와 장비 등 산업에만 집중했던 일본이 미세 공정의 첨단 반도체와 차량용 반도체까지 반도체 생태계를 넓히고 있는 만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들에 또 다른 위협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업계는 기술경쟁력 강화 및 생태계 구축을 통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정부는 지난 7월 용인·평택을 '세계 최대 반도체 클러스터 거점 조성'을 위한 특화단지로 지정했다. 현재 이 지역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의 기업이 562조 원 규모의 민간투자를 계획한 상태다. 정부는 이를 이천·화성 생산단지와 연계해 육성한다는 구상이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일본의 투자가 궤도에 오를 경우 우리 주력분야에서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므로 우리는 연구개발 투자 확대 등을 통해 기술경쟁력을 더 강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면서 “일본은 소재 장비 분야에서 높은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안정적 공급망 구축이 요구되는 부문에서는 일본과 협력강화를 통해 생산효율성을 제고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