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M 촉발 메모리 상승 사이클 도래AI 투자열기 더해 시장규모 대폭 확대 예고이번 상승 주기 예년보다 짧아질 가능성… '시장 변동성' 우려'쩐의 전쟁'… 기술 개발 경쟁 속도 영향 '짧아진 신제품 주기'
  • ▲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4일 SK하이닉스 이천캠퍼스 R&D센터에서 경영진에게 HBM웨이퍼와 패키지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좌측부터 최태원 회장,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 최우진 SK하이닉스 P&T 담당) ⓒSK
    ▲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4일 SK하이닉스 이천캠퍼스 R&D센터에서 경영진에게 HBM웨이퍼와 패키지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좌측부터 최태원 회장,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 최우진 SK하이닉스 P&T 담당) ⓒSK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SK하이닉스를 찾아 '골이 깊어지고 주기는 짧아진 반도체 사이클'을 언급하면서 올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시장 상황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사업 전략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AI(인공지능)로 메모리 반도체 패러다임이 전환되고 글로벌 패권전쟁으로 진화한 반도체 산업에 막대한 투자금이 쏟아지면서 시장이 시시각각 변할 수 있다는 점을 경영 전략에 최우선 반영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5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최태원 SK회장은 전날 새해 첫 현장경영 행보로 SK하이닉스 이천캠퍼스를 찾아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AI 메모리 분야 성장 동력과 올해 경영방향을 점검했다.

    이 자리서 최 회장은 "역사적으로 없었던 최근 시장 상황을 교훈 삼아 골이 깊어지고 주기는 짧아진 사이클의 속도 변화에 맞춰 경영계획을 짜고 비즈니스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 내년·내후년 역대급 메모리 시장 예고에도...시장 상황에 '경계심'

    최 회장의 이 같은 발언을 두고 반도체업계는 촉각을 곤두 세웠다. 지난해 3분기 바닥을 찍은 메모리 반도체 업황은 4분기부터 본격적으로 턴어라운드를 시작해 올해 다시 성장 국면으로 돌아설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으로 가득찬 상황이었는데, 최 회장이 오히려 이런 상황을 경계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들과 전문가들은 올해를 기점으로 내년 메모리 반도체, 특히 D램 시장이 역대 시장 규모를 넘어서는 수준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올해만 해도 지난 슈퍼 사이클이었던 2021년에 이어 역대 두번째 매출 기록을 새로 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내년에는 또 한번 슈퍼 호황기를 맞으면서 글로벌 D램 시장이 88%의 성장률로 874억 달러(약 115조 2000억 원) 규모로 성장해 역대 최대 수준으로 올라설 것이라는데 이견이 없다.

    올해부터 내년, 길게는 내후년까지 이어지는 이번 상승 사이클이 최 회장이 말한대로 골이 깊어질 것이라는데도 공감대가 형성된 상황이다. 과거와는 다르게 AI가 메모리 반도체 시장 성장을 주도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잡으면서 PC나 스마트폰으로 촉발됐던 메모리 성장 시대와는 다른 더 큰 장이 열릴 것이라는 게 시장 전반의 의견이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D램 시장이 AI로 패러다임 전환을 맞으면서 연 매출 1000억 달러(약 132조 원) 시대를 맞을 것"이라고 예견하기도 했을 정도로 AI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됐다.

    하지만 그만큼 크고 강력한 AI 수요가 빠르게 변화한다는 속성을 고려해야 한다는게 이번 최 회장의 '짧아진 사이클' 발언에 담긴 의미로 해석된다. AI 반도체 개발과 서버 구축이 이미 글로벌 빅테크를 시작으로 대세가 됐는데, 이 흐름이 개별 디바이스에 탑재되는 '온디바이스 AI'까지 본격화되기 시작하면 AI용 메모리 수요는 보다 다양해지며 빠르게 확산될 것으로 관측된다.
  • ▲ SK하이닉스 HBM3 제품 이미지 ⓒSK하이닉스
    ▲ SK하이닉스 HBM3 제품 이미지 ⓒSK하이닉스
    ◆ AI로 메모리 시장 패러다임 변화...'고객 맞춤형' 반도체 대세로

    이에 앞서부터 반도체업계는 고객사 니즈에 맞춰 제공하는 '맞춤형 반도체' 시대를 대비해왔다.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메타 등이 이미 자체 AI 반도체 개발에 성공하거나 한창인 상태로, 올해 본격적으로 이를 상용화하는 작업에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빅테크들이 자체 개발 AI 반도체 사업을 시작하면 여기에 필수로 들어가는 차세대 D램 고대역폭메모리(HBM)를 확보하기 위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HBM 3사 문을 두드리게 된다. 3사는 이 고객사들이 원하는 기능이나 스펙에 맞춰 제품을 개발하고 생산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HBM 시장에서 또 다른 고객사를 유치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것으로 예상된다.

    고객 맞춤형 반도체는 말 그대로 고객사의 신제품 출시 주기에 맞춰 새로운 제품을 양산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만큼 HBM 제조사들이 시장 분위기 와 고객사의 신제품, 신기술 변화 속도를 선도해야만 경쟁력을 이어나갈 수 있다. 메모리 반도체 사이클이 과거 대비 짧아졌다는 것도 이처럼 다양해진 IT 수요와 빠르게 변하는 기술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인 셈이다.

    반도체 제조사 입장에선 가장 최선단에서 이 같은 시장 변화를 감지하고 기민하게 전략을 전개할 필요성이 높아졌다. 최 회장도 이와 관련해 "특정 제품군만 따지지 말고 매크로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며 "마켓도 이제 월드마켓이 아니라 분화된 시장 관점에서 살펴야 한다"며 맞춤형으로 변모하는 반도체 시장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현재 HBM 시장은 SK하이닉스가 주도권을 쥔 상황에서 삼성도 사업에 속도를 내며 전체 시장의 90%를 차지하고 있어 과거 메모리 시장과 마찬가지로 국내업체들의 '텃밭'이 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메모리 3위 마이크론이 HBM 시장에선 한자릿수 수준의 점유율에 그치고 기술력도 삼성이나 SK에 미치지 못해 더 승산이 크다고 평가된다.

    최 회장이 이처럼 적극적으로 HBM 시장 대응을 주문하면서 올해 삼성과 SK가 치열한 경쟁을 시작할 것이라는 전망에도 힘이 실린다. 각 사 모두 AI 투자 붐으로 예전보다 상승 사이클이 더 깊어질 것이라는 기대 아래 생산능력(CAPA)을 확보하고 AI 반도체 최강자인 엔비디아에 차세대 HBM인 HBM3E를 공급하기 위해 물 밑 경쟁에 한창이다.

    빠르게 변하는 시장 분위기와 고객 니즈를 선도하기 위해 조직도 보다 유연한 구조로 바꾸고 전담 조직을 마련하는 등 만만의 준비를 갖췄다. 삼성전자는 지난 연말 인사와 조직개편을 통해 HBM 등에 이은 CXL 등 차세대 메모리를 개발하는 조직을 확대 개편했고 SK하이닉스는 HBM사업에 더 힘을 실어주기 위해 'AI 인프라' 조직을 신설했다. 양사 모두 HBM 생산 확대 핵심인 패키징 분야 전담 조직을 신설하고 새로운 라인도 구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