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경영 유의·개선 조치 1년새 '곱절'신평사, PF발 부실 공포 확산에 위기론 지속 제기'신용사면', 대환대출 서비스 확대 따른 고객 이탈 불가피
  • ▲ 저축은행. ⓒ연합뉴스
    ▲ 저축은행. ⓒ연합뉴스
    저축은행업계가 갈수록 궁지에 몰리고 있다. 건설·부동산 시장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리스크로 가뜩이나 불안한 가운데 금융당국의 경영검사에서 지적사항이 다시 늘어났다. 고위험·고수익 투자가 가파르게 증가하면서다. 

    여기에 정치권의 '신용 대사면', 대환대출 서비스의 본격화 조짐 등으로 영업여건마저 비우호적이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7개 저축은행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경영 관련 유의·개선요구를 받았다. 전년 8개에 비해 두 배 넘게 늘어난 셈이다.

    금감원은 금융사를 대상으로 수시·정기업무 검사에 나서 경영상 미흡한 점이 적발되면 조치를 요구하고 공시한다. 경영 유의·개선 요구는 문책성 제재는 아닌 만큼 강제성을 띤 행정처분은 아니다. 다만 경영상 위험요인이나 내부통제 관련 개선 필요성이 발견되면 주의해야 할 사항을 공개하며 금융사는 개선조치 후 금감원에 보고해야 할 의무가 생긴다.

    경영 유의·개선 공시에 올라온 저축은행은 한동안 감소세를 보이다가 지난해 다시 증가했다. 2019년 27개에서 2020년 19개(-29.6%), 2021년 8개(-57.8%)까지 줄어들었다가 지난해 다시 17개(+112%)로 증가했다.

    이는 저축은행업권의 위험경영 경향이 두드러지면서 금감원의 경영 관련 지적도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경영 유의·개선 목록에 오른 저축은행들은 2022년부터 2023년 상반기 사이 이뤄진 검사에서 지적 받은 곳들이다. 이 시기는 저축은행의 고위험·고수익 투자가 가파르게 증가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금감원 금융정보통계시스템을 보면 저축은행업계의 부동산 PF사업 규모를 가늠할 수 있는 전체 건설부동산 기업 대출잔액은 2019년 17조원에서 지난해 3분기 32조원으로 증가했다. 특히 2022년에만 대출잔액이 5조원 넘게 불어났다.

    저축은행의 주요 대체투자 수단인 유가증권 보유 규모도 가중됐다. 유가증권 규모는 2019년 2조1761억원에서 2023년 3분기 8조6105억원으로 급증했다. 2022년과 지난해에 연간 2조원씩 늘면서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신용평가사들은 이 같은 고위험 투자 등을 이유로 저축은행의 부실화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중소규모‧지방 영업 저축은행에 대한 우려가 크다. 지난해 12월 한국신용평가가 신용등급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중소규모‧지방 영업 저축은행 47개사에 대해 △영업기반 △자산 건전성 △수익성 △자본 적정성 △유동성 분석 등을 진행한 결과에 따르면 이들은 자기자본 대비 부동산 PF와 건설업의 비중이 컸다.

    정호준 한신평 금융구조화평가본부 연구원은 "(조사 대상 47곳 가운데) 자기자본 대비 부동산 PF와 건설업 합산이 자기자본의 100%를 웃도는 업체는 30곳이었으며 그중 12개사는 150%, 4개사는 200%를 넘었다"고 분석했다.

    이어 "지방 영업 비중이 크고, 자기자본 대비 부동산 PF와 건설업 합산 비중이 커 신용등급을 보유하고 있는 저축은행보다 부동산 경기 악화나 지역 건설사 신용 리스크에 더욱 크게 노출됐다"며 "성장 속도가 상대적으로 더뎌 자본비율과 유동성 지표는 높게 나타나지만, 대주주의 지원능력이 상대적으로 낮을 수 있기 때문에 더욱 보수적인 자본비율 관리가 필요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올해 영업 전망도 어둡다. 정부와 금융당국이 추진하는 '신용 대사면'을 비롯해 대환대출 서비스 등이 저축은행업계에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금융권이 15일 발표한 '신용사면' 조치의 핵심은 저신용자가 저금리 대출로 갈아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번 조치로 약 25만명이 은행권 신규 대출자 평균 신용점수(863점)를 넘게 돼 1금융권인 은행 대환대출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저축은행 A사 고위 관계자는 "신용사면으로 은행권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된 고객은 저축은행으로서 우량 차주에 해당한다"며 "고객들이 대출금리가 낮은 은행권으로 갈아타려고 할 텐데 그만큼 저축은행은 우량 고객을 뺏기는 셈"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5월 시작한 온라인 대환대출 서비스도 저축은행에는 부담이다. 이 서비스는 신용대출을 받은 차주가 온라인으로 손쉽게 더 낮은 금리의 대출로 갈아탈 수 있게 했다.

    지난해에는 고금리가 이어지면서 대출 갈아타기 수요가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올해는 금리가 내려가면서 대환대출 시장 규모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온라인 대환대출 서비스로 대출을 갈아탄 전체 차주 가운데 2금융권 차주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5월 말 9.3%에서 지난달 22.5%로 높아졌다.

    게다가 올 초부터는 대환대출 서비스 대상이 아파트 주택담보대출로 확대됐다. 애초 전문가들은 주담대의 경우 업권간 이동이 제한적일 것으로 봤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은행권 대출은 40%, 비은행권 대출은 50%로 차등적으로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2금융권에서 DSR 한도를 꽉 채운 차주는 금리가 낮더라도 은행권으로 대출을 갈아타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주담대 금리가 내려가면서 은행권으로 대출을 갈아타더라도 한도가 줄어드는 문제가 완화되고 있다. 저축은행권에서는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는 반응까지 나온다.

    저축은행 B사 관계자는 "가뜩이나 PF 이슈로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신용사면과 대환대출로 올해 실적 전망까지 불안하다"며 "일각에서는 2011년 저축은행 대규모 영업정지 사태까지 거론하면서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금융당국은 계속해서 저축은행업권의 위험요인을 사전에 파악해 더 큰 위기상황을 방지하겠다는 입장이다. 금감원 측은 "경제불황 속 저축은행 위험요인에 대해 선제 파악한 뒤 적극적인 개선을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