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모순된 가계부채 정책에 은행들 난감정책대출 수십조원 풀기 vs 스트레스 DSR‧금리 인상실수요자만 '이중고', 차주별 금리 차등 적용 필요
  • ▲ ⓒ연합뉴스
    ▲ ⓒ연합뉴스
    금융당국이 급증한 가계대출 관리를 위해 대출 총량규제에 나서자 은행들이 일제히 대출금리를 올리고 있다.  

    가계대출 억제를 위해 최우선적으로 대출금리부터 올림에 따라 은행들이 손쉬운 '이자장사' 카드를 다시 꺼냈다는 비판이 나온다. 대출 실수요자 피해와 주택 매매 수요 위축 등 부작용 우려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부터 정부 주도 아래 펼쳐온 상생금융의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전날부터 만기 15년 이상 주택담보대출(주담대) 금리를 0.1~0.3%포인트 인상했다. 비대면 상품인 우리WON주택대출 금리는 0.1~0.2%포인트, 전세대출은 대면·비대면 모두 0.1~0.3%포인트 올랐다. 

    신한은행도 지난 19일부터 주담대와 전세대출 금리를 0.05~0.2%포인트씩 인상했다. KB국민은행도 지난 7일부터 주담대 변동·혼합 금리를 모두 0.23%포인트 상향 조정했다. 

    시중은행들의 주담대 금리 인상은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 금리 하락추세와 충돌한다. 은행연합회가 공시한 1월 코픽스에 따르면 신규 취급액 기준 코픽스는 3.66%로 전월 대비 0.18%포인트 떨어졌다. 전월에 이은 두 달 연속 하락세다. 

    은행의 변동금리형 대출의 기준이 되는 코픽스가 내림새고, 혼합형 대출의 기준인 은행채 5년물 금리가 연 3.8%로 비슷한 수준임을 감안하면 현재의 대출금리 인상은 이례적이다. 

    ◇"은행 금리 올려 가계부채 축소" 논란… 그래도 오늘이 제일 싼 이자?

    은행들은 당국의 가계부채 관리방침 때문으로 금리의 소폭 반등이 불가피하다며 난색을 표한다. 

    금융당국과 시중 5대 은행은 올해 각 은행의 연간 가계대출 증가율을 1.5∼2% 이내로 관리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문제는 금리가 오르는 반면 대출한도가 줄어들면서 주담대를 받으려는 실수요자들이 ‘이중고’를 겪는다는 점이다.

    지난 26일부터 미래 금리 변동 위험을 반영해 실제 대출 금리에 ‘스트레스(가산) 금리’를 더해 대출 한도를 산정하는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제도가 시행됐다. 

    기존 DSR 규제에 따르면 연 소득 5000만원인 사람이 30년 만기 주담대를 받을 경우 대출 한도는 3억3000만원이지만 스트레스 DSR을 적용하면 변동금리형의 경우 한도는 3억1500만원, 혼합형은 3억2000만원으로 줄어든다. 종전 대비 각각 1500만원(4%), 1000만원(3%)씩 감소한 것이다. 

    여기에 하반기부터는 스트레스 금리 적용 폭이 확대되면서 한도가 종전 대비 3000만원(9%), 2000만원(6%) 줄어든다는 게 금융위원회의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은행들의 가산금리 인상과 스트레스 DSR 시행으로 내 집 마련을 하려는 실수요자들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고 실수요자들의 자금동원이 어려워지면 매수 심리가 꺾일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들이 대출을 조이면 실수요자의 주택 구매력이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면서 “스트레스 DSR이 가계부채 증가 속도를 억제하는 측면은 있으나 결국 집을 구매하려는 수요를 위축하는 양날의 검”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추가 대출 규제를 감안할 경우 잠재 실수요자들이 오히려 ‘오늘이 제일 이자가 싸다’는 생각이 대출을 서둘러 받을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 오락가락 가계부채 정책… DSR 정책서 정책금융은 무풍지대 

    전문가들은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관리에 있어 오락가락하는 모순적 행보를 보이면서 금융소비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스트레스 DSR을 도입해 한도를 줄이고 금리를 인상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상생금융을 내세우며 수십조원의 정책금융 대출을 풀고, 특정층을 겨냥한 대출 확대와 이자 탕감을 하는 이중적 정책을 펼치고 있어서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상생금융을 압박하면서 은행들에게 소상공인 이자는 환급하라고 하고 소상공인이 아닌 주택담보대출을 이용하는 이들에겐 가계부채를 관리하라며 은행을 압박하는 것은 실수요자들만 된서리를 맞는 일관성 없고 모순된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석 교수는 “정부가 상환 능력만큼만 대출을 받는 원칙을 확립을 하겠다고 밝힌 만큼 가계부채 억제 방안은 이 원칙을 확립하는 방법이 최선”이라며 “정책자금 대출과 전세자금 대출 등 모든 대출에 예외없이 DSR을 점진적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가계부채 관리방안을 금리인상 등 은행들의 ’이자장사‘에 기댈 게 아니라 다른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은행들이 일률적으로 대출금리를 인상하는 게 아니라 대출 심사를 강화해 차주별 능력에 따라 금리를 차등 적용하거나 채권 회수에 주력하는 등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면서 “지금처럼 특정 대출(주담대)을 억제할 경우 다른 대출(카드론‧2금융 등)이 늘어나는 풍선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