政, 차주 연체이력 활용 제한…중·저신용 차주 카드발급 가능현대 9배 급증 등 7개 카드사, 전년比 74% 늘어난 6조원 조달고금리 지속에 연체율 악화…충당금 적립액 증가로 순익도 감소"업황 침체에 '잠재 뇌관'까지 떠안아…상환노력 평가 정보 등 필요"
  • ▲ 카드 결제. 사진=정상윤 기자
    ▲ 카드 결제. 사진=정상윤 기자
    "신용사면이 시행되면 급전을 빌릴 수 있는 차주가 많아질 것이다. 특히 그간 연체기록으로 대출이자가 비쌌던 사람들이 추가 대출을 받게 될 것을 보인다. 카드사 입장에선 연체율이 높아지면서 건전성에 적신호가 들어온 가운데 신용사면 이후에는 우려가 더 커질 것이다. 연체가 늘어나면 충당금 추가 적립 등으로 수익성까지 나빠질 수밖에 없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

    연초부터 카드사들이 전년대비 2조5550억원 늘어난 자금을 조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대규모 '신용사면'을 앞두고 선제 자금조달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업황 침체에다 상환능력이 취약한 중‧저신용 차주의 추가 연체 발생 가능성이 커지는 만큼 카드사들에 '잠재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보인다.

    11일 전자공시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올 들어 이날까지 국내 주요 7개 카드사의 증권발행실적은 모두 5조9700억원(32건)으로, 전년동기 3조4149억원(28건)에 비해 2조5550억원(74.8%) 늘어났다.

    현대카드의 경우 1조4000억원을 조달하면서 전년동기 1500억원에 비해 9배 이상 뛰었다. KB국민카드(3500억→8200억원, 134%)와 롯데카드(5449억→1조1900억원, 118%)는 2배 이상 급증한 것으로 집계됐다.

    하나카드는 5600억원에서 7200억원으로 28.5% 늘어났으며 전년동기 발행실적이 없었던 우리카드는 6700억원을 조달했다. 반면 신한카드(1조1700억→8900억원, -23.9%)와 삼성카드(6400억→2800억원, -56.2%)의 경우 자금조달 규모가 줄어들었다.

    이처럼 카드사들이 자금조달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고금리 장기화와 경기 둔화 영향도 있지만, 가장 큰 요인은 오는 12일부터 단행될 이른바 '신용사면'을 염두에 둔 행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1월 소상공인·서민 신용사면 계획을 발표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연체이력이 남은 차주가 빚을 갚으면 연체정보를 삭제하겠다는 것이다.

    2021년 9월1일부터 올해 1월31일까지 발생한 2000만원 이하의 소액연체(개인사업자대출 포함)자가 5월31일까지 연체금액을 전액 상환했을 때 해당한다. 90일 이상 장기연체자의 경우 금융사가 신용정보원에 등록한 대출원금을 갚아야 하고, 90일 미만 단기연체자는 신용평가회사(BC)에 등록된 연체금액을 상환해야 한다.

    금융위는 12일부터 해당 조건에 부합하는 차주에 한해 연체이력정보의 금융기관간 공유와 활용을 제한할 예정이다. BC의 신용평가에도 반영하지 않도록 한다.

    지원 대상에 해당하면 연체이력정보가 신용평가에 반영되지 않아 신용점수가 자동으로 오른다. 당국은 신용사면을 통해 개인대출자 약 290만명의 신용점수가 평균 39점 상승(나이스 기준)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따라 신용사면자는 △신용카드 발급 △신규 대출 △대출금리 하락 등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5%에 해당하는 15만명은 카드발급 기준 최저 신용점수(645점)를 충족해 신용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게 된다. 25만명은 은행업권 신규 대출자 평균 신용점수를 넘게 돼 보다 낮은 금리의 대출을 받을 수 있다.
  • ▲ 카드. 사진=정상윤 기자
    ▲ 카드. 사진=정상윤 기자
    ◇신용사면자, 상환능력 개선 아냐…연체율 상승-충당금 증가 등 '악순환' 우려

    카드사들은 신용 사면을 앞두고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새롭게 신용카드를 발급한 소비자들이 신용점수를 회복했어도 상환능력 자체가 개선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카드업계는 자금조달비용 부담 확대와 함께 본업 영업력이 떨어지고 있는 가운데 금융여건 악화로 연체율까지 1%를 넘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국내 8개 전업 카드사(주요 7개사+BC카드) 연체액은 2조516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동기 1조3398억원에 비해 53.1% 급증한 규모다. 카드 연체액이 2조원을 넘어선 것은 카드대란이 발생한 2005년 이후 최대 규모다.

    '카드 돌려막기'를 의미하는 대환대출 잔액도 늘어나고 있다. 전업 카드사 카드론 대환대출 잔액은 모두 1조5935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동기 1조276억원에 비해 55.1% 늘어난 규모다. 대환대출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기존 대출을 상환하지 못해 더 나쁜 조건으로 대출을 갈아타고 있다는 신호로 여겨진다.

    A카드사 관계자는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점차 줄면서 저신용자들이 카드 대출로 몰리고 있다"며 "대출을 받는 인원이 늘면서 금리와 연체율 모두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대손충당금 적립액을 늘리면서 순이익마저 줄어들었다. 잠정실적을 발표한 5개 카드사(신한·삼성·KB국민·우리·하나)의 충당금 총액은 3조1431억원으로, 전년 1조9122억원에 비해 64.3%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면서 전체 순이익은 2조387억원에서 1조8641억원으로 8.56% 줄어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신용카드 발급이 증가하면 연체율 관리는 물론, 업계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우려된다. 연체기록이 사라진 소비자의 경우 한도가 늘어나면서 추가 연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카드사들이 선제적으로 자금조달에 나선 것도 신용사면 이후 악순환 고리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취약대출자들의 연체율이 높아지기 시작하면 카드론 금리가 올라갈 수 있고 고금리로 인한 상환능력 저하나 연체율의 추가 상승이라는 연쇄 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중·저신용자 위주로 영업하는 카드사의 경우 떠안는 리스크는 더 커질 가능성이 크다. 카드사를 찾는 소비자가 대부분 중·저신용자나 다중채무자로, 이들의 연체기록을 지우면 카드사가 상환능력 평가를 위한 단서도 줄어들게 된다.

    B카드사 관계자는 "일정 신용점수를 가진 사람에 한해 신용사면을 해 준다면 업계 건전성에 급격한 부담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차주의 연체상환 노력을 평가할 수 있는 대안정보활용을 지원하는 등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할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C카드사 관계자는 "과거 연체 경험이 있던 차주의 경우 상대적으로 또 다시 연체될 가능성이 크며 신용사면으로 연체이력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카드사의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면서 "올해 연체율 관리가 중요한 만큼 신용사면 이후 또 다른 부실이 발생하지 않도록 추후 대체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