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부터 상시 근로자 50인 미만에도 중처법 적용될 듯무리한 법 적용 강행 시 실직·줄도산 등 부작용 우려 “마지막 준비 기회 줘야”… 25일 본회의 여부 촉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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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도 안성에서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한 중소기업 대표 A씨는 “올해 고물가·고금리 등 경제 여건이 최악인 상황인데 여기에 중대재해처벌법까지 시행된다고 해서 걱정이 많다”면서 “사법리스크까지 겪느니 아예 문을 닫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든다. 사업을 하지말라는 뜻인지…”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 인천의 자동차부품 제조공장을 운영 중인 중소기업 대표 B씨는 “중대재해처벌법 입법 예고 후 지속적으로 안전관련 시스템을 보강해 더욱 체계화하는 등 노력했지만 실제 현장에 안전보건 관리체계가 안착되기 위해서는 물리적으로 시간이 더 필요하다”면서 “우리 회사는 내가 구속되면 20년 넘게 운영해 온 사업을 한순간에 접어야 한다”고 우려를 표했다. 

    50인 미만(건설업은 공사금액 50억원 미만) 중소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 2년 재유예가 무산되면서 중견·중소기업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법 개정이 없을 경우 당장 오는 27일부터 상시 근로자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된다. 업계에서는 무리한 법 적용 강행 시 줄도산 등 부작용이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11일 중견중소기업계에 따르면 오는 27일부터 상시 근로자 50인 미만에도 중처법이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법 적용 시기를 유예하는 법안이 여당에서 발의됐지만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는 25일 국회 본회의가 한번 더 열리지만 현재로선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가 통과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경제계의 관측이다. 

    지난 2021년 제정된 중처법은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 발생 시 안전조치를 소홀히 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는 것이 골자다. 법 적용은 지난 2022년 1월27일부터 50인 이상 사업장(건설업은 공사금액 50억원 이상)에서 시작됐지만, 50인 미만 사업장은 시간을 더 준다는 의미에서 2년 늦춰 이달 27일부터 시행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준비기간이 부족하다”는 중견·중소기업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정부와 여야는 유예기간을 2년 더 연장하는 법 개정을 추진해왔다. 

    지난 9일 국회 본회의에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안이 상정되지 못하면서 적용 유예 연장이 불투명해졌다. 더불어민주당이 정부 대책을 두고 ‘미흡하다’고 딴지를 걸면서 유예 법안은 현재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 있는 상태다. 

    중처법 유예 법안이 처리되지 못한 직후 한국중견기업연합회와 중소기업중앙회 등 경제 6단체는 공동성명을 통해 “유예법안이 끝내 처리되지 못해 안타깝고 참담하다”며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유예는 현실적으로 예방투자 여력이 부족한 소규모 사업장이 그동안 준비하지 못한 원인을 개선하고, 형사처벌보다 마지막으로 준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소규모 사업장의 절박한 상황을 충분히 고려해 27일 법 시행 전까지 법안을 통과시켜주기를 다시 강력히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기획재정부와 고용노동부, 중소벤처기업부 등 정부도 입장문을 통해 “국회에서 (유예 법안에 대해) 적극적인 논의를 하지 않는 것은 (법을 새로 적용 받는) 83만 7000개 영세 중소기업의 현실적 어려움을 외면하는 것”이라며 “27일 법 시행 전까지 유예 법안에 대한 신속한 입법 처리를 요청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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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대재해법 확대 적용일자인 오는 27일 이전인 25일 국회 본회의가 다시 열리지만 예정대로 시행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 안팎의 중론이다. 

    중견중소기업계에서는 중대재해법 유예가 최종 불발될 경우 경기 불황으로 경영 상황이 어려운 영세 사업장들이 안전 비용 부담으로 한계 상황에 내몰릴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일례로 중처법 이후 안전관리자, 보건관리자 등 전문인력을 배치해야 하는데 해당 인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중견중소기업들은 해당 인력을 구하기 쉽지 않은 상태다. 대기업에서도 안전 관리자 수요가 큰 데다 중대재해 발생 시 책임을 져야 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작년 8월 중소기업중앙회의 ‘50인 미만 중대재해처벌법 대응 실태 및 사례조사’에 따르면 중처법이 시행된 지 2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준비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는 중소기업 3곳 중 1곳 이상(35.4%)이 ‘전문인력 부족’을 꼽았다. 이에 따라 채용시 높은 비용을 지불하고 모셔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울러 사업주가 구속 또는 처벌되면서 경영 공백으로 폐업에 몰리는 중소기업이 적잖게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 중처법은 중대재해를 일으킨 경영 책임자의 안전보건 관리 의무를 따져 형사처벌이 이뤄진다. 정부가 현장 상황을 고려해 다른 제도처럼 유예나 계도 기간도 둘 수 없어 대표이사가 경영을 책임지는 영세기업의 경우 법 위반 의혹 수사만으로도 경영이 흔들린다. 폐업은 당연히 실업 등 일자리 축소와 이로 인한 근로자 피해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현장에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법 적용을 강행한다면 중대재해 예방이라는 입법 목적은 달성하지 못하고 범법자들만 양산하게 될 것”이라면서 “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에게 처벌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을 부여해 산업현장의 혼란을 막아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